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처가 무대위로 올려지길 바랄때

내 상처가 무대위로 올려지길 바랄때



언제부터 마음이 이렇게 심연으로 가라앉았는지 내 경험도 아닌데 영화도 노래도 모두 내 경험같다.가끔은 펑펑 울만한 구실이 생겨서 그 핑계로 막 울어버리고싶기도하다.여기 가슴안에 막 몽글거리고 울컥거리는 어떤 응어리가 있는데 나는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 지 정말 모르겠다.그래서 나한테 아주 슬픈일이 생겼으면 좋겠다.내가 감당할 수 있는 어떤일.


최근 타블로의 Airbag을 다시 듣는데 느낌이 남다르다.가사 한줄 한줄이 마음을 어찌나 후벼파던지,노래듣고 우는 날이 잦아졌다.이건 뭐 어떻게 하지를 못하겠다.나도 속이 답답하다.혼자있기 싫은걸까 아니면 눈에 띄게 혼자있고 싶은걸까.결국은 눈에 띄게 혼자있고 싶다는 이야기인데 나는 차라리 내 슬픔이 그런식으로 승화됐으면 좋겠다.군중속의 외로움같은 느낌으로.그래서 가끔은 내 삶의 상처가 남들에게 관람거리가 되길 바란다.그것들이 무대위로 올려졌을때 나는 연기인척 내 상처에 이입해 막 울어대고 그걸보는 사람들은 어머 연기잘한다하고 감상하고 박수치고 발걸음을 떼고 출입구로 나가버리는 그런거.그렇게 내 상처가 일회성 단막극으로 끝나면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없을것이다.그냥 그렇게 남들에게 눈요깃거리이며 동시에 동정은 받을만한정도로,그렇게 소모됐으면 좋겠다.내 상처가.


나는 정말 완벽하고싶은 인간인데 그러질 못한다.내 짧은 방황의 이유도 과거에있고 내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도 과거에있다.친구가 그랬다.'넌 너무 과거에 연연하는것같아.'그런데 내 과거는 내 미래와 같다.그때나 지금이나 바뀔일이없다.내 옆에 누가와도 여기 가슴한켠이 뻥 뚫려서 너무 외롭고 너무 춥다.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것이고.그러니 내가 과거에 연연한다는말보다 그냥 '너답다'.그렇게 말해줬으면 했다.내가 맨날 흑백사진 꺼내보며 펑펑우는 재벌집 공주님이 아니라면 나한테 저런 말은 안해줬으면 좋겠다.정말로 상처받는다.


스무살 겨울에 학원 회식이 있었다.자리에 헛웃음들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모두가 조금씩 취해가고 있었다.주는 술만 조금 받아먹고 있었던 나는 워낙 사람많은 자리에서 말이 없어서 그냥 가만히 고기만 구웠던것같다.스승님이 불렀다.옆자리에 가 앉았더니 약간 섭섭해하시는 눈치였다.나는 워낙 어른들한텐 더 살갑게 못한다.해봤다 한잔 따라드리며 예를 지키는정도만 한다.300년 산 느티나무처럼 무뚝뚝함과 멋없음을 쭉쭉 뿌리내린 나를 스승님은 FM이라고 하셨다.적어도 내겐 나쁘지않은 내 정체성이었다.투박하지만 지금은 꿈도 꾸지 못할 수식어다.그때의 성실함은 정말 빛나는 무언가였던것같다.하여튼 스승님의 섭섭함을 조금 듣고있는데 옆자리 친구가 불쑥 끼어들었다.'넌 너무 냉정해.' 와 나는 그때 그말의 충격을 잊지못한다.정말 흔한 회식자리에서 1초도 안되는 그 한마디가 내가 믿고있던 나를 와장창 깨 부수었다.넌 너무 냉정해.내가 냉정하다니.나는 정말 정많고 따뜻하고 그래,멋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얼마나 푸근한 사람인데.그런생각을하며 친구와 투닥댔다.그리고 그 옆에서 듣고계시던 선생님이 참전했다.'맞아,넌 좀 냉정한 면이있어.오히려 쟤가 따뜻하지' 그렇게 2차충격.쟤가 따뜻하다고?남들에게 피해주면 안된다는 반강제주입,반강제천성으로 태어난 내가 뭘 어떻게 했길래 냉정하다고 하는거지?오히려 손해보며 사는 삶의 주인인 내가 냉정하다고?우유부단하고 잔정 많아서 마음쓸일 많은 내가 냉정하다고? 내가 냉정하다니.내가 냉정하다는 말이 대체 어떤 말이지?

그럭저럭 친했던 친구와 선생님의 '너는 냉정하다' 발언에 꾸깃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갔다.지나가는 가벼운 말인데 어찌나 서럽던지 그날 또 울었던것같다.내가 어떻게 살든 남들이 나를 이렇게 본다면 나의 진심은 통하지 않는거구나.무척이나 서러웠다.조금 얄미웠던 친구는 그렇다해도 스승님까지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그런데 시간 지나 천천히 생각해보니 맞는말이었다.아니,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더라.워낙 내가 벽을쳐야지.내가 나랑 친구여도 어려웠을것같다.분명 친해진것같은데 이상하게 벽이 있는 그런 친구.그냥 존나 양파.스승님에게도 내가 그런 제자였었나 싶더라.내 자신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면 그냥 그렇게 거리를 정해 예를 지키는것이 최우선이라 생각했다.오히려 옆에서 주접떠는 친구들이 더 귀여운줄도 모르고.아주 고목이 따로 없었다.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보니 내가 얼마나 어려운사람인지 깨닫게 됐다.마음은 아닌데,마음은 항상 따뜻한데.그건 항상 내 좁은 범위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극소수.그리고 스무살 애송이에서부터 지금까지 난 그 범위를 넓히지 못하고 산다.


사실은 냉정하단 소리에 일주일을 밤설칠정도로 가슴아파하고 속상하고 울던 나인데,그렇게 여리고 상처 잘받는데 남들이 보기엔 얼마나 철옹성같고 세상관심없는 사람처럼 보일까.내가 얼마나 어렵고 불편할까.그런생각이 들면 속으로 우울해진다.남들이 관람석에 앉아 무대에 선 나를 바라보았으면 좋겠다.관객과 배우의 거리처럼 가깝다면 가까워도 멀다면 한없이 먼 그런 거리로 관계가 유지될 수 있게.그냥 딱 그 정도 생각해주면 좋겠다.사람들이 그 발치에서 내가 울면 쟤는 우는아이구나,내가 웃으면 쟤는 웃는아이구나,내가 화내면 쟤는 화내는아이구나.그렇게 생각하고 그 무대를 지나쳐 자기 갈길 갔으면 좋겠다.


그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오해하든 내가 상처받지 않을 최소한의 거리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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