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건 포기하고 또 포기하는 과정

사는건 포기하고 또 포기하는 과정

죽지않고 산다면,적어도 죽을때까지 포기를 반복하는게 인생.저마다의 포기. 저마다의 무게.


늙고 마른몸으로 한쪽어깨에 짐가방을 메고 다니는 엄마를 뒤에서 바라보자니, 그어깨가 너무 가볍더라.짐덩이라도 어깨에 눌러붙어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없어보이더라.짐이 있었던 흔적만 남아있더라.화석같은 어깨.몇천년전에 살아있었다는 증거.살아있었다라는 과거.엄마의 어깨를 보면 지나갔다라는 느낌밖에 들지않는다.혹은 내가 그 마른 어깨에 짐덩이를 올려주기 싫어서 그런걸지도.물론 내가 이렇게되어서 짐이됐지만.


포기하고 또 포기하고 내려놓고 꺾이고 부러지고 부숴지고 깨지고 내려앉고 가라앉고 잠기고 깎이고 눌리고 찢기며 반복된 흔적만 있는 엄마의 어깨.


죽은 아빠는 말이없다.원래 그 흔적은 같이 나눠가져야 맞는건데 혼자서 가버려서.큰아빠가 요즘 몇번 나한테 전화를 한다.난 큰집과 크게 교류하지않는다.그런데도 큰아빠가 나한테 전화하는 이유는 알것같다.그냥 큰아빠도 늙고 나이드셨기때문이다.나에게 할머니인 아픈 엄마를 보며 동생을 생각하고 동생의 자식을 생각하고 그나마 잘 따랐던 날 생각하니 전화하시는거다.납골당엔 자주 가냐 물으셨다.난 아빠가 돌아가신이후로 단 한번도 내 발로 납골당에 간적이없다.큰아빠가 그런다.니가 아빠를 많이 좋아했구나.


그런가.내가 아빠를 많이 좋아했나.어째 살수록 원망밖에 안들고 용서가 안되는데 이게 좋아하는건가.애증을 넘어서 애환이 되는 존재.나를 울화에 가둬버린 장본인.내가 그렇게나 따랐고 그렇게나 불쌍하게 생각하고 그렇게나 싫었던 아빠.어쩌면 내가 무언가를 생각할때 온전히 감정 한가지를 쓰는게 아니라 오만가지 감정이 섞여들어 나조차도 내 감정에 의한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수없는 이유도 아빠때문 아닐까.좋은데 불안했던것같다 늘상.술을 마시는 아빠가 무서웠고 집에 들어오지않는 아빠가 얄미웠다.어떻게 그정도로 엄마랑 싸울수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어떻게 그정도로.


어떻게 그정도로 살다가 갈수가있는지 어처구니가 없더라.엄마와 동생과 나한테 빚진게 그렇게나 많았으면서 그걸 천천히 갚아나갈 기회를 주고 그럴 마음을 가졌던 나를 남기고 그렇게 갈 수 있는지 참 이해가 안갔다.


어쩌면 아빠도 똑같아.아빠임을 포기해가고 남편임을 포기하고 나중엔 사람노릇도 포기하다가 다시 돌아오려고 발버둥치는 그 불쌍함과 정신의 병듦이 지금의 나와 너무 같아서.뭐라고 하지도 못하겠다.피가 어디갈까.


내가 딱 반으로만 갈라졌음 좋겠다.성공하지 않아도되니 그냥 굶어가며 일해도좋으니 내가 하고싶은거 걱정없이 하고 살아가는 나와, 독기 바짝품고 가족을 다시살려내고 기둥을 다시 박아넣고 볼품없는 할머니가 되어가는 엄마를 호강시켜주는 그런 나.이렇게 내가 둘로 갈라지면 좋겠다.자꾸 반대방향같은데 나는 둘다 되고싶어하는것같아.그래서 괴로워.진짜로 너무 아프다.


가족 한명 잃는거 누군가에겐 대수롭지않은 일이거든.드라마나 소설 텔레비젼 혹은 옆반친구 대학동기들에게 한번씩 듣고 겪고 보던것들이라 흔한불행이거든.고리타분한 아픔이거든.남의 상처거든.근데 그게 나한테오면 세월속에 염증이 쌓이고 상처가 남아서 온전해지지 못한다.어떻게 아직도 그일로 아프냐고 묻지만 그럴 수 밖에없다.그 일이 있었던게 사실이니까.있던일이니까. 없던일이 될 수 없으니까. 아무리 말해줘도 몰라.그냥 겪어봐야돼.특히 사춘기때.쌓여온 세월을 아무리 말해줘봤자 모르는게 당연하지.


잘 차려놓은 저녁밥상도 상다리 하나 없다고 한쪽으로 우르르 기울어진다.그냥 그렇게 된다.그릇은 깨지고 음식은 뒤섞이고 먹을 수 없게된다.그걸 음식물쓰레기 봉투에 버려야하는데 버리질 못해서 주섬주섬 치우고 정리해서 상위에 다시 올려놓으려고 노력하는거.그게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인생이다.관전만 하는 사람들은 그거 못먹으니까 버려,라고 쉽게 말하지만 차려놓은 사람들은 그럴수가없다.그 음식에 들인 정성과 시간과 사랑하는 마음까지 한번에 버릴수가 없기때문이다. 같이 모여앉아 맛있는 한끼식사 먹으려던게 평생 이 난장판을 만든것같아 죄가된다.죄책감에 갇힌다.그리고 다리가 세개밖에 없는 상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쓴다.그렇게 산다.청승떠는게 아니라 상이 그것뿐이니까.나도 몰랐는데 살아보니까 이렇게 살수도 있더라.그위에서 밥을먹고 물을마시고 그럴수가 있더라.멀쩡하진 못하지만 살기는 살더라.멀쩡하진 않지만.절뚝거리는 마음으로 계속 살고는 있는데.진짜 가끔은


말 잘하지.가끔 내가 비유를 잘하고 원래 말도 좀 잘해.근데 누가 알아줘.누가 알아주게 이제 뭐 좀 해야하나? 내 자신아 기운좀내자.두려워도 아파도 힘들어도 새삼스러울것도 없잖아. 언제는 안그랬냐.힘내.불쌍하고 뻔뻔한 나 자신아.기운내.조금이라도 더 발악하자 그럴 힘이라도 힘있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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