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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너무너무 좋아서 많이많이 걸었지

날이 너무너무 좋아서 많이많이 걸었지


오랜만에 매니저님과 함께 칼국수&쭈꾸미 먹고, 단편영화라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여튼 영상도 보여드리고 즐겁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왔다. 그냥 하천따라 쭈욱 걷는데 피어있는 꽃들도 예쁘고 하늘이 청명해서 좋았다. 생각보다 덥지도 않았고. 애인에게 꽃 사진 찍어서 너 닮았다고 보내줬더니 꽃으로 가득한 들판을 보고, 그럼 자기가 엄청 많은거냐고 되물었다. 그래서 들판이 다 이쁘잖아 😍 이랬다. 하하.


집에가면 낡고 습한 곰팡이 냄새가 나지만 난 그 냄새 좋다. 꼬리 흔들며 반겨주는 우리집 댕댕이도 사랑하고. 내 가족들, 내 사람들을 위해 살고싶다. 지금 과도기를 잘 넘겨가며 나중엔 아름답게 정제 될 내 모습을 기대하며.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사람으로 태어나 가끔 천국을 믿어야만 할 때가 있다. 먼저 간 사람을 추억할 때, 그 사람이 잘 지낼것이라 생각해야 내 마음이 편할 때. 내 손목에는 십자가 모양의 타투가 새겨져 있지만, 먼저 말을 거는 사람에게 꼭 이야기해준다. 십자가가 아니라 그냥 가로줄과 세로줄일 뿐 그 어떤 의미도 없다고.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 진짜일까? 진짜 가로세로일 뿐 이야?

 

아빠의 아빠도 천국에, 아빠의 엄마도 천국에 있겠지. 난 아빠가 아빠의 엄마 아빠와 만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가슴을 이렇게 짓뭉개놓은 사람이지만 용서하는 마음으로 백번천번을 생각해서 아빠가 부모님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릴때 못받은 사랑도 듬뿍 받고 어른이 되고 부드럽게 불릴 일 없던 이름도 불려가며 다시 새롭게 사랑받고 살면 좋겠다. 현생에서 술로 다스릴 수 밖에 없었던 못난 자괴감도 엄마아빠 밑에서 사랑으로 어루만져졌으면 한다. 제발 넘치게 사랑받았으면 한다.

 

나는 아파트 주변에 몸을 못가눌 정도로 술에 취해 쓰러져있던 아빠가 너무 싫었지만,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빠가 너무 싫었지만 그 밑바닥에 어떤 감정이 깔려있는지 알고있었기에 마냥 미워하기보단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애를 정말 많이 썼다. 사실 노력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부분도 많았다. 이를테면 그걸 유전적 사고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비듬이 하얗게 내려앉은 아빠의 점퍼를 보며, 바둑게임에 열중해 욕설을 내뱉으며 담배를 피던 아빠를 봐도 나는 마음이 아팠다. 내가 어릴때 추억하던 아빠가 아니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 앞에 항상 밥상을 따로 차려 주었다. 아빠가 게임에 몰입해서 밥을 거르는게 아니라 가족에게 낯이 없어 본인도 상에 함께 앉지 못하는것을 알았기에 나는 그렇게했다. 어떻게든 아빠와 우리 가족을 다시 연결하고자하는 마음이 강했다.

 

예수가 못박혀 죽은날인지, 다시 부활한 날인지도 모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빠는 커다란 나무를 트럭으로 싣고 와 천장에 닿게끔 집안 바닥에 박아두고는 했다. 어린 나와 동생은 약상자에 들어있는 솜뭉치를 떼다 붙이며 열심히 트리를 꾸몄다. 우리 아빠는 그런사람이었다. 화이트데이가 다가오면 큰 종량제 봉투에 온갖 사탕들을 쓸어담아 사오는 사람이었다. 이유가 생기면 어떻게든 선물을 만들어 주었다. 내 젓가락이 길어서 사용하기 불편하면,  집에 있는 연장으로 내 손길이에 맞게 젓가락을 잘라서 사포로 직접 갈아주었다. 나는 하나밖에 없는, 나만있는 젓가락으로 밥그릇을 비워댔다. 그 당시 동네에 아무도 가지고 있지않던 킥보드나 인라인스케이트를 깜짝선물로 주고, 가족끼리 시원한 바다를 보며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게 주말을 빼놓는 아빠였다. 그랬었다.

