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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오디세아 가사인데

이게 오디세아 가사인데





C'e` nella forza di un'idea
Una luce nobile trasparente
Unica innoccente libera
Un respiro di follia
Ma se non la fermi e` fragile
E indifferente poi va via come te
Via dentro una scia
Che se ne va sfiorandomi
Ritorna mia
Gridando ancora
Che non c'e` cura
Per questo amore
Per quest'odissea
Che ci traschina con se
Onda di marea
Che nasce e muore con te
Naufraghi di un sentimento
Immenso
E Fuoco tra la cenere
Un lampo una vertigine
Che non riuschiamo a spegnere
E quest'odissea
Che ci avvicina e allontana da qui
Onda di marea
Che annega tutto cosi
Naufraghi di un sentimento
Immenso


뭐 전부 이태리어니까 이렇게만 보면 감흥이 없겠지만 그래도 영어를 좀 한다면 찬찬히 읽어보면된다.유추할 수 있는 단어들이 꽤 있다.뜻을 모르는 상태에서 유추하는 느낌으로 쭈욱 가사를 훑어보면 뭔지는 몰라도 뭘 노래하고있구나.그런마음이 들 것이다.굉장히 시적이다.나는 팬텀싱어를 보면서 이탈리아 가곡들을 접했기때문에 오디세아라는곡 또한 그때 처음 만나게 되었다.개인적으로 원곡영상보다도 포디콰가 부른 4중창의 오디세아가 훨씬 마음에 든다.그렇다고 원곡이 가지는 의미를 상대적으로 폄하하려는 의도는아니다.원곡이 베이직이고 클래식이니 가감할것없이 맘에들지만,가감해도 훌륭할 수 있다는것을 팬텀싱어를 보면서 알았기때문이다.손태진의 풍부한 저음베이스가 도입부부터 압도적으로 찍고들어가는 힘이 느껴졌었다.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가사 이야기를 해보자면,이런 가사를 어떻게 썼을까.어떻게 이런게 가능할까.너무 놀랍다.나는 가사가 예쁘다고 느낀적은 있어도 웅장하고 황홀하다라는 느낌은 많이 받아보지 않았는데 이 곡은 가사가 너무 영화같다.미학적으로 어쩌고 저쩌고 할 순 없지만 그만큼 멋있는 곡이다. JTBC 번역팀이 번역을 정말 잘한것도 있지만 저 문장들 찬찬히 읽어보면 저 단어와 문장들이 가진 힘이있다.좋은가사에 좋은번역을 만나서 잘 전달된것같다.참고로 밑에가 우리말로 번역된 가사이다.




생각의 힘 안에는
투명하고 귀한 빛과
순수와 자유 그리고
어리석음이 있죠
생각은 부서지기 쉬우니 잡아둬야해요
생각은 무심해서
당신처럼 사라져버리죠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릴 거예요
나를 스치며 사라져버리죠
돌아와줘요 여전히 부르짖고 있어요
이 사랑에는 해결 방법도 없어 울부짖고 있죠
험난한 사랑의 여정이
우리를 끌어당겨요
해일처럼
당신이 밀려들어왔다가 사라져요
난 그 사랑의 희생자죠
넘치는 감정의 희생자죠
잿더미 속의 불꽃처럼 남은 감정
끌 수도 없는 불빛에 어지럽기만 하네요
이 험난한 사랑의 여정은
가까워지고도 멀어지죠
밀물과 썰물처럼
그냥 그렇게 사라지네요
험난한 사랑의 여정 속에 휘말린 우리는
넘치는 감성의 희생자에요




