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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눈에도 그림자가 있더라

내리는 눈에도 그림자가 있더라


얼마전 밤늦게 퇴근하면서 지하철역을 향해 걷고있는데 가로등 불빛이 환했다.주황빛 불빛속에 눈은 얼마나 지저분하게 휘몰아치던지 몇걸음 못걷고도 금방 눈사람이 되었다.춥다 춥네 추워 하면서 미끄러질까 바닥만 보며 종종 걸음으로 걸어가는데 바닥에 아지랑이같은것들이 꾸물꾸물 거렸다.그게 가로등빛에 비친 눈 그림자였다.


참 웃긴일이지.그런것들도 무게가 있단다.한없이 가벼워보이고 나풀거리는것들도 무게가 있어서 아래로 떨어져 쌓인다.날 풀리면 싹 녹아없어질것들도 실재한다고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하물며 그런것들도 존재의 발악을 떨어대고 있는데 인생이라는건 오죽할까.


오늘은 편의점에 과자를 사러 나갔다.맨발에 앞코가 막힌 슬리퍼를 질질끌어서 그런지 발 뒷꿈치만 꽁꽁 얼것같았다.들어서니 계산대에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남자애 하나와 그 자리에 같이 유니폼조끼를 입고있는 누가봐도 그 아이의 엄마 하나.밖에는 아빠처럼 보이는 사람 하나.개업한지 얼마 되지않아 계산한 물건들을 봉투에 넣어주는것마저도 어설픔이 가득한 그 식구들을 보며, 똑부러지게 인사로 배웅하는 그 아들을 보며 참 기특하구나 싶다가도, 내가뭐라고. 온가족이 조그마한 편의점에 매달려 끙끙거리는 모습에 애처로울정도로 짜증나면서도 다른사람들의 인생을 함부로 구질구질 하다고 여기는 내 자신이 역겨우면서도, 어쩌면 나와 다르지않을 그 삶의 모습들이 동질감 들기도했다.서둘러 나왔다.


하루 세끼 밥먹으려고 발악하는거 어떻게보면 우습고 어떻게보면 환멸나지.어떻게보면 부럽고 어떻게보면 외면하고싶지.열심히 산다는거 가지고싶은 삶의 자세면서도 가지게되면 그것만으로 안되는것같지.힘내고 싶지만 힘내란말이 제일 듣기 싫지.그렇게 휩쓸리고 떠내려가고 깊은곳에 잠기면서 그러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거겠지.봄날에 눈 녹아내리듯 사르르 녹아없어질 수 있겠지 인생도.그러고나면 눈이 왔었지.인생이 있었지.그렇게 헛헛한 생각만 하고 마는거겠지.죽으면 1평짜리 관짝에 들어가거나 머리통크기도 안되는 항아리에 뼈까지 갈리고 태워져서 재로 담길텐데.삶의 자세가 뭐가 중요하냐고 물으면 너무 허무한 사람같이 보이겠지.그렇게 보이면 안될것도 사실 없는거겠지.


온적도 없이 조용히 가고싶으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내가 다시 올 날만 기다려줄 사람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는지도 모른다.나라는 사람도 어쩌면 누군가를 부드럽게 짓누르는 무게가 있는 사람이 아닐까.존재감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조용히 기다리는걸지도 모른다.처절한것도 구질구질한것도 다 내려놓고 내 오만함과 나약함을 모두 내려놓고 평안히 쉬고싶은건지도 모른다.쉬고싶으면 쉴 수 있는거겠지.눈보라가 사명감이 있어서 휘몰아치나.비가 사명감이 있어서 쏟아져내리나.그냥 존재하니까 그렇게 하는것일뿐일텐데.나도 그냥 그렇게, 그정도로만.







이해받지 못하는걸 환영해야돼

이해받지 못하는걸 환영해야돼


어차피 남들은 남의 인생 이해못하잖아.그게 세상 순리잖아.누가 나를 이해하고 못하고 그 고민만 붙들고 전전긍긍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아깝잖아.시간이 아깝잖아.시간이.


