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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5분 전에 원수접수 한 내가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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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느라 토하는 줄 알았다 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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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애인에 대한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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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좋아하긴 했는데, 팔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의 능력이 좋기도 했고 배경도 좋았고 가진 것이 많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진창에 처박힌 내 인생을 돈으로 구원해 줄 수 있을 사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집을 친정이라는 이름하에 끌어올려 줄 수 있을 사람. 지독하게 잘했겠지 아마 남편이 되었다면.

여튼 당시 내 나이가 20대 후반이었지만, 그사람은 30대 초-중반이었고 결혼에 대한 전제를 깔고 만나고 있었던 터라 마냥 가벼운 만남은 아니었다. 그 사람은 내가 차에 타기 전, 일명 엉뜨를 해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로이스 초콜릿을 꼭 하나씩 구비해 놓았던 사람이었다. 크리스마스는 그에게 매우 중요한 날이어서, 나는 질 좋은 머플러와 풍성한 꽃다발을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연애하면서 다 받는 그런거라지만 나는 그런 호의와 그런 사랑을 받는다는게 어색하고 벅차서 상당히 실수를 많이 했었다. 가릴 말 조차 잘 구분하지 못했고, 이 감정이 단순 내 기분장애에 의한 흥분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얼마나 교만했는지 알 것 같지 않나. 나는 그랬었다.

내가 팔려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이유는 일단 종교에 있었다. 나는 교회를 포함한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배신감이 엄청 난 사람인데 반해 그 사람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으며, 무려 대형교회의 청년부 회장에 그의 집은 집사, 권사...누나는 교회 회계팀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내가 감당하기 버거운 자리였다. 그 사람의 옆자리에 들어차려면, 내가 가진 배신감 즉 내가 겪은 모든 경험을 내려놓고 굴복해야 했었다. 나는 그런것들을 견딜 수 없었다. 내가 겪어온 신앙이란 가치에 대한 회의감과 배신감이 있는데, 이걸 이 사람을 바라보고 전부 고치고 바꿔서 받아들여야한다니. 나는 그에게 물었다. 미래를 함께 하려면 내가 교회에 꼭 다녀야 하는거냐고. 그는 그렇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그 사람 또한 좀 나이브했던 것 같은게, 그냥 자기가 간절히 기도하고 원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교회로 발걸음 할 사람이면 누군가 기도해주지 않아도 제 발로 가지 않았을까. 나는 나이에 비해 참 순수한 그 눈을 들여다 보며 할 말을 잃었던 순간이 기억난다. 어쩌면, 이 사람은 원하면 다 이루어지는 그런 삶을 산걸까. 어쩌면, 나는 그에게 미약한 질투를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감정에 뿔이 돋고 마음이 울퉁불퉁해지는 것을 느꼈기에. 나는 모진말을 뱉었다. 그리고 새벽까지 이어진 깊은 대화를 뒤로하고 차에 그를 혼자 내버려두고 내려서, 내 갈길을 갔다. 칼바람이 모질었던 날이었고 나는 그 날의 공기의 냄새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다. 그냥 헤어짐을 위한 날씨었다.

나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흉터들이 좋았다. 얼굴 한쪽에 생채기와 약간 파인 상처가 있었는데, 학생 때 크게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 후유증으로 아직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콤플렉스라 생각하는 듯 했지만 나는 달랐다. 그의 상처를 쓰다듬으며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진심이었다. 나는 그의 외형에서 그 흉터가 가장 맘에 들었다.