우리말로 어느정도 의미를 파악한 다음,그냥 이태리어를 보고 노래를 듣는게 더 이 곡에 취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것같다.온다디마레아,해일처럼.그러면 해일처럼이라는 단어보다 온다디마레아에서 몰아치는 해일의 이미지를 상상하는것이다.자연에게 감정이 있다면 그렇게 몰아치지않을까.이런식으로 감상하다보면 오디세아라는곡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아 정말 좋다.이 곡과 가사와 포르테디콰트로의 4중창이 얹어지면 이 노래는 세상을 노래하는 노래다!라는 생각이 안들 수 없다.이런 시적표현이 얼마나 숭고함을 느끼게해주는지.이 곡을 만든사람들에게 너무 고맙다.생각날때마다 노래를 들어도 언어의 경이로움에 감탄한다.이정도로 아름다울 수 있구나싶어서.찾아보면 이태리가곡들이 전부 비슷한느낌이다.한편의 시같다.그래서 궁금증이 생긴것도있다.이탈리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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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돈벌어야지

어 돈벌어야지


돈은 벌어도 벌어도 없네.물론 내가 그렇게 잘 벌고 다니진 않았으니까 그러려니해도 없어도 너무 없다.학교다니며 생활비로 푼돈 쓰는것같은데 이게 두달이 넘어가니까 꽤 타격감있다.이게....돈이....없다.


아끼는 슬리퍼의 바닥과 몸체가 떨어질랑말랑 해본적이 있었다.그래서 질질 끌고다녔는데 딱 그꼴이다.돈이 그정도 남아있다.질질 끌고다닐정도만큼만 딱 고만큼.통장에 얼마있는지 살펴보는게 무서울정도다.마지막으로 알바했을때 최저시급이 5,500원이었던걸로 기억한다.그 다음엔 학교다니고 또 휴학하고 직장생활아닌 직장생활 좀 해보고 그랬으니까 최저시급으로 날마다 따져봤던게 근 몇년전이다.사실 그때가 좀 그리운게 지금 1년동안 돈 벌어서 맥북사고 지랄하고 등록금내고 했어도 뭔가 이거다!하는 쾌감이 없다.알바할땐 한달에 90만원 벌었어도 그걸로 15만원짜리 지갑사고 내내 황홀해서 벅차고 뿌듯한 느낌이있었다.없는 사람이 벌어도 돈도 맛들리는게 있나보다.중독되는것처럼.


강신주 강의 듣다보면 자본주의를 지나치게 비판하는것 아닌가?싶을정도로 자본주의에대해서 맹렬한 이야기를 많이하는데 사실 속시원한부분이있다.그렇다고 내가 무정부주의자를 꿈꾼다거나 그런것도 아니겠지만,자본주의 사회가 가져다주는 인간사회의 병폐가 있지않는가.그 병든 사람의 유형이 딱 나같다는 생각을 한거다.딱 나다.딱 엄마다.딱 아빠다.딱 우리가족이다.마음 한켠으로는 돈보다 소중한 가치가 있을거라고 믿으면서도 살다보면 모든 실패와 성공이 돈으로 귀결되는것같다.어쩔 수 없나.


지금 서울에 올라와있는데 울 할머니는 내가 아직도 직장에 다니는줄 아신다.그래서 다니는척 했다.젠장.소심해지는 효심이다.돈 벌어야지 돈.몇달뒤에 나도 이 공기나쁜곳에 진짜 올라와살겠지.개그지처럼.그게 흥분되기도하고 기쁘기도하면서도 무섭기도하고.그래도 가난에대한 적응력은 내가 바퀴벌레수준이라고 자부한다.집이 없어서 쓰러져가는 폐가를 아버지가 고쳐서 살기도했었고 돈이없어서 아버지가 어디서 얻어온 컨테이너에서 일년가까이 생활하고 학교다니고도 했었다.못할게 뭐있나.어깨만 조금 더 무거워졌을뿐.당당하게 살고싶다.


