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했던 새벽을 지나 도착한곳

잠들지 못했던 새벽을 지나 도착한곳


2015년 12월경의 풍경.

나를 한숨도 잠들지못하게 만든것은 깊은 우울과 불안이었다.동시에 무엇이라도 해야할것같은 조급함이었다.잠들어야 할 뇌가 초조함에 뛰어대는 가슴에 갉아먹혔다.그 추운 겨울 , 나는 아무도 없는 새벽거리로 나왔다.개강 전 대학자취촌은 황량하기 그지없었으나 어두컴컴한 침묵속에서도 눈내리는 풍경은 평온하기만 했다.어릴적에 살던 곳이 문득 그리워져 기차역으로 향했다.증평에 내렸어야했는데 잘못내리는바람에 나는 음성이란곳에 내려야했다.조용하고 깨끗한동네였다.한시간정도 주변을 구경했다.이때 반기문의고향이 음성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되었다.약간,있었다 그런게.촌에서 인물나는경우 그 인물로 최대한 시장을 돌려보려는 노력같은게.역에 도착해 관광안내표지판을 보는순간 느껴졌다.반기문 범벅이었다.그렇구나.

배가고파 밥을 먹고싶었지만 증평으로 가는 기차시간이 애매했다.그낭 더 걷다보니 한 학교가 나왔다.어슬렁거리며 구경했다.가까운하늘과 탁트인시야를 무대로 삼은 운동장은 학생들에게 축복과도 같았다.빳빳하게 얼어버린 막대걸레까지.덕분에 나는 내 학창시절을 회상할 수 있었다.

증평에 도착했다.증평 살 당시에 기차역이 있었는지 기억나지않는다.좀 걸어가니 내가 알던 그 동네가 그대로 보였다.그대로였는데 그대로가 아니었다.졸업한 초등학교 운동장이나 구경할까 싶었는데 학교관리인이 막아섰다.허가증이 있어야만 들어갈수있다고.요즘 문제가 많다보니 출입이 까다로워진것같았다.음성에서 둘러본 학교는 뭐지.개교기념일이었나.아쉽게도 발걸음을 돌려야만했다.교문옆에 불량식품가게는 문을 닫았다. 오랫동안 방치되어있는듯 보였다. 몸이불편하신 아저씨와 아픈 강아지가 살던 곳이었다. 하교길에 꼭 가게를 들러 1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먹었었다.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추억하는 나의 어린시절은 굳게닫혀있는 이 불량식품가게처럼 이미 지나가서 손 댈 수 없는것이었다.

초등학교때 다니던 학원을 찾았다.7-8년쯤 이곳을 찾았을땐 학생수는 적었지만 분명 운영되고있는곳이었는데 이곳도 닫혔다.문만 반쯤 열려있었다.오랜만에 찾은 나를 알아봐줄까 설레며 선생님 이름을 몇번 부르고 난뒤 문을 열었지만 눈앞엔 쌓여있는 마늘더미만 있었을뿐이다.학원이 아닌 창고같았다.윗층에 있던 중학교때 다니던 학원을 찾았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었다.순수하고 예뻤던 그때의 추억을 음미할 틈이 없었다.

근처 만두가게는 영업을 하고있었다.종종 생각이났었다.반가운 마음에 들어가서 포장주문을 하려했는데 만두 쪄 낼 시간이 아니라고했다.어쩔 수 없었다.보강천에 가볼까. 하다가 그것도 말았다.대전으로 가는 기차시간도 애매했다.

전에없던 새로 생긴 수육국밥집에서 혼자 국밥한그릇을 먹고 다시 동네를 둘러보았다.그대로였다.그대로였는데 그대로가 아니었다.동네만 변한것은 아니었다. 아파트 단지 놀이터 그네에 앉아서 담배 한개피를 피우며 사색에 잠긴 나도 그때의 내가 아니었다.

아직도 인생은 명확한 답을 주지못하고 나 또한 방향을 알 수 없어 헤매고있지만, 약간의 해답을 얻은 느낌이 들었다.돌아오는 기차안에서 나는 새것과 다름없는 담뱃갑을 버리고 내렸다.

​​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니년때문에 성공한다  (0) 2017.03.27
케세라세라는  (0) 2017.03.20
사진수업을 듣다가 꽂힌 작가  (0) 2017.03.11
체력 딸려서 이런짓거리 하고있다   (0) 2017.03.06
어제는 괜찮았던 일요일이었음  (0) 2017.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