때로는 사과하지않는게 나를 지키는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말없이 넘기기도 하잖아.뻔뻔하게 살라고 스스로 다그치면서.미안하다고 말하면 정말 미안한 일을 한 사람이 되는거니까 사과는 안하려고 하잖아.그런데 또 한켠에서는 미안하다는 소리를 먼저 내뱉고있다? 그래야 상대방도 미안하다고 할테고 그럼 일이 마무리 된거같을테니까.쉽게 맞다이다이 할 수 있는게 또 사과라는건 알고있는거야.뻔뻔해지고 싶으면서도 깔끔해지고싶기도 하니까 둘다 안되는거지.


깔끔한 사람도 아니고 뻔뻔한 사람도 아니고 찌질한 사람이면 찌질한대로 제멋에 살아야지 별수있나.아 쟤 너무 찌질해.그 한마디에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없어도 그렇게 살아야지 별 수 있나.인정만 하면 모든게 쉬워져.그래 나 찌질해.찌질한게 뭐.이정도로만 인정해도 조금 나아져.평생 부정해봤자 안변해 천성은.......


나는 누구한테 죄 짓고 살고싶지않은데 갈수록 죄 지은게 많다라는것만 느끼고있다.정말 미칠노릇이다.내가 성당나가서 백번천번 주님찾으며 자기위안해봤자 내가 지은죄가 사라져? 그리고 뭔데 주님이 내 죄를 사해줘.밀양봐봐.아 괴로워.괴롭다.


괜히 들춰진것같아.내가 뭔가 이상하고 다르고 지병있다는걸 다시금 느끼게 된것같아서 속만상하고 폐끼친것같아서 맘만아파.솔직하게 지금 상태 존나구려.너무 너무 너무 짜증나.내가 진짜 그래서 누구 안만난다그랬지.나는 정말 내 인생에 누군가 스며드는것자체를 용납할수가없어.차라리 무례하게 깨부수고 들어와.그럼 폭력에 발 묶이기라도하지.팔자다.이건 팔자야.나는 남자만나면 개쓰레기같은 놈 만나서 평생 가슴에 못질하며 팔자속썩이며 살테니 아예 안만날 생각을 하는게 맞는거다. 술이 너무 잘받아서 아예 입도 안댈생각으로 사는 난데.숨겨진,타고난 천성이 무섭다고. 인생말아먹는 팔자 그대로 흘러가게 도와줄 내 천성이 무서워서 스스로 경계하고 산다고.나는 그런 생각들로 마음이 너무 피곤해.히히덕 댈 정신도 없고.그런데 사람들은 이해 못하지.평범하게 연애하고 평범하게 아프고 평범하게 가정이루고 평범하게 싸우는 사람들은 이해 못하지.왜냐면 난 그런 평범한 과정도 어렵게 느껴지고 불편해서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으니까. 모르지 평범을 이루며 사는 사람들은 나를 이해못하지.


지금도 조금 토할것같고 가슴이 너무 조이고 답답한데 이건 내가 해결해야할 내 문제고 그 과정에서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는 이제,너무 진절머리가 나는거다 너무.


이해받지 못하는걸 환영해야돼.내가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고 변하지 않고도 이렇게 숨 붙은채로 살아가고있다는 이유고 그래도 살아간다고 증명해주는 거잖아.이렇게 이해받지 못해도 살아간다고.그 사실은 내가 나를 이해한다는거니까 그거면 된거야.남들이 이해못해줄때 나는 나를 제일 잘 이해하게 만들어. 더욱 스스로와 친해지게 만들고 되새김질하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돼.그거면 된거야.대부분 못난면만 알게되지만 그것마저 내가 품으면 되는거야.어차피 남들은 못품어.나만 품을 수 있기에 그런걸 찌질한부분이라고 이야기하는거잖아.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걸 환영해야돼.사실 이해받을 이유가 없잖아.없는걸 못하는거니까 당연한거야.태연하게 받아들이면 돼.그냥 환영하면돼.



딸이자 아들이자 가장

딸이자 아들이자 가장


그게 나였다.실질적으로 내가 돈을 벌고 못 벌고를 떠나서 그 무게감은 항상 나를 짓누르고 숨쉬기 어렵게만들었다.주위 어른들은 착하게만 크면 된다고 말했지만 나는 착하다는 말을 어떻게든 해석해야했고 그게 결국은 성공이라는것을 알게되었다.과거제 시험치는것처럼 내가 학문을 우물파듯 파서 입신양명하면 모든게 해결될줄알았다.결과는 입신양명도 못했고 해결된것도 없다.