생각해보니 컨테이너에서는 진짜 어떻게 살았을까.그때 겨울이었는데,수도시설을 끌어와서 컨테이너 밖에서 세수하고 물받아서 오분거리에 있는 쓰러져가는 엄마아빠사는집에 가서 부엌에서 샤워하고 그랬었다.외풍이 너무 심해서 침대맡에 가스난로같은걸 두고 동생이랑 둘이서 자고 그랬다.그거보다 조금 사정이 나아졌을땐 남의 집에 세들어 살았는데, 그 형태가 조금 희한했다.미우새보면 이상민이 채권자 집을 1/4임대해서 쓰는것처럼 우리집도 어떤아저씨네 넓은집 가장자리에 세들어살았다.요즘 원룸보다도 작아서 부엌싱크대밑에 네가족이 일렬로 쭉 누워서 자곤했다.그 옆이 바로 화장실이었고 그앞이 바로 현관문이었다.빌라도 뭣도 아니었고 1층이었기때문에 문만 열면 바로 흙바닥이었다.누워있으면 그 문이 바로 정면으로 보였다.울퉁불퉁 약간 불투명한 유리를 끼고있던 그 철체현관문은 그래서 무서웠다.누가 지나다니면 검은형체가 쉭쉭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쓰고보니 진짜 개그지같네.근데 당시엔 그게 그렇게 그지같이 사는건지 몰랐다.외할머니가 우리집에 내려오면 매일 우는소리하시고 엄마만 보면 가슴아파하셨다.내 눈엔 할머니가 왜그리 슬픈지도 몰랐었다.그때 나는 조그마한 건설현장,그러니까 아빠의 노가다판이 내가 뛰어놀던곳이었고 그곳이 나에겐 유토피아였다.그런데 나이 좀 먹고나니까 알것같다.울엄마는 진짜로 똑똑하고 배웠고 깨어있는 사람인데 아빠를 만나서 고생을 지지리도했으니.외할머니 마음이 안찢어지는게 이상했던거다.지금도 나보고 자꾸 좋은사람 만나서 결혼해야한다,니가 결혼할 돈 벌어서 시집 잘 가야한다,불쌍한 너희엄마 고생하는거 이제 그만보고싶다 하신다.내맘도 그래요 할머니.할머니가 살아오셨던 이런저런 날들 이야기를 듣고있노라면 나도 진짜 잘 살아야지.그 생각이 든다.할머니 저 진짜잘 살아볼라구요.그게 꼭 돈이됐든 뭐가됐든.성공해도 실패해도 그냥 후회는 없이 그정도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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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개의 계획들

몇개의 계획들


난 제발 이것들이 지켜졌으면 좋겠다고 나에게 빌고싶은 심정이다.다음카카오 서비스중에 '브런치'라는 서비스가 있다는것을 얼마얼마얼마전에 알게됐는데,이걸 잘 활용해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다.한국에만 있는 등단시스템에서 자유로운 출판의 기회로 선로를 바꿀수있지않을까.내심 기대중이다.나말고 쟤 브런치가.


이것저것 공모전도 많이는 있던데.웹툰공모전 함 해볼라고 타블렛을 찾아보니까 어디 쳐박혀있는지 보이질않는다.고물수준이지만 그것마저 없으면 난 완전 백친데.정 찾다찾다 못찾으면 중고나라나 뒤져봐야겠다.아니 그냥 손그림으로 그릴까? 근데 젠장할 수채화물감도 상태가 다 미쳐돌아갔다.돈 좀 안들이고 뭐 하고싶다.펜화가 딱이다 펜화.지금 생각중인건 자매이야기를 조금 싸이코틱하게 그리고싶은데에있다.그래픽노블처럼.나와 내동생에게서 캐릭터를 발굴해내겠지만 그래도 너무 많이 나와 동생을 반영하기는 싫다.나는 내가 만화를 그리면 그게 조금 가벼웠으면 좋겠다.메시지는 무거워도.그리고 가볍게 뭔가를 하려고해야 의외로 개쩌는 작품들이 나오는경우가 있는것같다.나중에 리뷰쓰긴할건데 <내가고백을하면>이라는 영화가있다.내가 이영화보고 그생각을했다.힘을 빼야 담백한것이 나오는거구나.나중에 찾아보니 영화속에 감독본인을 디스(?)한 부분도있던데 그부분이 존나재밌다.인간다움이 느껴진다.3번째 영화를 만들어서 본인디스를 맞디스하는데 이부분에서 쾌감이 안느껴지면 사람이 아니다.아니무니다.


