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정유정 - 종의기원 : 침잠되어있던 악

[책이야기] 정유정 - 종의기원 : 침잠되어있던 악


종의 기원
국내도서
저자 : 정유정
출판 : 은행나무 201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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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전반적인 책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종의기원을 읽으며"


<7년의밤>으로 유명한 정유정작가의 <종의기원>을 며칠 전 완독했다.100페이지 넘어가기전까지 지독하게도 안읽히더니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술술 읽히기 시작했다.나는 이 책을통해 정유정작가를 처음 접해봤기때문에 작가의 스타일을 잘 알지 못하였다.완독 후 작가의말을 읽어보니 악에대해 끊임없이 고뇌하는듯 보였다.다른 작품들도 같은 주제의식을 가지고 진행된 글이지 않을까 싶다.종의기원은 조금 더 악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침잠되어있던 악"


주인공 한유진은 사이코패스중에서도 최상위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이다.한유진의 이모는 이를 '포식자'라고 칭한다.먹이사슬의 위쪽에 존재하는 포식자.지성과 교양으로 차있는 인간사회에서 포식자라는 단어는 어울리는가.한유진은 그정도로 위험한 존재로 여겨진다.엄마와 이모는 한유진의 포식자성질을 통제하기위해 약물치료와 인지치료등 할 수 있는 모든방법을 동원한다.자신의 병적발작이 간질때문이라고 믿었던 한유진은 후에 모든 사실을 알게되고 이모와 엄마를 향한 분노와 배신감으로 점철된다.종종 엄마와 이모 또한 한유진에게있어 가해자라는 리뷰를 보아왔다.한유진속에서 악이 발현한 까닭은 자아살인당했기때문이다.라는말에 어느정도 동의하면서도 이모와 엄마의 한유진케어의 명분은 상당히 도덕적이었기때문에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다.


한유진은 악 그 자체로 존재한다.그러나 책이 끝날때까지도 한유진이라는 인간에 대해서 아리송하게 만드는 면이 많았다.우리가 생각하는 싸이코패스는 아무감정을 느끼지못하며 죄의식이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의 인물인데,한유진은 그 중간어디에 발을 걸치고있는듯한 캐릭터였다.물론 한유진이 저지른 과오들은 용납될 수 없다.사회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정유정 작가는 이 점을 염두에두고 글을 썼다고 한다.외부인의 시선으로 보는 악인이 아니라 주체로서의 악인으로 한유진을 그려냈다.그렇다면 우리는 조금씩 한유진과 다르지 않을것이다. 시대를 건너 올라가면 전쟁의역사가 있다.전쟁을 통해 패전국과 승전국이 나뉘어지면 승전국은 그에따른 이득을 취했을것이다.그렇다면 전쟁의 역사 이전에는 어떠했을까.이득을 따질 수 없는 사느냐 죽느냐,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을것이다.그렇게 인류는 살인의역사로 진화되어왔다.약간의 비약을 더하자면 우리의 조상들은 살인으로 승리한 승자들이며 우리는 그 후손들이다. 우리에게도 어쩌면 그러한 유전자가 잠식되어있을지도 모른다.나는 참 이말이 소름돋았다.살인 유전자가 내포되어있는 인류들의 인간사회라니.


끔찍한 포식자들은 우리 주변에도 있을것이다.학교를 가는 버스안에서도,밥을 먹는 식당안에서도 매의 발톱을 숨긴채 목덜미를 바라보며 사냥할 때를 노릴 수 있을것이다.하루가 부족하게 살인뉴스는 보도되고있고,그 내용들은 갈수록 경악스럽기 그지없어진다.인간 내면의 어둠의 숲은 누구에게나 있다.그 어둠의숲을 도덕과 이성으로 키워낸다면 사람을 잡아먹는 숲으로 진화하진 않았을것이다.한유진의 경우 생존에 위협이 느껴질때마다 살인을 행했다.그 피해자가 엄마와 이모와 친구이자 형제인 해진이다.다만 딱 하나의 사례.빗속을 걸어가던 우산을 쓴 여인을 살인한것은 한유진이 싸이코패스이기때문에라고밖에 설명되지않는다.살인을 하는 순간과 겁에질린 여인의 표정이 그의 심장을 격렬히 뛰게 만들었다.그 쾌감과 흥분감을 잊지못했을것이다.포식자가 아닌 우리들은 너무 비극적인 순간이지만 한유진에게도 그것이 비극이었을까.불행하게도 그는 포식자임을 자각하게되었지만 그는 불행하지 않았다.그는 진정한 자신을 만났다.



"깊고 검은 물"


물의 이미지를 잘 사용한것같다는 생각이 든다.물은 한유진에게 양수와도 같은 공간이었을것이다.물속은 한유진에게 있어 세상밖과 단절되는 공간이다.엄마의 히스테릭한 '유진아!'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공간.자유가 허락되는공간.그 공간은 단순히 현실에서 벗어나는 도피처로 그치지않는다.생명의 기원이 바다에서 시작됐다는 말이 있듯이 만물의 어머니인 물은 한유진도 품에안을 수 있다.그리고 그 속에서 한유진은 악으로서 잉태되기 시작했다.몰래 약물을 중단하고 수영대회에 나갔을때,부둣가에 앉아 바닷물을 바라볼때,비내리는 스산한 도로위에서 한 여자만 응시하고 뚜벅이며 걸어갈때,자신의 집을 파탄내고 도망치기위해 검은바다로 뛰어들었을때.이 모든 순간들은 한유진에게 자아를 드러내도록 만든다.한유진이 살기 위해 도망친 겨울바다는 손으로 검은액체라도 퍼올릴 수 있을것처럼 새까맣고 깊고 차가운 어둠 그 자체였다.그 속에서 한유진은 스스로 생존했다.어쩌면 영웅기처럼 보일수도있는 그의 모습은 그래서 모순적이다.도의적인 명분이 아닌 오로지 생존을 위한 살인.그 살인을 운명처럼 행하는 살인마 한유진.뱃노동자 세월을 끝내고 우리네 거리속으로 들어온 한유진을 우리는 가려낼 수 있을까.피한다면 피할 수 있을까.집을 부수고 검은물을 지나서 우리네 세상으로 들어온 한유진은 누구일까.





작가의 말 中


프로이트에게서 얻은 미약한 실마리 하나


'도덕적이고 고결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깊은 무의식 속에서는 금지된 행위에 대한 환상, 잔인한 욕망과 원초적  폭력성에 대한 환상이 숨어있다.사악한 인간과 보통인간의 차이는 음침한 욕망을 행동에 옮기는지,아닌지의 여부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