 

교복을 입은 내게 담배 심부름을 당연하게 시키고, 핸드폰이 전원이 켜지지 않는다고 대리점에 가서 미친듯이 욕을 내뱉는 사람도 아빠였다. 그것도 아빠였다. 좋아하는만큼 내가 감당해야 할 아빠의 모습, 어른의 모습, 보호자의 모습이었다. 추억은 미화된다고 하니까 어릴때 추억이 더 미화된것도 많겠지만 확실히 아빠는 많이 망가졌었다. 한참을 허우적 거리더니, 그렇게 우리 가족을 가슴아프게 만들더니, 내가 집에 들어가기 싫어 놀이터에서 혼자 펑펑 울게 만들더니 조금씩 일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일을 했고 돈을 벌었고 술을 줄였다. 컴퓨터게임 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간혹 아빠가 담배를 피며 온라인 바둑을 두던 그 모습이 한여름에 낮꿈을 꾼것처럼 희미하게 떠오른다. 넓지만 낡은 베란다, 커다랗게 들어오는 햇볕, 그 쯤 어딘가에 낡은 등받이 의자. 그리고 커다란 스피커소리로 딱 -. 딱 -. 바둑을 두던 아빠. 새벽까지 이어지던 그 소리는 어쩔땐, 아니 꽤 자주 스트레스였다. 바로 옆방에서 뒤척거리며 잠들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다. 지독히도 헤드셋을 쓸 줄 몰랐다. 답답한 중년의 고집이거나 가족에 대한 배려심이 없거나, 반항이었을것이다. 그랬던 아빠는 갑자기 쓰러졌고, 돌아가셨다.

 

생각해보면 아빠의 유년기,청년기 모두 아빠 입에서 직접 들은 적이 없다. 아빠는 지독하게도 본인의 아빠이야기를 꺼리던 사람이었다. 나는 친할머니나 엄마를 통해서 대충 할아버지가 어떤사람인지 유추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빠보다 더 한 사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빠가 그렇게 불안정한 사람으로 자란것도 나는 할아버지가 8할 정도 책임이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단 한번도 아빠입에서 '아빠'소리가 나온적이 없는것만 봐도 그랬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돌아가신 할아버지. 아빠는 확실히 많은 상처를 받고 자랐을 것 같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할아버지를 용서 할 수 없었을까. 한번 그런말을 한적이 있다. 끈끈한 외가식구들이 부럽다고. 아빠는, 어린애로 돌아가 다시 성장해야됐을 '애' 였다.

 

나는 그래서 친할아버지에게도 기회를 주고싶다. 당신이 망쳐놓은 것들이 한둘이 아니니 사랑으로 고쳐달라고. 이제 할머니도 하늘로 가셨으니 모두 모였으니 이제 세가족 잘 살아보시라고. 본적도없는 예수에게 무릎꿇고 비는 어느 멍청한 사람들처럼 매달려 빌고싶은 심정이다. 할아버지님, 부디 우리 아빠 행복하게 다시 키워주세요.

 

 

 

덧붙여 아빠가 천국에 갈까, 지옥에 갈까 그런생각도 많이했는데 이제 상관없어진 것 같다. 내가 다 용서했으니까 아빠는 천국에 있을것이다. 종교 뭐 이런거랑 다 상관없이, 내가 손목에 새긴 십자가 혹은 가로세로와 상관없이 아빠는 천국에 가 있을 것이다. 내가 그리로 올려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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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믿어야 할 건 너 밖에 없어

니가 믿어야 할 건 너 밖에 없어

 

까놓고 말해보자. 니가 지금 누굴 믿고 자시고 할때냐. 너는 너를 믿어야 돼. 불안? 흔들려? 그런거 다 개나주고 니 감정에 충실해. 니가 너를 제대로 믿어 제대로 사랑해야지. 그러기로 했잖아. 그러기로 했잖아. 그렇게 살기로 했잖아. 그렇게 해보기로 했잖아. 상처주지 않기로 했잖아. 나는 나만 믿고 살면 돼. 그러면 모든 일이 잘 풀려.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아. 나만 흔들리는거야. 나만 잘하면 돼. 나만.