그럼에도 헤어진 이유는 너무나도 자명했다. 내가 겪은 상처를 외면 할 수 없었다. 내가 느꼈던 아픔을 거짓으로 치부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내 삶에 대한 확신이자 믿음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신앙을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니, 내가 헤어짐을 고하는 것이 맞는 일이었다. 내 일생에 유일하게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내 가족을, 내 가난을 보듬어 줄 수 있을 사람을 그렇게 보냈다. 나는 신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어려운 만남이었다. 내 첫연애를 너무 어려운 사람과 했다. 나는 그저, 데이트 비용으로 투닥거리고 싶었고 연락 빈도로 투덜거리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신념과 신앙을 가지고 몇 십번을 시험당해야했다. 뭐, 그런 말도 있지 않나. 너무 어려운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내가 했던 건 아마 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구원에 대한 일말의 기대. 내가 좋은 값에 팔려가길 원했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천박함. 뭐 그런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나는 많은 것들을 겪었고, 혼란스러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가 불투명했고 살아가는 이유도 몰랐다. 그러니 그것이 구원이든 아니면 장사가 되었든 나는 둘 다 실패 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결혼 했겠지. 40대를 바라보고 있을테니, 그리고 좋은 사람이니 좋은 짝을 만나서 그토록 원하던 신실한 가정을 이뤘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건데, 아마 지금 혼자 있었다면 맥주 한 캔 깠을 것 같네. 진심으로 건네는 진심. 그가 잘 살았으면.



이방인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방인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촌오빠네 놀러갔다가 얻은 이센스 이방인 앨범. 나는 에넥도트 밖에 없었는데 마침 오빠가 이 앨범을 선물로 줬다. 이사가게 되면 벽걸이형 플레이어 사서 주구장창 틀어놓아야지. 덤으로 모자랑 옷, 사고 싶었던 마크제이콥스 레인 향수까지 얻어왔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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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래 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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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지낸지 15년이 넘은 단짝 한명은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의 결혼이 가시화 되고 있고, 또 다른 한놈은 만나던 남자와 이별한 후 나름대로 마음 고생을 하면서 지냈나보다. 31살,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 나는 아직 이룬 것이 없는 무일푼 상태. 누구의 아빠는 제네시스를 탄대. 누구네 엄마는 벤츠를 타고. 누구네 부모님은 서울 한복판에 잘 살라며 아파트를 얻어주기도 해. 나는 반지하 방에 가만히 앉아서 타자를 두드리다가 공평함이란 무엇일지 수 없이 생각하다 결국, 포기한다. 답이 안나오는 문제에 매달리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했기 때문이다.

 

여기엔 온 몸을 뜨뜻한 물에 푹 담글 수 있는 욕조도 없어서 그냥 샤워기로 물을 틀어놓고 줄줄줄, 물 줄기를 맞으며 상념을 한다. 너무 힘들어서 이젠 기억도 희미한 내 과거들, 앞으로 어떻게 걸어나가야 할지 모르는 내 미래. 내 미래. 물이 떨어지는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털어서 방에 들어와 화장대 앞에 앉아서 대충 로션같은 걸 찍어바른다. 시발 관리하라고들 하는데 귀찮아 죽겠다. 다들 어쩜 그렇게 바쁘게들 살아가는지. 운동하고 밥차려먹고 일하고 집와서 넷플릭스보고 요가하고 유투브 찾아보다가 잠드는 그런 갓생같은 거 나는 못살겠고.

 

요즘 좀 어른인 척 하다가 또 다쳤다. 아직 마음이 자라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없이 질량이 가벼운 심장을 부여잡고 저 밑바닥까지 꾹꾹 눌러가며 사는게 잘하는 짓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찾아온 너무 좋은 기회들. 이거 다 날릴 뻔 했다. 아니, 날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정신력에 한계가 찾아오고 체력도 바닥다니 몇주간 침대에 누워 잠만 자며 시간을 보냈다. 그토록 원했는데, 원하던 일이었는데 왜 이렇게 힘든거지? 

 

그리고 친구들을 둘러보다. 6개월 공부하고 임용 붙은 학교선생님 친구, 열심히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공예하는 친구, 옷 장사하는 친구, 애 키우는 친구, 타투하는 친구, 영상그래픽 공부하는 친구. 다들 밥벌이 하느라 바쁘고 정신이 없더라. 그냥 다 그래 살더라. '그래도 너는 하고 싶은 거 하잖아'. 말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아직 계약이 된 건 아니지만, 여튼 돈 받으면서 뭔가를 하고 있기는 하지.  어쩌면 나는 복받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제 어린시절을 점철했던 불운과 불행같은 건,  나와 상관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끊어내야지 뭐. 끈적하게 달라붙어있는 그놈의 불운. 샤워로 씻어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력으로 씻어내릴 수 있는걸까?

