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있다면

신이 있다면


나 한사람은 의미없이 살다 죽어도 덜 억울하니까, 우리 엄마 인생이나 펴줬으면.불쌍한 우리엄마.나는 가끔 우리집 강아지보면서 강아지가 오래살까 엄마가 오래살까 상념한다.엄마에게 물어보기도한다.엄마 엄마가 강아지보다 오래살수있을것같아?그럼 그런다 이년아 내가 빨리 죽지.둘이 바람기 빠진 웃음으로 대화는 끝나지만 나는 발가락을 까닥거리며 또 생각한다.진짜 강아지보다 엄마가 더 빨리 죽을수도있겠지.


나는 이렇게 태어났으니까 이렇게 산다고쳐도 엄마는 뭘 잘못했길래 이렇게살까.아무리 생각해도.결혼밖에 없는것같아 엄마가 이렇게 된 이유는.진짜로 남자 하나 잘못만나서 평생 팔자를 말아먹고 빌어먹을 자식까지 속썩이는거야.남자 잘못만난 여자인생.너무 두려운 인생.내가 보고 자라고 느껴왔던 두려움의 근원.엄마가 될 수 없잖아.엄마를 봐 왔는데 나한테 엄마가 되라니.엄마가 되고싶지 않은데.어쩌면 그거 벗어나려고 이렇게 발악하는건지도 모르는데.내가 아이를 예뻐하고 잘 놀아주고 이런 차원이랑 달라.나는 조금 더 나한테 집중하고싶어.내 위로 집중하고싶어.나를 만들어준 엄마.그거 방빼서 혼자산지 얼마나 됐다고 자꾸 엄마가 불쌍해진다.엄마는 한달에 60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우리 둘을 어떻게 가르치고 생활하고 살았을까.까맣게 타서 전에 뭐였는지 모르겠어.엄마를 보고있으면 예전 엄마가 생각나지 않는다.그냥 숯덩이같은 마음과 탄력을 잃은 다릿살과 굽어가는 어깨.야위어가는 몸.갈수록 대화할때 자기이야기만 하는 엄마를 보고있으면 정말 할머니 다 되어가는구나.그 생각한다.할머니지.몇년 있으면 일흔인데.


왜 내 배고픈 청춘과 노년이 맞닿아서, 그렇게 결혼도 늦게해서 낳아놓고 재미도못보고.아빠는 간 사람이니 이제 어쩔 수 없고 엄마라도 세상재밌는거 많이 하고 살 수 있게 내가 잘했으면 좋겠다.사실 나는 잘 버텨왔잖아.몇번씩이고 무너질뻔한 나를 자의 혹은 타의로 다잡고 일어나고 절뚝이면서라도 걷고 기고 했잖아.그렇게 더 해볼테니까 그중에 한두개는 운이라는게 나한테도 따라주면 좋겠다.그 운이라는거.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거.오천명이 넘는 전교생중에 나를 편부모로 만드는 불운같은거.장례 다 치루고 수업들으러 학교갔더니 중환자실에 입원한 아빠를 떠나보내는 가족의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게 됐을때.내가 방금전에 그러고 왔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교과목선생님은 자기가 열심히 준비한 수업으로 애들을 가르칠때 그속에서 친구가 건네준 휴지가 너무 수치스럽게 느껴져 당장 치워버리고싶었을때.그런 불운들의 연속.불운의 몽타주.


운이라는건 줄줄 꿰어있어서 사람을 미치게한다.나도 저때 미쳤을걸.나보다 전인가 후인가 아빠를 여의게 된 애가 한명 더 있었다.다른반 친구라 그리 친하진 않았지만 몇번 얘기나눠보던 아이였다.그 아이의 아빠가 죽었는데, 동네방네 현수막에 걸렸다.누구라도 한명이라도 더 유감을 표할려고.그 친구 아빠 국회의원이었거든. 똑같은 죽음인데 누구는 현수막에 걸리는 인생을 살고 누구는 잡부로 만나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도 외면한 장례식을 치룬다.개새끼들.내가 너네를 정확히 모르는게 한이야.어떻게 그사람들에게 연락이 닿은 큰아빠가 식장으로 부르며 부고를 전했지만, 그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핑계들과 무미건조한 목소리들.나는 니네들을 기억하는데.내 집앞에서 어디서 얻어 빌린것같은 대포차를 세워놓고 건달행세하며 술친구로 내 아빠를 끌고다니던 니새끼들이 기억나는데.우리집에서 매일 술상차려먹던 너희들의 차림이 다 기억나는데.아마 도박하고 있었다지.노름판이 재밌어서 식장에 올 이유가 없었다지.나는 중학생때 이미 죽음의 값을 배웠다.죽음에도 팔리지 않는 싸구려값이 있다.모두에게 위로받고 조명받던 그 애의 아픔.그리고 오천명 속에 조용히 묻혀야했던 내 아픔.아무것도 아니지.이런건 아무것도.


막연한 생각이지만 꿈은 이룰 수 있을것같아.느리게 이뤄도 꿈이니까.일흔쯤에 이뤄도 이루는거겠지.그럼 가능은 하겠다.근데 내가 일흔이 되면 엄마가 살아있겠냐 이거지.그 불쌍한 여자의 인생을 내가 좀 다림질해주고싶은데.구겨진부분도 펴주고싶은데.내가 너무 나약하고 외로운 청춘이네.외로운 중년만 하겠냐만은.누구 뜻대로 요즘 이런사람없어 할때 이런사람한테 팔려갔어야했나.장사도 양심이 있어야하지.요즘 사람같지 않을만큼 착하고 좋은사람한테 나를 팔면 돼 안돼.안되는거지 그거는.잘했어.


신한테 하나 물어보자.너 왜 뭘 만들때 생각없이 만드냐? 창작의도도 설명 못하는 작가는 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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