[단편영화 제작] 올해 큰 도전

[단편영화 제작] 올해 큰 도전


사실 연출을 맡고싶었지만 열약한 환경에서 작업이고, 다들 아마추어이다 보니까 더 어린 친구가 감독을 하는게 낫다는 생각이었고 나는 음향을 맡아서 붐마이크를 부지런히 들고 다녔다. 생각보다 무겁진 않았다. 찌는 더위에 원룸은 에어컨까지 고장나서(어차피 촬영할땐 소음이 들어가니까 끄고 촬영하긴 하지만) 꽤 애 먹었다. 4명이서 우당탕탕 작업하던거 참 어설펐지만 잊지 못할것같다. 단편영화 제작체험,경험 정도가 더 맞는 이야기 같지만, 많이 배웠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최대한 줄이려면 콘티의 정확성이 중요하다. 나는 시나리오를 직접 쓴 사람이 콘티를 짜는게 옳다고 생각하고, 그게 아니면 감독이 시나리오를 짜는게 옳다고 생각한다. 연출 직빵이니까. 시나리오-콘티를 따로 볼 수 있나. 진짜 어디서 각본 사 오지 않는 이상.


12시간이 넘는 촬영 끝에 남친 집으로 걸어가는데 마중나와서 마이크 짐 다 받아주고, 욕조에 입욕제 풀어주고. 내가 좋아하는 광어 연어 회도 시켜주었다. 보람차고 행복했다. 개운하기가 그지 없더라. 나는 하루하루 고하드 할거야. 빡세게 살거야. 이제 대학원 입시준비는 한발 더 코앞으로 다가왔다. 공모전들도 많이 널려있고. 힘내자. 힘내자 태도야. 네가 제일 중요하니까. 인생에서 태도가 제일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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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살은 가해다

어떤 자살은 가해다


그래 이러한 자살은 가해다. 심지어 그냥 쓰러진 우리 아빠의 죽음도 나에겐 폭력이었지. 궁금하네. 정말 죽음으로 인해 죄로부터 자유로워졌을지.


내 인생에 꽤 지대한 영향을 준 애가 있어

내 인생에 꽤 지대한 영향을 준 애가 있어

 

나는 걔가 아직도 용서가 안돼.심지어 꿈에 자주나와.내가 몸이 아프거나 컨디션이 저조하면 언제나 나와.꿈에서도 걔는 미친년이더라.내가 걔한테 당한 몇년간의 가스라이팅을 뭐라고 설명해야할까.내가 멍청해서 당하고 있었던 그 시절을 뭐라고 설명해야할까.머릿속으로 계산해봐도 납득이 안가고 이해가 안가는 지난난들.어쨌든 넌 내 위에서 군림했고 나를 병신이라 불렀고 그랬으니까.

 

나는 솔직히 지금이라도 용서하라면 할 수 있어.근데 용서를 못하는 이유는 너무 간단해.걔가 사과를 안했어.그리고 걔는 자기도 피해자라고 생각하니까.나는 묻고싶다.그렇게 해서 얼마나 많은것을 얻었냐고.그래서 결국 뭐가 남았냐고.내가 애초부터 말했지 나랑 결이 다르다고.태가 다르고 빛도 다르고 맛도 다르고.그냥 다 달라.세상을 보는 내 눈이 니 눈이랑 다른걸 어쩌겠냐.어쩌겠냐고.그런걸 나한테 풀진 말았어야지 니가 못난건 내탓이 아니잖냐.니가 무엇을 못하고 잘하고 그게 나한테 달린게 아니었잖니.뭐 어쨌든 만나고 싶지도 않지만 내가 성공하고 싶은 이유 중 꽤 큰 부분이 걔 때문인건 인정한다.

 

걜 싫어하는 또 다른 친구가 그런다. 야, 걔 얘기하지마. 듣는것만으로도 스트레스 받고 짜증난다고. 너는 꽤 주변에 그렇게 기억되어있는 사람이다.지금이야 인간됐겠지.누구의 육신을 밟고 영혼을 밟고 인간으로 가는 길, 탈을 썼니? 고맙지는 않니.아님 미안하지도 않니.너는 너만 잘났지.태생이 다르다는거 내가 보여준다고, 꼭 보여줄거라고.보기싫어도 보게 될거라고 너만큼은 봐야되지않냐.나는 내가 잘됐을때 니가 제일 엿같아 할거라고 생각하니까 빨리 잘되고싶다. 내 원동력, 오늘도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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