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볼링

첫 볼링


남자친구와 함께 몇달 전 볼링을 처음 쳤다.그날 친한친구 커플과 더블데이트를 하는날이었고,볼링을 한번도 안쳐본 나는 부끄러운상황이 생길까봐 혹은 나혼자 너무 뒤쳐진 점수를 받아서 분위기를 깰까봐, 전날 저녁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다.유투브로 볼링의 기본자세를 보고 또 보고 볼링장을 들어가본적도 없으니 출입문이 관짝보다 열고닫기 어려워보였다.볼링화 대여하는법부터 하나하나 누가 경험해놓은걸 그대로 보고 배울 수 밖에 없었다.구멍에 손가락을 넣자.다 넣으면 빼기 힘드니까 반절만 넣고 어깨를 축으로 손목이 움직이지않게 반듯하게 공을 굴리는거야.배웠어.익혔어.못하진 않을거야.


새벽을 지새고 난 뒤, 친구커플을 만나기전 볼링장에서 미리 연습을 해야한다고 졸랐고 결국엔 볼링장입성.그것도 락 볼링장! 그냥 아이돌 뮤비 나오고 최신유행곡 나오고 조명 조금 반짝이는곳.들어왔다 내가.가장 빠른시간안에 친해진 친구와 함께.


대학 시절 볼링동아리가 있었다.관심이 없진 않았다.무슨 동아리가되었든 들어가서 배우고 놀고싶었는데,그게 잘 안됐다.그러니까 배우고 놀려면 들어가야하는데, 그게 잘 안됐다.사람들 사이에 들어가지지 않았다.병적으로 나를 계속 괴롭히던 전극같은거.내가 S극이면 사람들은  N극.가까이 가려해도 빙빙빙.대체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안그랬는데 왜 사람들이 무서워졌지.특별한 이유도 특별한 사건도 없었는데.내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던 외로움과 불안감은 그렇게 나를 좀먹어서 배울수도,놀수도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기껏해야 볼링장이야.

그냥 데이트코스야.

옆을 봐 조그만한 애들도 가족끼리 와서 공 굴리고 노는 그냥 그런곳이야.

그냥 그런 곳이야.


식은땀이 멈추지않았다.아는데도 자꾸 줄줄 식은땀이났다.이상한 압박감.공을 굴려야하는데,핀을 맞춰야하는데,점수를 내야하는데.아는데도 그게 잘 안됐다.7KG의 무거운 볼링공을 손가락에 끼워넣고도 한번을 제대로 굴리지못해 벌벌 떨기만했다.그나마 성격좋은 남자친구가 오래 기다려주고 알려줬다.괜찮아 무서운거 아니야.저쪽봐 저기도 못치는데 그냥 치잖아.괜찮아.괜찮아.


공이 똑바로 나아가지 않으면 어떡하지, 너무 무서워서 어떡하지.단순히 공을 던지는게 아니라 난 이게 엄청 큰 도전같았다.한발 내딛어 땅을 밟을 수 있게되는것처럼.그 한발이 너무 위대해서 쉬이 내가 따라할 수 없는것같았다.던지자.그냥 던지자.맞고 그르고 그런거 그만생각하자.던지자 그냥 던지자. 20분이 넘게 혼자 볼링공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뒤로돌아오고 땀을 뻘뻘흘렸다.지금내가 바보같을까.지금 내가 소심해보일까.아니면 오랜시간 아팠던 사람처럼 보일까.날 작아지게 만드는 잡념들,좋지않은 잡념들이 점점 발밑에서 무릎까지 올라오고있을때 남자친구가 말했다.괜찮으니 그냥 쳐보라고, 아까 잘 나아가고있었는데 왜 되돌아왔냐고.


그런생각을 한다.수 없이 뿌려지고 반사되는 응원과 격려의 말속에서 진짜다운 진짜를 찾는것은 매우 힘든일이라고.그리고 나는 진짜다운 진짜 응원을 찾았다고.그래 어설퍼도 잘하고 있었는데 일단 던지려고했으니까 앞으로 몇발짝 걸어가긴했으니까 던지자.그리고 나는 던졌다.


그게 다였다.공은 굴러갔다.그냥 굴러가서 도랑에 빠졌다.결국 이럴거 왜이리 힘을 들였을까.멋쩍은 바람이 입가에서 빠져나왔다.동시에 안도감.이제 2번재 3번째 공을 굴릴 수 있겠구나.하나의 세계를 열었다는 기쁨.행복감.그런것들이 나를 가득채웠다.친구네 커플이 와서 볼링을 쳤을때 난 4명중에 2등을 했다.성취감.기쁨.재밌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즐거움.어린아이같은 즐거움.


앞으로 많은것을 해야겠다.너무 힘들어서 물밑바닥만 보고 지냈으니 밖으로 나와 땅도 밟고 행복하게,즐겁게,쪽팔리게,감수할수있는 마음으로 그렇게 살아야겠다.공포감과 막연함은 뛰어넘고 제발 내가 바라는 나의 최종 꿈.영화감독이 아닌 사람노릇.그거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열심히 많은걸 깨부수도록 노력해야겠다.이제는 해야겠다.손가락을 살짝만 틀어도 공의각도가 달라져서 점수 한점 낼 수 없는 정직하고 매력적인 볼링이란걸 알았으니까.다음엔 더 신나고 더 잡념하지않도록 즐거운걸 찾아다녀야겠다.이를테면 번지점프? 이거는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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