사회에서 온갖 여자로써의 역할은 강요받는데 집안에서 그리고 내 자아는 가장이자 맏아들노릇과 다름없었다.사실 무슨차이야.나는 그냥 책임감이 강했던 철이 일찍든 여자였을뿐이고.그게 사람들이 관용적인 표현으로 말하는 남자같은성격ㅋ이 된건데.이게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나는 남자 여자 가장 다 해야돼? 내가 왜?


천성적으로 받는게 안되는 성격이다.살면서 뭐 받아본적이 없으니 그런거도 근지럽고 오글거려서 못하겠어.내가 요즘 남자랑 데이트하면서 느끼는건데 진짜 매너고 뭐고 필요없으니까 그냥 쿨하게 자기할일, 자기 할거나 했으면 좋겠어.데이트메이트정도가 딱 적당한걸까? 사랑에 빠진 눈빛같은것도 진짜 그냥 누가됐건 싫어.그런게 다 바보같아 보여.나는 나만 정상이고 남들은 다 바보같아 보인다고 생각하는것도 싫어.누가 꽈배기처럼 꼬이고싶어서 꼬였나.아니 근데 좀 꼬인채로 살면 안되나.


결혼식가면 누군가의 여자로 누군가의 남자로 이런말 하면서 축사하는데 이것도 나는 존나싫어.나는 내꺼지 누가 누구꺼야.만약에 내가 결혼하면 나는 축사 저렇게 하면 내맘대로 다 뜯어고칠거야.인생이 헐값이어도 남에게 넘길 수 없는거다.나는 누구것이 될 수 없는거고 나도 누구를 가질 수 없는게 맞는거다.더 싫은게 뭐냐면 정신은 자주적인데 마음한구석에서는 그래도 편하게 살고싶다는생각이 지워지질 않아.소위 말하잖아 취집.그거 좀 하면안돼? 나는 하면안돼? 어차피 나는 트루럽 그런거 안믿고 사니까 그냥 취집 할 기회생기면 그거 내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살것같은데.누군가 나랑 비슷한 고민을 어디에 올렸는데 댓글에 욕밖에 없더라고ㅋㅋㅋ.철이 안들었고 생각이 어리다면서.근데 나는 그 글쓴이 이해해.살아온 환경도 약간 비슷한것같더라고.


아니 이놈들아 너네가 딸이자 아들이자 가장인걸 이해나 하겠니? 지지리도 돈없는집에서 지지리도 돈못버는 예술하겠다고 깝치며 살다가 정신 나락으로 한번 떨어지고 약으로 버티는걸 이해나 하겠니? 남자에 대한 기대자체도 없어.나는 다 똑같다고 생각해.어차피 그놈이 그놈이고 기대할것도 없어서 설레지도않고 기다려지지도않아.어차피 나 고생만 시킬놈들이잖아.나는 눈에 보이는 고생은 피하고싶었어.그래서 남자보기를 돌같이했어.장군의 마음으로.여자가 포부가 있어야지.나는 나름 내가 거장이 될거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이라 남자가 내 인생의 방해물쯤으로 여겨졌거든.근데 그런게 무너질까봐 겁이 나.내가 그래서 소개 안받는다고했는데.내 자아가 무너지면 새로 쌓이겠지.근데 무너지는걸 버틸 수 있을까.새로 쌓인 자아가 맘에는들까.사실 지금 내 성격과 내 내면도 맘에 드는건 아닌데, 그냥 늙은호박처럼 건강원에가서 즙으로 짜여져 나와야만 가치가 있는 집에 굴러다니는 애물단지같은 그런느낌인데.그래도 같이 살면 정든다고 내 내면과 같이 살다보니까 정이 들어서 떠나보낼수가없어. 못난것도 나잖아.인정했는데.이제와서 다시 정립하라니.진짜 말도안돼.


내가 만약 제대로 연애하게되면 이 글이 얼마나 웃길까.사람들이 비웃어도,심지어 10년뒤에 내가 지금의 나를 비웃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의 나를 잃고싶지않은건 진심이야.주접떨어도 솔직한게 나아.




