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나고자라 할 수 있는 토속적인 고민과 토속적인 미래가 어쩌면 내 정체성일지도 모르겠다.내가 생각해도 나는 세련된 스타일은 아닌것같다.딱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가 자식을 가지고 가정을 일구던 그 시대의 촌스러움과 추억같은것이 내 몸에 50%는 채우고 남는것같다.서툰것은 둘째치고 그래서 더 시대역행하려는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는것이고.
안그래도 그런것들을 느끼면서 내 앞날을 걱정하고있었다.사진수업때 교수님이 내게 말씀해주셨다.토속적인 그런것들이 있다고.응답하라 시리즈가 큰 사랑을 받은이유는 해당 세대가 향수에 젖은까닭도 있었겠지만 ,그 당시 세대가 아니어도 마음속에 누구나 청사진으로 남은 추억같은게 있어서 응답시리즈를 통해 그런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그때를 살아보지 않았어도 어차피 10년전이나 20년전이나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인것은 명백하고 그럴수록 과거를 조명하면 그때를 그리워하며 사랑하게되는것같다.최신 DSLR카메라를 쓸 수 있음에도 낡은 필름카메라를 들고다니는 사람들도 많지않은가.아날로그 느낌이라는건 사랑받을 수 밖에없다.시간이 흐를수록 더.
드라마로 비유하자면 태양의후예같은것이 아니라 사랑과 야망,청춘의 덫,대추나무 사랑걸렸네,천국의계단 뭐 이런 느낌이려나.지금이야 화면이 가로로 길쭉해져서 전부 와이드tv지만 그때는 거의 정사각형의 뚱뚱한 네모상자였으니까.기술이 발전할수록 세대가 뚝뚝 끊어지는것같다.내가 만약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었으면 이미 난 세대단절 당했을것같다.새로운 기기가 나오면 거기에 적응해야만 세대간의 소통이되고 그걸 배우지못하면 그냥 나가리되니까.근데 앞으로 남은 여생을 맨날 기기나 배우면서 살고싶지는 않단말이야.그냥 나 대신 배우는 로봇이나 만들어줘.
4차산업혁명의 중요성과 미래동향을 아무리 기사에서 떠들어도 별 생각이 안든다.있기야 있겠지.산업혁명이 일어나면 변화가 생기고 그런 변화 때문에 즐거운일,새로운일,신나는일이 생길테고 새로운 일자리,새로운 가치관이 생길것이다.그런데 왜 사람들은 4차산업혁명에 대해 떠들만큼 떠들면서도 부작용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걸까.세대단절과 산업혁명에 적응하지 못한 낙오 아닌 낙오자들,혹은 기술의 피해자들 분명히 존재할 그들을 위해서 아무도 떠들지 않는다.그러니까 내눈엔 이게 달콤한 사탕발림처럼 보이는것이다.중요성은 분명히 인지하지만 그만큼 부작용과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같은것을 고민하는척이라도 해야하는데,당장 4차 산업혁명이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열쇠라도 되는것처럼 선전해대니 성경없는 종교같다.그래서 그분이 내려오시면 나는 행복해지나?
적어도 나는 촌스럽게 살아야지.맥북사서 카페가서 아메리카노 빨면서 블로그에 똥글이나 다다다 싸지른다한들 그거야 내 환상을 내가 모방할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그냥 나는 시골 외갓집에 놀러가 외가식구들이랑 직접 심은 밭에서 늙은호박을 따서 허리춤에 이고 내려오다 도랑에서 우렁잡고 쑥 캐고 그런것들이 재밌다.사회적일 필요도없고 화장할 필요도없고 예뻐야 할 필요도없고 무방비상태로 지내는게 너무 행복하다.시간은 느리게 가는데 해는 빨리져서 어둑어둑한 그 동네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면,어쩌면 성공이니 노력이니 그런것들은 저 별나라 이야기같이 느껴지곤한다.
맞아.애늙은이.그것도 내가 자주들으면서 자라 온 말인데 그게 내 정체성이고 촌스러운게 내 정체성이고 그냥 그런거라고 생각한다.한국에서 아버지를 일찍 잃은 소녀가장이 가지는 고민이란 참 상투적으로 촌스러워서 안봐도 주말드라마에서 본것같겠지만 그게 나니까 괜찮다.그걸 드러내고 보여주는 과정이 기술적으로 부족해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면 안타깝겠지만 원래 아티스트와 테크니션은 종이한장 차이라 뭐든 가지고 놀다보면 자기 손처럼 익숙한 감각이 될것이다.카메라 잘 가지고 놀면 나한테도 좋을것같다.생각지도 못한 내 자신을 가끔 카메라가 잡아준다.내가 생각한것보다도 이미지의 힘은 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