삼천포로 빠졌는데 여튼 힘빼고 천천히 무언가를 하다보면 얻을 수 있는게 있을거라고 믿는다.이건 약간 신앙이다.예수보다는 믿을만하다.힘빼고 얻는다.힘빼얻교.믿을지어다.힘멘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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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는 목수였다

내 아버지는 목수였다


내 아버지는 목수였다.내 아버지가 하는일은 노가다였다.늦은 나이에 딸내미를 낳아 품에 안았을때 분명 좋은아빠가 되리라는 다짐을 했을것이다.자신과 너무나 닮은 조그마한 아이를 보면서 황홀감에 젖어있었을것이다.어머니는 아버지가 나를 대중탕에 자주 데리고 다녔다고 말했다.전혀 기억나지않는다.세네살때까지도 계속 데리고다니며 목욕시켰다고했다.아버지의 고향이자 내 고향인 그 동네는 워낙 작았다.그래서 소문이 다 났다고 했다.팔불출 팔불출 그렇게 팔불출일수가 없다고.친할머니 말씀에 아버지는 차에 항상 나를 태워다니며 만나는 어른들마다 자기 딸내미라고 자랑하고 다녔단다.내 인생에서 받을 수 있는 사랑은 아마 그때 다 받은것아닌가 싶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많은것을 생각했다.정말 많은것.내 아버지는 목수였고 일이 없는날도 많았다.몇년을 일하지 않는 모습도 보았다.나는 두려운 사람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그대로 지켜보는 목격자가 되었다.아버지는 마음이 여렸다.어머니와 아버지를 비교하자면 아버지는 훨씬 무른 토대에서 자라온 여린사람이었다.강인하지 못했다.그것이 어떻게보면 우리집의 비극이었다.아버지로서 불완전한 아버지는 내겐 그래도 좋은 아버지였다.동시에 불쌍한 사람이었다.못배운사람이었다.아버지의 아버지도 불완전한 사람이었다.나는 아버지로부터 아버지의 아버지이야기를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었다.문득 궁금해져 어머니에게 연애시절 아니면 살면서 아버지한테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있냐고 물었는데,그런 소리는 생전 하지도않았다고 말했다.결혼 전 당뇨로 눈이 멀어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한번 이야기하고, 돌아가시고 난 다음 돌아가셨다고 그 이야기만 했다고한다.나이 서른후반의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를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않고 산다는건 어떤 의미일까.큰집에서 주워들은 여러 이야기들과 친할머니의 말만들어도 친할아버지는 좋은사람이아니고 좋은아버지가 아니었다.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버지처럼 되지않으려고 노렸했을것같다.아버지와 같이한 15년동안에 그런노력들이 나는 느껴졌다.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불행했지만,그래도 나는 아버지가 노력했음을 알고있었다.그래서 미워할수만은 없었다.


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있었다.바닥을 손가락을 또각또각 내리치기도했었고 검은 치맛단을 손으로 쓱쓱 쓸어보기도했었다.정말 기이한 광경이었다.내 아버지는 돌아가셨다는데,눈앞에 문을 열고 나타날것같은 느낌이 나를 둥둥 띄웠다.지금이라도 큰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나타날것같고 저앞에 꽃을 놓고 절을 할것같은데.이상한 느낌이었다.받아들여지지않는 현실을 받아들여야하는데 식장안에선 그게 잘 되질않았다.염을 하고 관속으로 들어가는 아버지를 볼 때 나는 너무 슬펐지만 동시에 너무 이상했다.뭔가 이상했다.내가 머릿속으로 그려보지 않은 풍경이라 그랬을수도있고 드라마에서 보던것들이 내게 일어난것이 이상했을수도있다.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않았던 경험은 내 인생에선 그때뿐이다.