출근시간을 잘못알아서 지금 카페에서 죽치는중

출근시간을 잘못알아서 지금 카페에서 죽치는중


늦게 출근한것보다야 백배 나은일이지만 벌써부터 피곤함이 몰려온다 온몸으로.오후출근인걸 모르고 아침부터 서둘러서 출근했는데 진짜 두둥이다.덕분에 쓸데없는 여유가 생겨버렸다. 문열려있는 카페에 들어왔는데,전에 내가 일하던 학원이 잘 보이는 위치라 재밌다.난 구경하는거 좋아하거든.이따가 선생님들 출근하는거 녹차빨면서 구경해야지.


돌아다니며 옷이나살까 싶다가도 그냥 말까 싶기도하고,보톡스 맞으러 병원이나 갖다올까.난 사각턱보톡스 효과좋았거든 큰 부작용없으면 계속 맞고싶어.물론 내 살이 빠져야 효과가 있는거겠지만.....그나저나 너무 졸리네.이럴때 중국어 교재는 또 안들고와서 할것도 없어요.아 영화를 한편 봐야겠다 왜 그생각을 못했지.난 영화보러 떠납니다.안뇽 내 블로그 들어와서 읽어주는 모든분들아.영화보세요.


아니 맞는 시간대가 없어서 볼수가없다니. 요즘 조조 영화 왜이렇게 없는거지. 그리고 난 킹스맨 안좋아하는데 시간대가 다 킹스맨한테만 쏠려있어.그런거 말고 좀 다양한 영화 보고싶다고.이게 인디부심이냐? 그럼 할말없고. 젠장젠장젠장 영화 볼랬는데 볼 수 없다는게 말이 되냐고 ㅠㅠ 내 출근시간이 더 늦던가 영화관을 더 늘리던가해라.서울가자.한 역 걸러 영화관있는 서울을 가야해.사람은 원래 젊어서 문화의 중심지에서 자라고 깨우치랬다.몇년뒤에 갈거야 기다려라 진짜.고시원 생활을 한들 뭐가 문제겠어.영화관이 많고 첨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데.재밌을것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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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말라는 조언

포기하지말라는 조언


내가 쇼프로 보다가 뭔가 울컥울컥해서 걍 글쓴다.저런 조언 하는 연예인님들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서 된거겠지만 똥꼬 찢어지게 가난하진않았잖아요.나도 포기하고 싶지않으니까 물질적으로 지원해주던가.꿈은 중요한거라면서 꿈에 대한 조언을 할땐 무게감이 싹 사라지는것같아.마음이야 다 꿈을 이루고 살면 좋겠는 마음으로 하는말이겠지만 그게 말대로 되면 실패라는 단어는 왜 있겠어.


적당히 가난하기만해도 어느정도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추진력같은게 생기는데 나같은애는 오늘 하루 급급한거다.내친구중에 나랑 비슷하게 연명하는 애가 있는데, 개인으로만 보면 나랑 똑같아 보이지만 실상 까보면 너무 잘 사는거지.자기는 엄마아빠한테 돈 안받을려고한다지만 그건 자기생각이지. 그 집 부모님은 모아놓은 돈 자식새끼 안주고 남한테 기부한대? 애초에 보험이 달라요.


살아야지,살아야지.나아가야지,나아가야지 어떻게든 지금보단 좋아져야지.생각은 한다만 실행에 옮기려면 정말로 다 돈이야.내가 요즘 새로 생긴꿈이 있다고 했는데 그거 이루기 위해서도 존나노력해야돼.돈으로 시간으로.근데 둘다 없으니까 시간들여 돈 만드는 중이잖아.그렇게 모은돈으로 나중에 투자한다고해서 성공한다는 보장도없어.그래도 해야한다면 잘 선택해야하는거지. 나는 돌아갈 집이 없으니까.보금자리가 없다는 말씀이시다.


아이 씨 나는 진짜 돈 얘기할때마다 승질이 저 발끝부터 뻗쳐서 이가 갈릴것같다.한창 좋을 20대에 나는 왜이렇게 받침대부터 구질구질해.심지어 가난을 노래하는 가사도 적어진것같아. 나빼고 다 먹고살만한가 요즘? 욜로는 무슨 한겨울에 팥빙수 쳐먹다 식도 동상 걸릴 소리야.나도 욜로해볼래 돈줘 씨발.인생이 패션 장신구냐.난 짐덩이같구만 누구네는 장신구지 에라 더럽다.이 불균형 좀 봐.내앞에 어르신들 주식얘기하고 건물 매매하는 이야기하면서 껄껄댈때 나는 점심값,교통비 줄일 생각하고 있었잖아.돈이 최고는 최고야. 돈으로만 살수있는 유일한게 있거든. 고상함. 그건 돈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우아함과 여유로움이니까.


