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독립 블루스

반지하 독립 블루스

여자 혼자 반지하 살면 위험하지 않냐, 힘들지 않냐는데 일단 나는 괜찮다. 살만하다. 내가 워낙 집 다운 집에서 못 살아봐서 그런지 내 머리 하나만 뉘일 곳 있으면 다 집같아 보여서 그런건 좋다. 자리 안가린다는 뜻. 서울로는 차마 올라가지 못하고, 서울로 미팅할때마다 통근이 가능한 인천으로 집을 얻었고 그 과정에서 또 어른들의 도움이 있었다. 나는 언제쯤 제대로 된 어른노릇 하면서 살려나. 다들 그러신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너, 잘 살 생각부터 하라며. 맞는말이다. 내가 누굴 챙길까. 나부터 급한데.

일은 재밌는데, 그들만의 위계질서에 조금 숨막히는 감은 있다. 내가 지나치게 눈치보는 것도 있을테고. 자연스럽게 행동하자! 하고 다짐해도 회의만 들어가면 하루 온종일 초긴장상태다. 나이 든 막내노릇 쉽지 않다. 특히 회의록 작성하는 일이 조금 힘이 든다. 아이디어나 대화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니까. 솔직히 녹음도 하기는 하는데 잘, 듣진않는다. 집에와서 필요한 부분만 재생해서 복기한다. ㅋ. 그래도 배울 수 있는 점은 굉장히 많다. 좋다 그런거는.

서른넘어 침대도 처음이라면 처음으로 가져봤고 예쁜 조명으로 집도 꾸며놨다. 조금 외롭지만 많이 자유롭다. 본가에 있는 강아지가 자꾸 맘에 걸리긴 하지만, 열심히 돈벌어서 엄마한테 효도하고 우리 예쁜 강아지 입에 맛있는 딸기 넣어주는것이 내 인생의 낙이 될 것 같다. 나 이제 장녀 노릇해야지. 효도해야지. 그동안 너무 나 혼자 아팠던 것 같다. 지금도 뭐, 건강하고 밝고 신선한 뇌는 아니지만 그래도 전보다 나아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버벅거리는 엄마의 핸드폰을 무이자 7개월로 구입해 바꿔주고 생색 조금 내는 삶 같은거 재밌잖아. 강아지 사료 대용량으로 본가에 보내주고 뿌듯해 하는 삶 즐겁잖아.

배우고 깨지길 바란다. 여러번 혼나길 바란다. 그러면서 내가 단단해지길 바란다. 뜨거운 가마속에서 푹푹 삶아지는 도자기들 처럼 엄청난 압박을 견디며 내가 쓸 만한 그릇이 되기를 원한다. 기어코 환영한다.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꼽주고 맘대로 하라고! 나는 더 단단해질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