 

동생은 취직을 했다. 공무원시험에서 3번 낙방하고 취업을 준비했는데 생각보다 좋은회사로 바로 들어갔다. 원하는 직무로. 이제 우리집에서 말썽쟁이는 나 하나뿐이다. 어쩌겠는가. 곧 죽어도 맨땅에 헤딩하는 성격은 고칠 수 없는걸. 다들 그냥 그래 살더라. 그러니까 나도 그냥 그래 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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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염병을 떨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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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헤어질 거 왜 그렇게 사람 힘들게했나 ㅎㅎ 서로서로 수거하지 왜 방생하나 몰라 호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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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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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사업에 선정되어서 받고있는 멘토링 2개, 지인 분의 단편영화 시나리오 각색작업 1개. 지인분 장편시나리오 피드백도 맡았다.

그 외에 일주일에 한번씩 서울에서 진행하는 스터디도 하고 있고, 작법서도 열심히 보고있다. 이제 좀 살아가는 느낌이 든다. 바빠도 하고싶은 일을 하니까 숨을 쉬어도 물 속이 아닌 물 밖에서 숨을 쉬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후련할 줄 알았으면 진작 시작할걸. 솔직히 말하면 지금 시간이 부족 할 정도로 바쁜데도 불구하고 행복하고 또 감사하다. 물론 내가 노력한바가 크지만, 나를 뒷따르던 불행같은 것들이나 말하자면 이 따위로 살아왔던 모든 시간들에 감사함을 느끼고있다. 그것들이 나를 만들었다. 불온전하고 아슬아슬한 내가 완성되어 글을 써내려가니 누군가가 공감을 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이번년도에 한예종 시나리오 전문사 과정을 써보려고 한다. 안되면 내년에 또 넣어보면 되는거고.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련다. 어차피 기회는 많고 나는 살아갈 날이 많으니 그 기회들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련다. 나 꽤 멋진듯.

기사에 내 이름과 얼굴이 실린다는 것은 참 생경하고 신기한 일이다. 이번에 많은것들을 느꼈다. 준비가 덜 되어도 일단 뛰어들자는 것. 살면서 좀, 불나방 같은 부분도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아직 내공도 부족하고 기획의도 또한 내 입으로 말하기 어려워하는 생초짜지만, 언젠가는 당당하고 멋있는 모습으로,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피칭 할 날도 오지 않을까.

내가 지금 성장의 터널 속을 걸어가고 있다면, 이런 나를 본 걔네들 반응은 어떨까. 배아파할까, 어이없어할까. 내가 말했지. 나는 너네들이랑 맛과 결이 다르다고. 자만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그렇다고. 애초에 나를 제일 먼저 알아본 건 나였으니까. 평범하게 잘들 살아라. 나는 특별하게 잘 살테니까. 내 소식 꼭 너네들 귀에 들어가길. 내 악몽속에 꼭 나오는 너네들 말이야.

콧대를 약간 세우고 지금 기분을 좀 만끽하는 중. 나쁘지 않다. 글 쓰는 과정 또한 괴롭지만 행복하다. 괴롭지만 행복한 일, 찾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나중에 내가 , 만약에 내가 감독이 된다면 어떤 영화를 찍을까? 나는 감독이 될까? 시나리오 작가가 될까? 모르겠다. 연출 욕심은 줄었지만 아직도 괜찮은 비주얼리스트들을 보면 아! 이런 것들을 화면에 담아야하는데. 이런 생각이 든다. 이미지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써내려가면 되는건가?

일단 올해 잘 마무리 하자. 남은 피칭 2개와 크레딧에 올라갈 각색작업과 예종입학까지 해보자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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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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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까 좀 당황스럽다. 내가 시나리오 하겠다고 마음먹고 수도권으로 올라온 거 치고 너무 빨리 성과가 나오고 있다. 거만해질 생각은 당연 없다만, 이런 행운들이 의심스럽다. 여튼 당분간은 돈 걱정 안해도 될 것 같다. 상금 들어오면 엄마 용돈 좀 드려야지.


