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탈2

일상 일탈2



11월 28일 이후 시점이며 전 글과 이어짐.



아침몇시에 오프닝이 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채,동시에 알고싶지도 않은 마음으로 새벽 내내 친구들과 떠들고 놀았다.그 친구의 방은 바닥이 무척이나 따뜻해서 아랫목에 누워있는 기분을 들게했다.엉성하게 깔아진 볼품없는 이불위로 두 몸뚱이가 굴러다녔다.주인친구는 침대에 누워 이미 잠이 들었고 바닥에서 밍기적 대는 나와 다른친구도 더 뒹굴대다 이내 잠이 들었다.상위로 어지럽혀진 음식물잔해와 쓰레기들은 신발장 구석으로 밀어넣은지 오래였다.기약없는 잠자리.내일 할일이 있음에도 서두르지 않는 무모함.이것이야말로 진짜 내가 삶을 사는 방식이지 않았을까?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지 않았을까? 영혼도 뿌듯함을 안고 육체와 함께 잠들었다.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어도 기운이 넘쳤다.셋중에 가장 먼저 일어났다.주인 친구도 곧 알바 갈 시간이라며 일어나 준비를 했다.걔 머리를 내가 조금 말려주었다.화장실에 들어가 나도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독특한 보랏빛 샴푸거품이 바닥 하수구로 빨려들어갔다.제비꽃 냄새가 이런냄새인가.진득하니 맡아본 적 없는 냄새를 떠올리다 이내 머릿속에서 잡념을 지웠다.나의 졸업상영회날 아침은 다른 과 친구들과 달랐을것이다.시계를 보지도 않았다.지하철 노선으로 시간을 따지지도 않았고 난 그저 일어나서 씻은다음 얼굴에 화장을하고 고데기로 머리에 웨이브를 넣었다.자고있던 친구를 흔들어깨웠다.나 오늘 꿀리면 안되니까 네가 내 머리 좀 말아줘.뒷머리를 친구에게 부탁했다.긴 머리카락은 열이 잔뜩 난 동그란 기구가 꼬는대로 꼬였다.그리고 나서 또 드는 생각. 아, 너무 빡센가? 손으로 살살 머리를 흐트러놓았다.화장도 공을 많이 들였다.마음껏 쓰라던 친구의 화장대에서 고작 스킨로션만 덜어쓰고는 내 파우치에서 꺼낸것들로 조금의 틈도 없는 화장을 했다.눈썹도 칼로잰것처럼,피부도 잡티 하나 없는것처럼 왜냐하면 난 꿀리기 싫었다.준비를 마치고나서 냉장고를 열어 호박즙을 가득 챙겼다.처리 곤란했는데 다 가져가라는 친구의 말은 내가 호박즙털이를 하는데에있어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다.붓기빼는데에 좋다니 관리차원에서 쭉 마셔줘야겠다 따위의 생각을 하며 친구와 같이 집을 나섰다.


가는방향이 아예 달랐다.나는 지하철노선이고 버스노선이고 쳐다보는게 귀찮아져버려서 그냥 택시를 잡아탔다.어디 학교로 가주세요.말을 한 다음 창밖을 보았다.거지꼴로 손을 흔드는 친구가 있었다.바이바이.나도 창문을 열어 손을 흔들었다.잠을 며칠째 제대로 못잤어도 이토록 상쾌하고 개운한 아침이라니.만물이 피어나는 기분에 내가 먼저 택시기사님께 말을 붙였다.사람좋은 노년의 기사아저씨는 어린승객이 조잘대는것을 들어주며 같이 대화에 동참했다.호박즙 한무더기를 조수석 앞에 덜어드리니 좋아하셨다.그거 유기농이래요.유기농인지 아닌지 확인 할 길 없지만 그렇게 이야기했다.기사아저씨는 수많은 승객중 나를 태운것이 로또라도 맞은냥 좋아하셨다.그정도인가.신호가 걸렸다.기사아저씨께 세상사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있던 참이었다.주책인가 방정인가.나도 내 세상사는 이야기를 했다.짧고 강렬할 수 있는 첫 마디.저는 아빠가 어렸을적에 돌아가셨어요.그러면 자동반사적으로 저쪽에서 나오는 한마디.어이구.


예쁜 아가씨 잘가라는 인사를 들은후 택시에서 내렸다.보잘것없는 나를 위해 이곳까지 발걸음을 했을 내 친구들에게 전화가 많이 와있었다.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핑계를 대자면 내 휴대폰은 언제나 무음이기때문에,두번째는 원래 연락하는걸 별로 안좋아하기 때문에 뭐 그런이유로.오프닝은 언젠지도 모르고 그냥 내 작품 상영시간만 대충 맞춰서 도착을했다.지하 몇층이더라.길을 엄청 해맸다.빙글빙글 돌아 내 친구들보다 훨씬 늦게 도착한곳에서 출장뷔페음식들로 다과회가 한참이었다.나는 한입도 맛보지 않았다.굳이 먹고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 음식을 먹으면 내가 무언가에 소속될것같은 느낌에 그냥 입에 대지않았다.친구들이 보였다.친척오빠와 친척동생도 보였다.평생 언제 받아볼까 싶은 꽃다발을 안고 상영회장으로 들어갔다.여담이지만 친척오빠가 내 친구에게 약간의 호감을 느꼈나보다.자기 머릿속에 어떤 아름다운여성상의 기준이라도 있는걸까.그친구가 깔끔하니 예쁘긴한데 남의눈에 그정도로 비추어질줄은 몰랐다.괜히 뿌듯했다.짜식이.


처음보는 작품들도 많던데 굉장히 잘만들었다.나는 공동작품이었고 내뜻대로 되지않거나 그냥 울며겨자먹기로 했던 부분도 많고 기술적으로 분명 후달렸기때문에, 좋은 평을 들을거란 생각은 안했는데 나름 좋아하더라.뒤쪽에서 느껴지는 발칙한 리액션도 웃겼다.개인적으로 2부에서 마음에드는 작품이 2가지 있었다.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3,4부까지 볼 이유가 없었다.어차피 나는 이 공간도 다 지겹고 지루했기때문에 빨리 나가고 싶었다.친척오빠가 맛있는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이 근방에서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밥까지 먹는다니.여행온것처럼 모든게 들썩였다.들썩들썩.구름도 들썩들썩.바람도 제 리듬을 타는듯 들썩들썩.손바닥이 미어터질정도로 꽉 잡고있었던 많은 꽃다발도 들썩들썩.아.마음껏 소리치고싶었다.무언가 새로웠다.모르긴 몰라도 며칠전의 내 모습과 다른 내모습은 정말 건강해져가는것같았다.그래, 좋은 밥 먹으러가자.대신 오빠가 사! 폐에 바람빠진 사람처럼 엄청 깔깔대면서 거리를 걸었다.



2015/12/01 - [E] - 일상 일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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