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무대

무대 뒤 무대



손 때묻은 안경알을 만지작 거리던 아이가 있길래 물었습니다.너 왜 여기있니.그랬더니 아이는 내가 여기 있기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소매끝엔 알록달록 물감이 묻어있었습니다.그래서 물었습니다.너 왜 안올라가니.그랬더니 아이는 내가 안올라가서 그렇다고 답했습니다.나는 아이에게 질문하는것을 그만두었습니다.


겁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관객이 많아도 적어도 무대에 오르는건 배우에게 숙명과도 같은 일입니다.후들거리는 발로 계단을 밟아오르고 무대 중심에 서야합니다.아이는 그것을 모르는듯 했습니다.나는 아이를 한번 더 곁눈질하였습니다.이번엔 아이가 물어왔습니다.연극배우세요? 나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 대답을 대신했습니다.아이가 다시 물었습니다.무슨 무대인지 아세요? 나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너는 알고있니? 아이도 고개를 젓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시간이 되었습니다.이제는 무대로 올라야합니다.나는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내가 올라갈 채비를하자 아이는 급하게 서둘렀습니다.나는 올라가야했습니다.계단을 서너칸 밟았을때 아이가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보챘습니다.같이가요.나는 고민했습니다.고민하는 시간동안 아이가 준비를 다했습니다.내 밑으로 계단을 밟아오르고 있었습니다.조금 긴 계단을 밟아가며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나는 떨렸습니다.아무리 경력이 많이 쌓인 배우라할지라도 무대는 쉬운곳이 아니기때문입니다.입안에 침이 마르는것을 느끼며 다리도 후들거리기 시작했습니다.화장실이 급해졌습니다.뜨거운 조명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반대로 나는 도망치고 싶었습니다.뒤에는 아이가 있었습니다.아이가 두려워하지 않을것이 두려워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콧등위로 땀방울이 송글송글 솟아났습니다.


무대 중심에 섰습니다.위에 달린 조명들이 너무 강해서 아무것도 보이지않았습니다.빛 한가운데에 들어와있는 기분이었습니다.무슨말이라도 해야하는데 턱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용기가 필요했습니다.그래서 텅빈 관객석이 필요했습니다.빛이 약해야 빈좌석들이 보일텐데,빛은 그것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아이가 내 옆에 있는지 뒤에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내겐 중요하지 않았습니다.확인만이 필요했습니다.이곳에 아무도 날 보러오지 않았다는 확신말입니다.등이 축축해지는것을 느꼈습니다.땀이 엉덩이골로 흐르는것도 내버려두었습니다.눈을 바쁘게 굴렸습니다.숨을 가쁘게 들이마시고 내뱉고 반복했습니다.나는 어떻게해야할지 몰랐습니다.나는 어떻게해야하는지 정말 알 수 없었습니다.


옆에 아이가 있었습니다.아이가 내 옷자락을 잡고 끌어당겨 알 수 있었습니다.이게 맞아요.아이가 그랬습니다.빛에 반사되어 아이의 안경은 거울처럼 조명을 튕겨내고 있었습니다.나는 눈이부셔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아이가 그랬습니다.이해해요.나는 무엇을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아니,무엇을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모습으로 멍하니 있었습니다.괜찮다고 이야기하는것같았습니다.아니,괜찮다고 용기를 주는 이야기를 하는것이 맞았습니다.그러나 난 관객석이 불안했습니다.지금 이런 우스꽝스럽고 부자연스러운 행동들도 계속 바라보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니 숨이 쉬어지지 않는 기분이었습니다.봐야했습니다.확인해야만 괜찮아질 수 있을것같았습니다.이번엔 강하게 옷자락을 잡아당겼습니다.신경질이 나서 아이를 쳐다봤습니다.아이도 신경질이 난것 같았습니다.이해할 수 없었습니다.아이는 배우가 아닙니다.나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계속 노려보았지만 아이도 지지않겠다는듯 나를 노려보았습니다.반짝이는 안경알을 쳐다보자니 이길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그것은 눈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알고있었습니다.그 아이는 나입니다.같이 무대에 올랐을뿐입니다.이 일은 나에게 매우 힘든일입니다.나는 배우가 아니고 이 무대가 어떤 무대인지 모릅니다.그래도 아이는 말했습니다.괜찮다고.



2015/09/07 - [Essay] - 내 상처가 무대위로 올려지길 바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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