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애인에 대한 회고

첫 애인에 대한 회고

솔직히 말하면 좋아하긴 했는데, 팔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의 능력이 좋기도 했고 배경도 좋았고 가진 것이 많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진창에 처박힌 내 인생을 돈으로 구원해 줄 수 있을 사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집을 친정이라는 이름하에 끌어올려 줄 수 있을 사람. 지독하게 잘했겠지 아마 남편이 되었다면.

여튼 당시 내 나이가 20대 후반이었지만, 그사람은 30대 초-중반이었고 결혼에 대한 전제를 깔고 만나고 있었던 터라 마냥 가벼운 만남은 아니었다. 그 사람은 내가 차에 타기 전, 일명 엉뜨를 해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로이스 초콜릿을 꼭 하나씩 구비해 놓았던 사람이었다. 크리스마스는 그에게 매우 중요한 날이어서, 나는 질 좋은 머플러와 풍성한 꽃다발을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연애하면서 다 받는 그런거라지만 나는 그런 호의와 그런 사랑을 받는다는게 어색하고 벅차서 상당히 실수를 많이 했었다. 가릴 말 조차 잘 구분하지 못했고, 이 감정이 단순 내 기분장애에 의한 흥분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얼마나 교만했는지 알 것 같지 않나. 나는 그랬었다.

내가 팔려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이유는 일단 종교에 있었다. 나는 교회를 포함한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배신감이 엄청 난 사람인데 반해 그 사람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으며, 무려 대형교회의 청년부 회장에 그의 집은 집사, 권사...누나는 교회 회계팀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내가 감당하기 버거운 자리였다. 그 사람의 옆자리에 들어차려면, 내가 가진 배신감 즉 내가 겪은 모든 경험을 내려놓고 굴복해야 했었다. 나는 그런것들을 견딜 수 없었다. 내가 겪어온 신앙이란 가치에 대한 회의감과 배신감이 있는데, 이걸 이 사람을 바라보고 전부 고치고 바꿔서 받아들여야한다니. 나는 그에게 물었다. 미래를 함께 하려면 내가 교회에 꼭 다녀야 하는거냐고. 그는 그렇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그 사람 또한 좀 나이브했던 것 같은게, 그냥 자기가 간절히 기도하고 원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교회로 발걸음 할 사람이면 누군가 기도해주지 않아도 제 발로 가지 않았을까. 나는 나이에 비해 참 순수한 그 눈을 들여다 보며 할 말을 잃었던 순간이 기억난다. 어쩌면, 이 사람은 원하면 다 이루어지는 그런 삶을 산걸까. 어쩌면, 나는 그에게 미약한 질투를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감정에 뿔이 돋고 마음이 울퉁불퉁해지는 것을 느꼈기에. 나는 모진말을 뱉었다. 그리고 새벽까지 이어진 깊은 대화를 뒤로하고 차에 그를 혼자 내버려두고 내려서, 내 갈길을 갔다. 칼바람이 모질었던 날이었고 나는 그 날의 공기의 냄새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다. 그냥 헤어짐을 위한 날씨었다.

나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흉터들이 좋았다. 얼굴 한쪽에 생채기와 약간 파인 상처가 있었는데, 학생 때 크게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 후유증으로 아직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콤플렉스라 생각하는 듯 했지만 나는 달랐다. 그의 상처를 쓰다듬으며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진심이었다. 나는 그의 외형에서 그 흉터가 가장 맘에 들었다.

그럼에도 헤어진 이유는 너무나도 자명했다. 내가 겪은 상처를 외면 할 수 없었다. 내가 느꼈던 아픔을 거짓으로 치부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내 삶에 대한 확신이자 믿음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신앙을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니, 내가 헤어짐을 고하는 것이 맞는 일이었다. 내 일생에 유일하게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내 가족을, 내 가난을 보듬어 줄 수 있을 사람을 그렇게 보냈다. 나는 신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어려운 만남이었다. 내 첫연애를 너무 어려운 사람과 했다. 나는 그저, 데이트 비용으로 투닥거리고 싶었고 연락 빈도로 투덜거리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신념과 신앙을 가지고 몇 십번을 시험당해야했다. 뭐, 그런 말도 있지 않나. 너무 어려운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내가 했던 건 아마 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구원에 대한 일말의 기대. 내가 좋은 값에 팔려가길 원했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천박함. 뭐 그런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나는 많은 것들을 겪었고, 혼란스러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가 불투명했고 살아가는 이유도 몰랐다. 그러니 그것이 구원이든 아니면 장사가 되었든 나는 둘 다 실패 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결혼 했겠지. 40대를 바라보고 있을테니, 그리고 좋은 사람이니 좋은 짝을 만나서 그토록 원하던 신실한 가정을 이뤘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건데, 아마 지금 혼자 있었다면 맥주 한 캔 깠을 것 같네. 진심으로 건네는 진심. 그가 잘 살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