여튼 나 이렇게 궁상맞아도 포기안할테니까 돈줘.돈 씨발 돈.정말 너어무 너어어어어무 지겹다.평범의 기준이 어디인지 모르겠어.


[망시리즈] 대한민국 입시미술은 망했다

[망시리즈] 대한민국 입시미술은 망했다

대한민국 입시미술(회화를 포함한 모든 미술,특히 디자인)은 망했다.망해가고있고 앞으로도 망할것이며 망하기 위해 망하는중이니까 망할 수 밖에 없다.내가 10년 가까이 미술하면서 얻은 결론은 그것뿐이다.생각보다 복잡한 트러블로 구조상의 문제가 얽혀있을것같지만 사실 그렇게 복잡하게 망하지 않았다.대한민국 입시디자인은 그리고 디자인업계는 아주 단순하게 걍 망했다.


입시미술학원 강사로 몇년을 일하면서도 가장 큰 죄책감은 바로 아이들의 눈을 멀게만들어야했다는 사실이다.이미 어느정도 미술뽕에 취해 학원을 찾은 아이들이지만 그 아이들을 다시한번 입시뽕에 취하게 만들어야하는데 그 과정도 만만치않을뿐더러 나도 인간인데, 아이들에게 굉장히 미안해지고는 했다.입시미술학원은 무조건 명문대 입학생을 배출해야하기때문에 최대한 성적관리와 미술실기력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는쪽으로 지도를 한다.따라오는 애들은 따라오고 아닌애들은 안 따라온다.기본적으로 손빨이 되는 애들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하면 아이들 사이에 경쟁심이붙는다. 그것을 한번 더 자극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대학 실기대회다.


각 대학 디자인실기대회는 사실 우습게 볼 대회가아니다.전국의 모든 미대입시생들이 참가한다고해도 과언이아니며 본상수상자에 한해 수시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기때문이다.그런 큰 대회에서 본상을 수상하는 친구들을 옆에서 보다보면 본인의 그림에 자괴감을 가지고 슬럼프에 빠지는 애들도 많이 생겨난다.딱 요 시기.이때가 단순 경쟁으로 재미볼 수 있는 시기고 그래서 애들을 학원에 잘 잡아놓을 수 있는 시기이다.혈기왕성한 친구들 가둬다가 경쟁시키면 죽어라고 하기마련이다.당근과 채찍을 적당히 섞어서 단순히 학생의 승부욕을 자극하는것이다.물론 이것도 그리는것에 어느정도 열정이 있어야 가능한일이지만 솔직히 미술학원다니면서 친구랑 비교 안당해본 사람 없을걸.그게 니가 당한 채찍이다.그 후에 칭찬들은게 당근이고.생각해보면 졸라 단순한데 이게 뽕맞는거랑 똑같아.중독되는거야.


그렇게 고1,고2생활을 하다보면 곧 고3 대망의 수험생이된다.죽어라 가둬놓고 패는 형식으로 그림 오질라게 배워서 명문대에 입학해봤자 나중에 잘살고 성공하는사람은 원래 집 잘사는애다.예외야 있겠지만 척박한 이 땅에서 저주받은 예체능하면서 그 공식을 깨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부익부빈익빈을 깨려면 사회가 받쳐주어야하는데 그마저도 안되니 아티스트로 재능을 펼치고싶던 꿈많은 학생들의 9할이 대학생때 나가리된다.대학생때 정신병 안오면 내가 장하다고 칭찬해준다 정말.


뭐 운좋게 대학도 잘갔고 학점도 잘땄고 디자인도 생각보다 적성이 맞아.그럼 이제 취업시장에 나갈때다.그리고 한번 느껴봐야한다.아 디자인 이런 개 미친분야는 연봉도 적고 출퇴근도 엉망이고 모든게 미쳐돌아가는구나.아 이세상은 디자인을 설계하고 구상하는 직업으로 생각하는게 아니라 고객 발 닦이용 수건으로 생각한다는것을 느낄것이다.야근수당 챙겨주는 회사는 너무 훌륭한 회사가 되는거고.정시퇴근 가능한 회사는 노벨평화상을 받아 마땅하지만 물경력이 될 확률 99%이니 조심해야한다.사회에 얼마나 많은 전공이 있고 직업이 있는데 그중에 왜 하필 디자인(미술)을 선택해서 열심히 공부한 노예생활을 하는지 스스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할것이다.