화장터로 가는 버스안에서도 어머니는 많이 울었다.나는 그당시 어머니가 우는것이 충격이었다.어머니는 울지 않을줄 알았다.아버지가 못난남편이라 죽어없어지면 후련해하실줄알았다.그 눈물의 의미를 내가 알기에는 너무 어렸다.동생도 울고 엄마도 우는데 나라고 울지 않을 수 없었다.나도 울었다.내가 울면 아빠가 달래주었었는데.아빠가 없었다.예고도없이 아버지가 나에게 아버지란 자리를 물려준것같았다.아무것도 물려줄게 없어서 그걸 물려주고 떠난것이다.화장터에서 무슨 접수같은걸 하는데 직원이 어머니가 아니라 나를 불렀다.나는 아버지의 관이 불길속에서 타 없어지는것에 동의했다.하늘이 먹구름빛으로 덮혀있었다.우중충한 천장 아래에서 나는 펑펑울었다.


내가 제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아버지는 무더운 여름에 떠났다.쓰러지는것부터 실려가는것 중환자실에 입원해 이틀내내 면회시간만 기다리고 희망의 기도를했던것 그리고 결국엔 떠나보내는것까지도 나는 내 눈으로 보았다.가족들을 다 불러모으던 의사선생님만큼 가슴을 철렁이게 하는 사람이 있을까.발인이 끝난 후에도 나는 몇번씩 내 손을 만지작 거렸다.마지막 순간에 쥐고있던 그 손이 그렇게 빠르게 식는다는게 충격이었고 동시에 불신이었다.내 손을 바라보고있자니 사람의 온기라는게 느껴져서 서글펐고,그 온기가 눈 깜빡할 새 식을 수 있다는 사실도 서글펐다.죽음으로 향해가는변화를 몸으로 느꼈기때문에 믿고싶지않았다.그래도 사람이면 더 따뜻하게 있다가야 하지않나.죽더라도 더 따뜻해야하지않나.그런생각을 했었다.뭐 그때는 뭐든 이해할 수 없었다.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것이다.끔찍했으니까.사실은 지금도.아니,지금은 그래도 그때보단 좀 낫지않을까.


가끔 길을 걸어가다보면 빌라를 짓기위해 공사를하는 풍경이 종종 보인다.나는 그럴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리고 내 어릴적 모습을 떠올린다.공사판은 내 놀이터였다.2층,3층,4층 철골로 만들어놓은 발판을 부지런히 뛰어밟고 놀았고 앞에는 시멘트에 섞을 모래같은것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서 그 위로 누가먼저 올라가나 내기를 하고 놀았었다.정말로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뛰어놀았다.나는 내 아버지가 목수라는 사실이 좋았다.내게 궁전같은 놀이터를 만들어주었고 재밌는 아저씨들과 같이 일하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지금도 그 사실엔 변함이 없다.노가다꾼,일용직,하루일해 하루벌어먹고 사는 사람들 그런 말들은 아무래도좋았다.내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누군가는 집 없이 살았을것이다.허름한 슈퍼도 누군가가 지었을것이고,화려한 빌딩도 누군가가 지엇을텐데.사실 그 과정을 추측하는것은 쉽지않다.건설인부들의 노력같은것은 지금같은 사회에서 일개미가 과자 부스러기 옮기는정도의 중요성에 지나지않을것이다.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일을 하면서 내 아버지는 무슨생각을 하고 살았을까.내 기억으로는 중간에 몇번 큰 건설사업같은것도 하셨다.말했지만 아버지는 배움이 없고 기술만있는사람이라 등쳐먹기 좋은 유형이었다.그렇게 몇번씩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도 알고있다.어머니말로는 그때 빨간딱지가 붙긴 붙었었다는데 기억이 날듯말듯하다.나름 그쪽판에선 아버지가 기술도있고 인맥도있는편이라 어딜가도 현장에서 실장급은 되었던것같은데 그것과 상반되게 인간관계에선 아버지를 이용만하려던 건달백수들이 정말 많았던걸로 기억한다.


