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직전의 한국영화 시장

붕괴 직전의 한국영화 시장

 

19살, 극장에서 어떤 영화를 보고 그날로 진로를 틀어버렸다. 아직도 그 영화를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황홀경에 빠진다. 이렇게도 지독하게 뭔가를 좋아해보고 사랑해 본 적 있었을까. 홀렸다는 표현이 정확해보이는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살아 숨쉬는 듯 하다. 첫사랑, 열병 같았던 영화. 내겐 영화란 그런 것이었다.

 

내가 아직까지도 외골수로 영화감독만을 지향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비쥬얼에 대한 열망은 적어졌고, 글에 대한 욕심이 많아졌다. 시나리오를 공부하고 쓰면서 익히는 모든 것들이 재밌고 또 할만하다.  지금은 드라마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OTT시장은 광활하고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는 이미 허물어진지 오래다. 부천국제영화제에서는 오징어게임에게 상패를 주었다. 뭔가, 계속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기고 무너지는 과도기속에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참 빠르다. 돌아가는 속도가.

 

안타까운 건, 들려오는 한국영화의 현 위치가 정말 심각하다는 것. 솔직히 이야기하면 안타깝다 못해 처참한 수준이다. 투자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라 빠르면 3년 이내에 시장이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나오고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역시 팬데믹. 대재난을 겪으며 시장 하나가 무너졌으니 가히 대단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시장은 이미 OTT에게 승리의 깃발을 꽂아주었고 영화는 흐름을 읽지 못했다. 

 

사람들은 극장에서 가서 보아야 할 영화만 본다. 이 영화가 OTT로 볼 영화인지 극장에 가서 체험할 영화인지 관객들이 더 현명하게 구분할 줄 안다. 관객들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1. 티켓값을 내려라.

2. 다양한 한국영화를 만들어라.

 

두 가지의 요구중, 관객들의 마음을 헤아린 영화업계 관계자들은 아무도 없는 듯 보인다. 심지어 나와 말씨름을 했던  유명한 영화PD는 오히려 티켓값을 지금보다 더 올려받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유럽을 예로 들면서, 영화가 이렇게 대우받지 못하는 것은 한국뿐이라며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지성인들이 영화 한편에 돈을 쓰기 아까워해서 되냐는, 내가 느끼기에 굉장히 우둔한 말들을 늘어 놓았다. 섣부른 판단일지 몰라도 한국영화 업계 사람들은 대부분 우월의식에 뇌까지 푹 젖어있는 느낌이다. 선민의식까지 느껴지는.  나도 한국영화 참 사랑하고 좋아하는데 아직까지도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관계자들이 많으니 아무래도 시장이 도태 될 운명일 수 밖에 없나보다. 

 

영화판에서 작가에 대한 대우도 심각하다. 작가들이 전부 OTT, 드라마로 몰리는 이유가 있다. 대사 몇군데 고치고 각본에 낼름 자기 이름 올려버리는 양아치 감독들은 넘치고.  대우라고 하기도 뭐한, 글쓰는 노예로 부리고 감독의 시다바리로 부리는 그 못된 투명계급 사회가 아무래도 작가들이 이탈하는 현상을 낳지 않았나 싶다.

 

더 심각한 건 자정하려는 내부의 목소리조차 난 듣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영화 시나리오작가들이 힘을 합쳐봐도 감독파워에 밀리는건 부지기수. 그나마 작가들이 노력해서 기준을 설립한 작가 표준계약서 또한 이미 7년전, 8년전에 업데이트 된 구닥다리인데 뭘 바랄까. 심각하다. 한국영화 사랑하는데, 이렇게 가다간 망하는 게 맞지 않나 싶을정도로 심각하다.

 

2000년대로 돌아가고 싶다. 한국영화의 전성기라고 불리던 그 황금시대를 겪었던 나로썬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크지 않은 돈으로 쉽게 접할 수 있던 종합예술의 극치라고 생각했던 영화가 이제는 경쟁력을 잃었다. 뮤지컬, 연극처럼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배우들의 호흡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찍은 디지털 영상 돌리기만 하면 그만이다. 넓고 큰 TV와 빵빵한 스피커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는 집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도 마음이 돌아서고 있는 지경인데, 사람들은 오죽할까. 업계 관계자들 정신 차리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