그래도 산업,시각디자인이면 그나마 낫다.전공자들이 워낙많고 쏟아지고 싼 값에 인력을 해치우려는 씹양아치같은 회사들이 넘쳐나지만.그래도 낫다.뭐 보다 낫냐고? 영상,패션 전공에 비해서 백배 낫다는 뜻이다.패션디자인이 그렇게 하고싶어 죽겠다는 애들보면 마음 한켠이 아리다.절대 걔네들을 받아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구조라는것도 없어.아무리 요즘 다 4년제 나온다지만 전국에 패션디자인과가 몇개나 된다고.그 고급인력들을 갖다가 월 80만원 주면서 개처럼 굴리는 회사가 널렸다.내가 범죄만 아니라면 불 수십번은 대신 질러주고 나왔다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책상앞에서 재료비 쏟아부으며 고사리같은 손으로 그림그려대고있을 내 수많은 제자들,얘들아.속지마 업계가 미쳐서 너네 못 받아줘.그중에 금팔찌 낀 내 제자야.너는 집이 잘 사니까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열심히하는 흙수저가 열심히 안하는 금수저네 집 화장실 타일디자인해주고 남는 방 세들어 살 수도 있어.농담같지만 현실이다.왜냐고? 대한민국 디자인업계는 미쳤고 망했고 제정신이 아니니까.이럴수록 입시학원의 사탕발림이 정말 역겹게 느껴질수밖에 없었다.진짜? 명문대 나오면 살길 생겨? 나는 아니던데?


학원도 물론 생계고 먹고 살야아 하는 일이니까 그렇다고 치자.그래도 애들 꿈팔아먹는 장사라는건 마음속에 좀 담아두고 살아야하는거 아닌가? 애들이 헷갈려한다니까.회화학원도 디자인한다는애들 설득하고 상담해서 지 학원에 남아있게만들고,디자인학원도 다른거 한다는애 상담잡고 사탕발림하고 겁주고.염병 시바 나 진짜 이짓 하기 싫었어.전공 돌릴애야 알아서 돌리지.근데 맨날 희생양은 어른말 잘듣고 잘믿고 착한애들.걔네만 다 피해자들이야.하여간 원장들만 제일 배부르게 살아요


디자인 전공해서 지금 존나잘먹고 잘사는 애가 내 주위에 한명있다 한명.근데 걔는 원래 잘먹고 잘살고 집도 서울로 이사가서 월세걱정 없는 애였고.비교군이 아예 다르지? 거기다 대기업 들어갔다.그만하면 사정이 나은거지.근데 그게 쉽냐고 시바.대기업 안들어갔어도 사람답게 살만큼은 벌고 쉬고 성취감도 있고 그래야하는거 아니냐? 당연 아니지.그게 미술이야.없어 그런거.


하여간 나는 입시미술학원 수명 10년본다.10년안에 다 망해.망한대도 폭삭 망하지는 못하겠지.그림그리고 싶은애들은 어디에도 많으니까.그런애들 데려다가 꿈팔아먹으며 대학으로 넘겨버리는 학원들도 어영부영 살기야 살겠지.그래도 나는 10년 본다고.더 처참해.고급인력 다 놀고쳐먹고 앉아있는 이 실정에 지금 애들이 홍대나온다고 뭘 그렇게 인생에 꽃이펴.그것도 그 전공이 맞아야말이지.종이에 기초디자인으로 입시하는거랑 컴퓨터로 디자인 모델링 작업하는게 얼마나 다르게.그 머리가 그 머리 같지만 흥미차이가 얼마나 나게.겪어봐야알지.


불쌍하지만 열심히사는 내 제자들이나 돈 잘벌어먹고 살 수 있게 앞길 닦아놓으실 위대하신 누군가를 찾습니다.일단 난 아니야.난 내 입에 풀칠하기도 바빠.여튼 망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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