빽바지를입고 멋이란 멋은 잔뜩내고 다니던 어떤 아저씨가있었는데 그 아저씨는 우리집앞에 맨날 검은 외제차를 세워놓고 아버지를 기다리곤했다.그 아저씨 술값은 아버지가 다 냈단다.사실 그 아저씨뿐만 아니라 쓰자면 한트럭은 되는것같다.아버지가 현장에서 만나 연을 맺게 된 아저씨들이었다.그러니까 남편으로 못난남편인거다.울 아빠가.먹고뒤질돈도없는데 건달같은새끼들이 인생에 위로가되는존재인줄 알고 돈쓰고 시간썼는데 봐라.아버지 장례식장엔 코빼기도 안보였다.분명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걔네들 귀에 들어갔다.그런데도 단 한명도 오지않았다.그래서 이웃집정승이 죽으면 안온다는데 맞는말이었나보다.내 아버지는 그런새끼들 위한답시고 상나면 제주도까지 내려가곤했던 사람이었다.내 아버지는 여러모로 갈때까지 남은게 하나도없는 그런 불쌍한 사람이었다.나는 그런것들이 견딜 수 없어서 걔네가 여기에 오지못했어도 나만큼 슬퍼하고있을거야라고 상상했다.


그래도 나는 아무래도 괜찮았다.살아계셨다면 내가 조금 더 이해하고 사랑해볼텐데.똑부러지지 못하고 위태롭고 멍청하고 무식하고 성질있던 아버지는 그래서 내가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그때도 나는 아버지와 모든면에서 닮아있었다.그리고 지금도 많이 닮았다.그래서 내가 달라져야한다.사랑하는 아버지와 닮은 내 모습과 안녕해야 진짜로 보내줄 수 있을것같다.사랑은해도 작별은 하고 살아는가야하지않을까.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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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 무대

무대 뒤 무대



손 때묻은 안경알을 만지작 거리던 아이가 있길래 물었습니다.너 왜 여기있니.그랬더니 아이는 내가 여기 있기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소매끝엔 알록달록 물감이 묻어있었습니다.그래서 물었습니다.너 왜 안올라가니.그랬더니 아이는 내가 안올라가서 그렇다고 답했습니다.나는 아이에게 질문하는것을 그만두었습니다.


겁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관객이 많아도 적어도 무대에 오르는건 배우에게 숙명과도 같은 일입니다.후들거리는 발로 계단을 밟아오르고 무대 중심에 서야합니다.아이는 그것을 모르는듯 했습니다.나는 아이를 한번 더 곁눈질하였습니다.이번엔 아이가 물어왔습니다.연극배우세요? 나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 대답을 대신했습니다.아이가 다시 물었습니다.무슨 무대인지 아세요? 나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너는 알고있니? 아이도 고개를 젓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시간이 되었습니다.이제는 무대로 올라야합니다.나는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내가 올라갈 채비를하자 아이는 급하게 서둘렀습니다.나는 올라가야했습니다.계단을 서너칸 밟았을때 아이가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보챘습니다.같이가요.나는 고민했습니다.고민하는 시간동안 아이가 준비를 다했습니다.내 밑으로 계단을 밟아오르고 있었습니다.조금 긴 계단을 밟아가며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나는 떨렸습니다.아무리 경력이 많이 쌓인 배우라할지라도 무대는 쉬운곳이 아니기때문입니다.입안에 침이 마르는것을 느끼며 다리도 후들거리기 시작했습니다.화장실이 급해졌습니다.뜨거운 조명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반대로 나는 도망치고 싶었습니다.뒤에는 아이가 있었습니다.아이가 두려워하지 않을것이 두려워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콧등위로 땀방울이 송글송글 솟아났습니다.


