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는 눈에도 그림자가 있더라

내리는 눈에도 그림자가 있더라


얼마전 밤늦게 퇴근하면서 지하철역을 향해 걷고있는데 가로등 불빛이 환했다.주황빛 불빛속에 눈은 얼마나 지저분하게 휘몰아치던지 몇걸음 못걷고도 금방 눈사람이 되었다.춥다 춥네 추워 하면서 미끄러질까 바닥만 보며 종종 걸음으로 걸어가는데 바닥에 아지랑이같은것들이 꾸물꾸물 거렸다.그게 가로등빛에 비친 눈 그림자였다.


참 웃긴일이지.그런것들도 무게가 있단다.한없이 가벼워보이고 나풀거리는것들도 무게가 있어서 아래로 떨어져 쌓인다.날 풀리면 싹 녹아없어질것들도 실재한다고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하물며 그런것들도 존재의 발악을 떨어대고 있는데 인생이라는건 오죽할까.


오늘은 편의점에 과자를 사러 나갔다.맨발에 앞코가 막힌 슬리퍼를 질질끌어서 그런지 발 뒷꿈치만 꽁꽁 얼것같았다.들어서니 계산대에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남자애 하나와 그 자리에 같이 유니폼조끼를 입고있는 누가봐도 그 아이의 엄마 하나.밖에는 아빠처럼 보이는 사람 하나.개업한지 얼마 되지않아 계산한 물건들을 봉투에 넣어주는것마저도 어설픔이 가득한 그 식구들을 보며, 똑부러지게 인사로 배웅하는 그 아들을 보며 참 기특하구나 싶다가도, 내가뭐라고. 온가족이 조그마한 편의점에 매달려 끙끙거리는 모습에 애처로울정도로 짜증나면서도 다른사람들의 인생을 함부로 구질구질 하다고 여기는 내 자신이 역겨우면서도, 어쩌면 나와 다르지않을 그 삶의 모습들이 동질감 들기도했다.서둘러 나왔다.


하루 세끼 밥먹으려고 발악하는거 어떻게보면 우습고 어떻게보면 환멸나지.어떻게보면 부럽고 어떻게보면 외면하고싶지.열심히 산다는거 가지고싶은 삶의 자세면서도 가지게되면 그것만으로 안되는것같지.힘내고 싶지만 힘내란말이 제일 듣기 싫지.그렇게 휩쓸리고 떠내려가고 깊은곳에 잠기면서 그러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거겠지.봄날에 눈 녹아내리듯 사르르 녹아없어질 수 있겠지 인생도.그러고나면 눈이 왔었지.인생이 있었지.그렇게 헛헛한 생각만 하고 마는거겠지.죽으면 1평짜리 관짝에 들어가거나 머리통크기도 안되는 항아리에 뼈까지 갈리고 태워져서 재로 담길텐데.삶의 자세가 뭐가 중요하냐고 물으면 너무 허무한 사람같이 보이겠지.그렇게 보이면 안될것도 사실 없는거겠지.


온적도 없이 조용히 가고싶으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내가 다시 올 날만 기다려줄 사람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는지도 모른다.나라는 사람도 어쩌면 누군가를 부드럽게 짓누르는 무게가 있는 사람이 아닐까.존재감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조용히 기다리는걸지도 모른다.처절한것도 구질구질한것도 다 내려놓고 내 오만함과 나약함을 모두 내려놓고 평안히 쉬고싶은건지도 모른다.쉬고싶으면 쉴 수 있는거겠지.눈보라가 사명감이 있어서 휘몰아치나.비가 사명감이 있어서 쏟아져내리나.그냥 존재하니까 그렇게 하는것일뿐일텐데.나도 그냥 그렇게, 그정도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