진짜 친구래도 예의없는 것들하고는

진짜 친구래도 예의없는 것들하고는

연끊을때 된 것같아. 툭툭 말 내뱉는 부류들 이제 싫다 진짜. 가까울수록 조심해야하는 걸 왜 모르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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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는 밤, 작은 성공에 대하여

잠이 오지 않는 밤, 작은 성공에 대하여

 

제출한 시나리오를 다시 검토했을때 나는 좌절했다. 엉망도 이런 엉망이 없었다. 밀도 낮은 씬과 허무맹랑한 대사들이 둥둥 떠다녔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다시 물었을때 나는 대답을 쉽사리 할 수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아직 내 철학조차 없는 나부랭이니까. 절박했지만, 1차 통과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나를 덮쳤다. 탈고도 제대로 못한 시나리오에 기대를 걸기엔 양심이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게다가 절박한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지원한 모두가 절박했고 간절했다. 그냥 도전 자체에 의미를 두고 마음을 비웠다.

 

운이 좋았던건지 진짜로 내 아이템을 좋게 봐준건지 나는 1차 서류전형에 합격했다.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 면접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또 내 심장을 짓눌렀다. 면접이란 무엇인가. 나를 한예종에서 떨어지게 만든 그 문제적시험 아닌가. 내 작품에 대한 철학조차 확고하지 않은 상태로 면접을 보면 승산이 있기는 한건가. 이제는 진짜 마음을 비울 때가 되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맹연습을 했다. 감사하게도 정보를 주는 이들이 많아서 그 정보를 토대로 셀프 면접을 진행해봤고, 친구의 도움을 얻어 모의면접 또한 진행해봤다. 면접 에티튜드 같은 것도 좀 얻어가면서. 솔직히 겁나 무서웠는데 솔직하게 임하자고 각오했다.

 

면접은 역시 무서웠다.한예종 면접보다는 덜 압박스러웠지만 짧은 시간이내에 그들이 기대하는 답을 꺼내놓기엔 내 머리가 따라주지 않았다. 분명 듣는 면접관들도 이 친구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의아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말하면서도 내가 그걸 느꼈으니까. 예상질문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시나리오가 구리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시나리오에 대한 지적이 많이 들어왔다. 주제의식이나 작품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질문이 들어왔다. 현문우답이었다. 망했다. 완전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강퇴당하듯 화상면접이 빨리 끝나버렸고 남은 나는 허무함과 아쉬움에 가만히 노트북 화면만 바라보았다. 면접이 끝난건가. 동시에 드는 생각, 나도 끝난건가.

 

망한 건 망한거고 할 건 해야했다. 바로 노트북을 챙겨 카페로 이동했다. 다음 공모전을 위해 트리트먼트를 작성해야했다. 근질근질. 나의 망한 면접후기에 대해 지인에게 입을 털고싶었지만, 지인도 스트레스가 큰지 내 면접에 큰 관심이 없어보이길래 그냥 별 말 하지 않고 계속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저녁이 됐을 때 나는 문자 한통을 받았다. 최종합격문자였다.

 

규모가 크고 작고, 그런 것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나는 늘 이런 기회가 필요했고 고팠다. 도전하고 얻을 수 있는 성취감. 이 성취감이 필요했다. 내게 연료가 되어 날 움직여 줄 성취감이 필요했다. 절실했었던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앞서 말한 죄책감 같은 것이었다. 이 따위 시나리오로 합격해도 되는건가 싶은, 그런 일종의 양심의 가책같은거. 온전히 내가 이룬 성공인가 생각 해 보았을때 전혀 아닌 점. 외면하고 싶은 부분이지만 분명히 내가 기억해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나는 이 시나리오를 쓰는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영원히 기억할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시나리오를 완성시킬 수 있을정도의 능력을 만드는것에 총력을 다 할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지 않아도 이미 성정이 그렇게 시키고 있다. 부끄러운게 졸라 싫다.

 

합격의 기쁨에 흥분해서 잠이 오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죄책감이 어깨위로 슬며시 올라와 있다. 그래서 오늘은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아까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하늘에 뜬 달이 예쁜 손톱달이었는데, 지금 창문을 열어서 하늘을 바라봐도 손톱달이려나. 반지하라서 창문을 열어도 시멘트 바른 빌라의 벽만 들어 찰 뿐이다. 나는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보자 욕심을 내보고 싶다. 오늘 얻은 이 자그마한 성취감을 벗 삼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