무대 중심에 섰습니다.위에 달린 조명들이 너무 강해서 아무것도 보이지않았습니다.빛 한가운데에 들어와있는 기분이었습니다.무슨말이라도 해야하는데 턱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용기가 필요했습니다.그래서 텅빈 관객석이 필요했습니다.빛이 약해야 빈좌석들이 보일텐데,빛은 그것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아이가 내 옆에 있는지 뒤에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내겐 중요하지 않았습니다.확인만이 필요했습니다.이곳에 아무도 날 보러오지 않았다는 확신말입니다.등이 축축해지는것을 느꼈습니다.땀이 엉덩이골로 흐르는것도 내버려두었습니다.눈을 바쁘게 굴렸습니다.숨을 가쁘게 들이마시고 내뱉고 반복했습니다.나는 어떻게해야할지 몰랐습니다.나는 어떻게해야하는지 정말 알 수 없었습니다.


옆에 아이가 있었습니다.아이가 내 옷자락을 잡고 끌어당겨 알 수 있었습니다.이게 맞아요.아이가 그랬습니다.빛에 반사되어 아이의 안경은 거울처럼 조명을 튕겨내고 있었습니다.나는 눈이부셔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아이가 그랬습니다.이해해요.나는 무엇을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아니,무엇을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모습으로 멍하니 있었습니다.괜찮다고 이야기하는것같았습니다.아니,괜찮다고 용기를 주는 이야기를 하는것이 맞았습니다.그러나 난 관객석이 불안했습니다.지금 이런 우스꽝스럽고 부자연스러운 행동들도 계속 바라보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니 숨이 쉬어지지 않는 기분이었습니다.봐야했습니다.확인해야만 괜찮아질 수 있을것같았습니다.이번엔 강하게 옷자락을 잡아당겼습니다.신경질이 나서 아이를 쳐다봤습니다.아이도 신경질이 난것 같았습니다.이해할 수 없었습니다.아이는 배우가 아닙니다.나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계속 노려보았지만 아이도 지지않겠다는듯 나를 노려보았습니다.반짝이는 안경알을 쳐다보자니 이길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그것은 눈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알고있었습니다.그 아이는 나입니다.같이 무대에 올랐을뿐입니다.이 일은 나에게 매우 힘든일입니다.나는 배우가 아니고 이 무대가 어떤 무대인지 모릅니다.그래도 아이는 말했습니다.괜찮다고.



2015/09/07 - [Essay] - 내 상처가 무대위로 올려지길 바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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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갈거야

이탈리아 갈거야

물론 이 다짐은 일년뒤에 가난에의해서 구겨질수있는 다짐이지만 이탈리아 갈거다.나도 이제 여기를 조금씩 벗어나볼래.어차피 이번년도의 절반이 갈때쯤이면 난 서울에 있을거니까 일년동안 내가 무얼할진 모르겠지만 도박꾼의 정신으로 뭐든 그냥 쏟아붇는다고 생각할래

재고 따지고 신경쓰고하다보니 정작 아무것도 못해 할수있는것도없고.누구는 하늘을 나는데 나만 땅파면 살 수 없어. 이건 도전의식이다 도전의식. 이참에 로또 ​1등도 당첨되면 참 좋지않을까.불행도 한꺼번에 왔었는데 행복도 한꺼번에 오면 좋지않을까.세상은 존나 야비하니까 그럴일은 없을거야.

갈거야 갈래 가게해주라 갈래 무얼 느끼고 오든 나는 준비가 된거같아 나는 좀더 넓게가야해 이제는 나가자 깨고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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