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래 살더라

다들 그래 살더라

알고지낸지 15년이 넘은 단짝 한명은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의 결혼이 가시화 되고 있고, 또 다른 한놈은 만나던 남자와 이별한 후 나름대로 마음 고생을 하면서 지냈나보다. 31살,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 나는 아직 이룬 것이 없는 무일푼 상태. 누구의 아빠는 제네시스를 탄대. 누구네 엄마는 벤츠를 타고. 누구네 부모님은 서울 한복판에 잘 살라며 아파트를 얻어주기도 해. 나는 반지하 방에 가만히 앉아서 타자를 두드리다가 공평함이란 무엇일지 수 없이 생각하다 결국, 포기한다. 답이 안나오는 문제에 매달리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했기 때문이다.

 

여기엔 온 몸을 뜨뜻한 물에 푹 담글 수 있는 욕조도 없어서 그냥 샤워기로 물을 틀어놓고 줄줄줄, 물 줄기를 맞으며 상념을 한다. 너무 힘들어서 이젠 기억도 희미한 내 과거들, 앞으로 어떻게 걸어나가야 할지 모르는 내 미래. 내 미래. 물이 떨어지는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털어서 방에 들어와 화장대 앞에 앉아서 대충 로션같은 걸 찍어바른다. 시발 관리하라고들 하는데 귀찮아 죽겠다. 다들 어쩜 그렇게 바쁘게들 살아가는지. 운동하고 밥차려먹고 일하고 집와서 넷플릭스보고 요가하고 유투브 찾아보다가 잠드는 그런 갓생같은 거 나는 못살겠고.

 

요즘 좀 어른인 척 하다가 또 다쳤다. 아직 마음이 자라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없이 질량이 가벼운 심장을 부여잡고 저 밑바닥까지 꾹꾹 눌러가며 사는게 잘하는 짓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찾아온 너무 좋은 기회들. 이거 다 날릴 뻔 했다. 아니, 날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정신력에 한계가 찾아오고 체력도 바닥다니 몇주간 침대에 누워 잠만 자며 시간을 보냈다. 그토록 원했는데, 원하던 일이었는데 왜 이렇게 힘든거지? 

 

그리고 친구들을 둘러보다. 6개월 공부하고 임용 붙은 학교선생님 친구, 열심히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공예하는 친구, 옷 장사하는 친구, 애 키우는 친구, 타투하는 친구, 영상그래픽 공부하는 친구. 다들 밥벌이 하느라 바쁘고 정신이 없더라. 그냥 다 그래 살더라. '그래도 너는 하고 싶은 거 하잖아'. 말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아직 계약이 된 건 아니지만, 여튼 돈 받으면서 뭔가를 하고 있기는 하지.  어쩌면 나는 복받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제 어린시절을 점철했던 불운과 불행같은 건,  나와 상관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끊어내야지 뭐. 끈적하게 달라붙어있는 그놈의 불운. 샤워로 씻어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력으로 씻어내릴 수 있는걸까?

 

동생은 취직을 했다. 공무원시험에서 3번 낙방하고 취업을 준비했는데 생각보다 좋은회사로 바로 들어갔다. 원하는 직무로. 이제 우리집에서 말썽쟁이는 나 하나뿐이다. 어쩌겠는가. 곧 죽어도 맨땅에 헤딩하는 성격은 고칠 수 없는걸. 다들 그냥 그래 살더라. 그러니까 나도 그냥 그래 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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