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의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의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돌아가셨고

아빠의 엄마는 아빠를 본인보다 먼저 떠나보내셔야했다.

아빠의 엄마는 남편을 잃고 아들을 잃었다.

내가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찾았을땐, 본인 자신도 잃은 모습이셨다.

나를 기억하지도 아빠를 기억하지도 못하셨다.

나에게 호랑이가 너무 무섭다며, 조심하라며 연신 손을 쓸어주셨을 뿐이다.

 

조그만 유골함에 담긴 흰가루는 몇십년의 세월을 산 사람이라 생각이 들지 않을정도로 한줌이었고 사방이 탁 트인 곳에 흙과 같이 묻히셨다.

 

아빠는 달랐다.아빠는 보기만해도 답답한 유골함에 들어갔고, 유리창도 아닌지라 겉으로보면 학교다닐때 사물함같은곳에 십년넘게 있다.

 

나는 그런거지. 아빠는 아빠와 엄마를 천국에서 만났을까.같은거지.사후세계를 믿고싶은편은 아니지만 엄마 아빠 다 있는 공간에서 살아 생전 이해받지 못하고 모난행동했던거 한살로 다시 돌아가, 애기로 다시 태어나서 못했던 아빠 얘기, 엄마얘기 많이 하며 살고 있나 그런거지.이런 상상이 얼마나 허무하고 무의미한지 알면서도 하게되는거지.그냥 한켠으로는 바라는거지.

 

아빠가 새벽에 쓰러진 순간 우리가족은 말 그대로 무너져내렸다.몸통에서 허리가 없어진 기분.그걸 내가 어떻게든 채우려고 발악하던 때가 16살이었다.병이 드는줄도 모르고 악을 쓰고 살다보니 나도 나를 잃어버리고 내 안에 악만 남은거라, 내 안에 분노, 경멸, 자기비하를 어떻게 다스려야할지 아무것도 몰라서 이불만 뒤집어쓰고 며칠을 벌벌 떨었던 적도 있었다. 망치를 들고 납골당에 가서 아빠의 유골함을 부수고 태우고 나에게 사과하라고 발악하면 나는 나아질까.어떻게 해야할까 답이 나지 않는 고민을 수백번 넘게 하며 매번 나를 달랬다.

 

친할머니는 멀리계셨어도 베낭에 이런저런 짐을 싸고 우리집을 종종 찾았다.어쩌면 아빠의 잘못으로 엄마의 공백이 생길때 그런 아들을 둔 죄책감으로, 손주중에서도 제일 맘에 걸리는 손주들을 둔 죄로 그렇게 많이 찾아와 항상 한과나 생활용품을 탈탈 털어놓고 가셨다.엄마가 병원에 입원했을때 세숫대야에 내 코를 풀어주고 목 뒤를 엄지손가락으로 밀어주며 묵은때를 벗겨주셨다.내 나이가 열살이 채 되지않아도 집안 분위기는 눈치껏 알 수 있었기에 나는 울음은 꾹참고 안보이는데까지 잘 씻겠다고 끄덕거렸다.엄마가 돌아올지 나도 몰랐다.어쩌면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은 숨겼어야했다.비쩍마른 할머니가 더 안쓰러웠기에.

 

나는 교회도 성당도 그 어떤 사후세계도 믿고싶지 않다. 장례식장에서 할머니가 천주교 신자인것을 알게되었다. 데레사. 얼마나 열심히 다니신지는 잘 모르겠다. 예전에 다니고 안 다니셨던것같다. 데레사.....데세라의 죽음은 다를까? 내 생각은 그렇다. 인생은 그냥 그순간 살다가 끝나면 흙이될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그럼에도 내가 아빠 납골당을 내 발로 쉽사리 찾지못하는 이유는......그 사실을 마주하기 싫어서인것같다.허무한게 사실인데 정말 허무함을 몸으로 느끼고나면 인생의 갈피를 잃어버리는 느낌이 나서 쉬이 발걸음 하지 못했다.쨍쨍한 햇빛을 받으며 넓은 하늘아래 묻힌 할머니를 보니, 이미 죽어 흙에 불과한 우리 아빠를 그 옆으로 옮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걸 보니. 아직도 죽음은 어렵다. 사진을 상에 올려두고 과일을 깎고 말린생선대가리를 무슨 방향으로 향하게 두어야하고, 종주를 따라하며 몇바퀴 돌려야하며 그런 고리타분은 제사를 보고있어도.......내가 그런 제사를 지내는건 아니지만, 그런식으로 아빠 제사를 올린다는 큰아빠를 보면. 이제 자신의 어머니의 제사를 동생과 아버지의 제사와 같이 지내야 할 그런 큰아버지를 보면.......허무함에 담배를 끊을수도 없겠다싶다. 항상 제사를 지내시면 담배를 태우러 밖으로 나가신다.나도 한숨이 연기처럼 나는데 오죽하실까.죽음의 무게는 죽은자가 가지는것이 아니다. 싫든 좋든 유산처럼 물려받는것이다. 살아남은자가 어깨의 짐처렁 올려받는것.

 

나는 아빠가 그 위에선, 멋대로 어리광 부리고 아버지에게 반항도 해보며 ......어머니에겐 충분한 사랑을 받고 또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실 바란다. 다시한번 나는 사후세계는 믿지않지만. 그래서 너무 슬프지만 그래도 바랄 수는 있는거니까. 

 

하늘아래 우리집은 아빠때문에 참 힘들었지만, 하늘 위 아빠의 집은 행복하길. 엄마 아빠와함께.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심히 살고 있다  (0) 2020.05.19
킹덤 왜이렇게 재미가없지  (0) 2020.04.18
요즘 일상  (0) 2020.04.10
지칠수가 없는 이유  (0) 2020.03.15
원하는대로 이루어지리라  (0) 2020.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