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들하고 같이 살았다.

그것들하고 같이 살았다.


내 외로움을 누가 알까.단순히 다르다는 느낌에서 오는것이 아닌 뼈아프게 나는 틀렸다는 느낌에서 오는 패배감을 대체 누가알까.


희망은 불안하다.나를 배신하기 때문에.희망은 언제나 날 배신했다.한번 두번 세번,일년 이년,그리고 십년이 다 되어가도록 나를 버렸음에도 버린적이 없었던것처럼 또 버리고 또 내다버린다.그런데 절망만큼은 날 버리지 않았다.내가 쫒기듯 선택한 유일한 방법.절망속에 들어가는것.불안과 불행과 익숙해지는것.그것들이 나를 죽지 않게했다.힘이 들면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사고를 하면서 나를 다스렸다.더 힘들어질수도있다고.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리고 보란듯이 절망은 내 부름에 응답했다.내가 생각하던것보다 더 불행하게,더 아프게.그렇게 절망은 나를 배신하진 않았다.나는 차라리 그게 나았다.날 계속 버리는 희망을 가지고 살기엔 너무 아파서 그냥 손을 놓았다.진짜 내곁에 있던 적 없어서, 그걸 가져본적이 없어서 불편했다.불행만큼 익숙하고 편한것이 없어서.그래서 그랬다.그게 결국 내가 틀린 이유가 됐다. 나는 틀렸다. 나는 정답에서 벗어난 인간이다.


그럼 나는 대체 어떻게 했어야됐을까.어떻게 버티고 어떻게 연명해야 했을까.살긴 살아야겠는데 살 수 가 없어서 이렇게 살았다.절망,불행,버림받음이 익숙해서 그것들하고 같이 살았다.


나에게 사랑표현을 많이해준 아빠는 너무 불온한 사람이었고 강인했던 엄마는 내가 기댈수없는 단단한 사람이었다.내가 이리도 약했던가.이렇게 약했던가.


어떻게 산다고 살았는데,시간이 흘러 바람에 깎이고 깎여 드러난 알맹이는 초라하다 못해 비참해서 눈을 뜨고 볼 수 가 없다.나는 어떻게 해야할까.괜찮다고 나는 할수있다고 다독이며 옷을 입혀줘야할까.너는 뿌리부터 썩었다고 윽박질러야할까. 들은게 윽박뿐인것같다.


몇년전 현관에서 컨버스화 끈을 매며 펑펑 울었었다.나갈 준비를 하긴 하는데 나갈 수 가 없었다.그 철문은 나에게 그냥 현관문이 아니었다.항상 문을 열 수 없었다.뭐가 있을지 몰라서.날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 혹은 내가 가질 수 없는것들 가진 사람들.꽃이 만개하여 수놓은 풍경.바람에 살랑거릴 잡초허리들까지.문만 열면 나랑 어울리지 않는것들이 펼쳐져서 자신이없었다.문앞에 주저 앉아서 펑펑울던 아무도 이해할수없는 그 모습을 나말고 누가 이해할까.그 외로운 광경을 뚫고 나가서 다시 외로운일터에서 돈을 벌고 외로운 나의 작은방으로 들어는 외로움을 나말고 누가 이해할까.


고등학생땐 교실문을 열지 못했고 대학생땐 강의실 문을 열지 못했고 성인이 되어서 학원문을 열지 못하고.이상한 패배감.이미 고장난 사고회로.


수십명이 들락거리게 열어놨던 내 마음의 문을 누가 어떻게 닫았는지 난 지켜본적이 없다.문이 닫힐거란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그러지말걸.의심하고 경계하고 살걸. 이제와서야 누가 그랬는지,왜 그랬는지 내가 왜이러는지 수십번을 생각해본들 사실은 변할 수 없다. 문이 닫혀 있다는 사실.


조용히 누울 침대가 아니어도 아무거나 내가 편할 수 있다면 땅바닥이든,관짝이든 이젠 제발 아무거나.이만하면 나는, 된거같은데 도대체 어디까지 떨어져야 내가 누울 자리가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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