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쓰냐면

왜 쓰냐면


글을 쓸때 마음이 좋아지기 때문이다.다른 이유없다.어지럽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고 차분해진다.처음엔 그림그리는것이 그랬다.뭐,사실 그림이나 글이나 나에겐 같다.


어렸을때는 꼬박꼬박 일기를 썼었다.남들처럼 예쁘게 꾸미고싶은 마음은 없었지만,그래도 성실하게 하루를 마감하며 글을썼다.그리고 자라나며 굳이 글을 쓸 필요성을 느끼지못해 한참동안 쓰지않았다.다시 자판을 두드리게된건 15살 끝자락이였다.인생끝까지 친구겠구나 싶었던 단짝이 학급이 갈라져 점점 멀어지면서 공허함을 느꼈다.나는 확실히 정이 많았다.아니면 질투가 많던가.친구는 새 학급에서 친구여럿을 금방 사귀었고 전보다 더 밝아졌다.나는 외로운 느낌을 받았다.걔네들은 나를 의도적으로 배제한적도 없거니와 그럴마음도 없었지만 그건 내가 혼자 느끼던 외로움이었다.나는 유치하고도 복잡한 이 감정을 정리하기위해 종이 다이어리에 글을 쓰기도했고 종종 네이버블로그에 비밀글로 내 마음을 토로하고는 했었다.


폭발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계기는 아버지의 죽음에 있었다.난 부던히도 노력했었다.학교 끝나고 집에오면 사다놓은 천 피스 퍼즐만 바닥에 늘어놓고 두달내내 맞추기도했었고,죽어라 책만 사다놓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읽기도했으며 하루종일 라디오만 들으며 그림을 끄적거렸다.남들 눈에 그런 내모습은 제자리를 금방찾는,아직은 상처회복이 빠른 어린아이 정도였었나보다.그리고 나는 아프기 시작했다.살이 쭉 빠지더니 임파선염에 걸려버렸다.설상가상 근육통의 문제인줄로만 알고 찾은 통증클리닉에서 장침을 잘못맞은 바람에 목이 아예 안돌아가는 지경에 이르렀다.이비인후과에서 스트레스와 면역력저하가 원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처방을 받았다.그 후 구슬처럼 엮여있던 목에 멍울들이 사라졌다.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다.1년에 한번씩 연례행사처럼 나는 꼭 임파선염을 앓는다.고열에 끓고 온몸이 무기력해지고 목을 만지면 커다란 멍울들이 몇덩어리 잡힌다.그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또 왔구나.


상처회복이 빠른 어린아이는 책을 날을 세워가며 읽었다.어머니는 혼냈다.내 면역력의 이유는 나의 생활습관에 있다고.그러면 아이는 생각했다.내 생활습관에 이유는 아버지의 죽음에 있다고.난 불안했다.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날마다 그랬다.그일은 나에게 상흔처럼 남아 쉽게 아물어지지 않았다.나는 괜찮은척했을뿐이다.주변사람들만 몰랐을뿐이다.


언젠가 그날의 종이 다이어리를 펴봤었다.정확히 말하면 발인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와 책상앞에 앉은 16살의 그날의 일기였다.빽빽히도 써댔던 바로 전 종잇장과 비교되게도 단 세글자만 적혀있었다.힘들다.


시간이 많이 흘러 근 10년의 세월이 되었다.나는16살 그때와 같을까.나는 지금도 같을까.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아버지도 하늘에서 네가 잘되길 바랄거야.이제 천천히 잊어보도록해봐.진심어린 걱정에 고마웠다.그러나 나는 사람을 못잊는것이 아니었다.항상 무언가 결핍되어있는 어린 영혼을 가진 아버지에 대한 상처는 많이 가셨지만,내가 장례식 때 머리에 하얀리본핀을 꽂고 내내 하던생각은 따로있었다.아버지가 나를 떠나갔다는것이 아닌 세상이 나를버렸다는 생각이었다.아버지가 더 망가지지 않도록 우리 식구들이 더 깨지지않도록 나는 엄마 아빠 동생의 연결고리가 되도록 노력했다.상상할 수 없을정도로 넓은 이해심으로 아버지의 모든것을 이해했고 어머니의 모든것을 이해했으며 동생이 가진 아빠에대한 미움도 바로잡았다.내가 가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마침내,꿈만같게도 우리집은 그제야 평범해졌다.남들 벌어먹고 사는것보다 훨씬 부족했지만 부부는 싸우지않았다.네명이 한상에서 밥을 먹었다.아빠 다녀오세요 라는 말을 셋이 현관앞에서 하게되었다.드디어 평범해졌다.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한참동안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해가 저물때까지 울던 내가 아무렇지 않게 집에 들어설 수 있게끔 그렇게 평범해졌다.그리고 한달도 되지않아 아빠는 쓰러졌고 이틀도 되지않아 돌아가셨다.우리는 아빠가 남겨놓은 돈이없어 상속포기를 했고 빚도 청산했다.그리고 수급자가 되었다.그리고 엄마는 더 아프기 시작했고 나도 더 아프기 시작했다.세상에 대한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내 죄가 뭐길래 이런 벌을받을까.나는 정말 누구보다 노력했는데.


가슴앓이가 심해지며 다이어리를 미친듯이 썼다.하루에 세장,네장이 넘어가도록 썼다.그게 욕이든 푸념이든 그냥 썼다.그리고 누군가 내 일기를 훔쳐볼것같은 두려움에 일기를 잘 열리지않는 서랍 깊숙히 처박아두었다.네이버 블로그를 다시 개설했다.비밀글로 일기를 썼다.게시판이름이 아직도 기억난다<나의 사랑, 나의 영혼>.오직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만 썼었다.잘지내냐는 편지,그때 왜 그렇게 우리 가족을 힘들게 했냐는 원망.모두 거기에 적었었고,포스팅이 400개가 넘었다.그리고 블로그를 완전히 폭파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나름의 역사이다.네이버 블로그를 폭파하고 한참 뒤 티스토리 블로그를 개설했다.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쓴다.다른 이유 없다.계속 상처를 드러내고 쓰고 읽고 반복하려고한다.앞으로 내가 좋아질 구실 무언가라도 있으면 노력하려 한다.남들 도움도 뻔뻔하게 받고싶다.괜찮을지도 모른다.그동안 내 마음은 너무 외로웠으니 다시 나아질때까지만,딱 그만큼의 도움받을 자격이 어쩌면 나에게 있을지도 모른다.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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