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다자이오사무 - 인간실격 : 인간의 반의어

[책이야기] 다자이오사무 - 인간실격 : 인간의 반의어


인간 실격
국내도서
저자 : 다자이 오사무 / 김춘미역
출판 : 민음사 2004.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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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을 읽으며"


제목만으로 작품의 분위기를 어림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인간실격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가슴을 강하게 치고 지나가는지 제목의 힘을 다시한번 느꼈다.그리고 인간실격이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소설임을 알게되면서 더욱 무거운심경이 되었다.고독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엔 주인공 요조의 두려움에는 안쓰러움이 있었다.요조는 망가져가면서도 순수한 인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순수의 유사어는 심약함이라고도 할 수 있을것같다.마음이 여린사람으로 비추어지는 그의 모습은 나로하여금 아버지를 떠올리게했다.술에 취해 지금을 잊고싶어하는 모습마저도 나에겐 아버지의 모습과 비슷했다.아버지.아버지란 내게 무엇일까.요조는 내 아버지이며 나의 반쪽모습이다.숨기고 살 뿐이다.


한쪽에선 인간실격은 분명 우울한데 그 우울함에 개연성이 없어서 공감하기 어렵다는 리뷰도 있다.원래 우울함과 절망감과 패배감은 개인의 창자안에,뱃속에 꽉꽉 눌려있는 무거운 감정이기때문에 개연성을 찾기 어려운것이 당연한것이라고 느낀다.더불어 부러운마음도 든다.이토록 처절한 두려움에 공감하지 못한다니 부럽다.실격에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서 그럴 수 있는걸까.



"에곤쉴레의 꽈리와 열매가 있는 자화상"


좋은 표지선정이다.나는 민음사의 책으로 인간실격을 읽었기때문에 에곤쉴레의 그림이 이 책의 표지가 된것이 굉장히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자전적소설에 자화상표지라.사실 에곤쉴레도 평탄한 삶을 산 작가는 아니다.젊은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그 짧은 인생에도 굴곡이 심했다.그럼에도 그림속 자신은 턱을 살짝 쳐들고 오만한듯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응시하고있다.그림을 가만히보면 나를 쳐다보는듯한 느낌도든다.개인적으로 나는 저런 포즈와 표정은 예를들어, 화장실거울을 통해 자신을 쳐다볼때,세상의 시선에서 해방되어 조금 더 자신에게 도취되었을때 나올수 있는것이라고 생각한다.자아도취라고 하지만 나르시즘과는 조금 다르다.자신이 가진 불안과 패배감을 외면하지않고 있는그대로 본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것이다.내가 사진작가 낸골딘(Nan goldin)에게 꽂힌 이유도 그것이다.트라우마의 미학이 있다.세상 어디에도 쓰일 수 없을것같이 처참하고 쓰레기같고 불안한 나여도 그것이 나임을 인정하기까지의 영혼을 깎는 과정인것이다.에곤쉴레의 자화상은 요조의 또다른 자화상이고 다자이오사무의 자화상이기도하다.




"죄의 반의어를 찾는일"


소설 내에서 요조는 어떠한가치를 정의내리기위해 분주해보인다.특히 죄의 반의어를 찾기위해 고뇌하는 모습은 죄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그의 노력이었다.죄에 본질에 다가가려는 이유는 역시 죄책감이라는것에 시달렸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죄책감.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을 상기시킨것도 어쩌면 자신이 받아야할 벌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호리키가 요조를 비난조로 슬쩍 건드릴때도 요조는 가만히 있을수밖에 없었다.마음속 어딘가에선 아니라고 소리쳤지만, 결국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던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그렇게 요조는 죄의 반의어를 알 수 있을듯 말듯하다가 결국 그만두고만다.죄책감은 죄이자 벌이다.그런차원의 영역이 아닐까.사실 잘 모르겠다.삶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풀리지않을 수수께끼같은 문제일것이다.요조도 죄의 반의어를 찾아 죄에 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했지만 생은 답보다 질문만을 주었을뿐이다.요조는 아내에게 동경하는점이 있었다.순진무구하게 사람을 신뢰하는것.요조가 아내와 결혼한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지않나싶다.인간사회에 섞여들지 못하는 패배자의 속성을 가진 자신을 의심의 여지없이 믿어주고 바라봐주는것.동경하면서도 가까이 가기 무서웠던것.그 믿음은 아내에게 일어난 어떠한일로인해 파괴당해버린다.요조는 괴로움속에서 신에게 묻는다.아내의 신뢰심은 죄인가요? 선이라고 믿었던 순수함이었는데,그것이 상처를 주기도한다.변하지않는 온전한 가치가 필요했을터이다.희극명사와 비극명사를 나누어 놀던 요조는 내가 파악하기에 심약하고 불안했기때문에 어떤가치를 어떻게든 정의내리고싶어한 사람같다.혼란스러웠기에 질서가 필요했던 사람이었는데 이젠 더 혼란스러워진것이다.고생끝에 고생이 왔으니,요조는 술에만 의지하게 된다.


술.술은 무엇일까.술은 현실을 잊게해주고 나를 무방비상태로 만들어주는것이다.무방비상태의 나에게 중독되지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알콜중독자들은 대게 그 사정이 딱하거나 견딜 수 없는 자괴감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많다.내아버지도 그랬다.요조는 어린시절부터 익살을 자기무기로삼아 가족에게,사회에게 섞여들여가고자했던 부자연스러움과 노곤함을 술로 털어내듯, 그렇게 무방비상태에 중독되었다.종국에는 뜻하지않게 정신병동에 입원당하게되면서 그때 "인간실격"이라는 단어를 쓰었다.


인간실격.망망대해에 떨어진 조각배에 타고있는것처럼 불안했던 한 사람이 고뇌와 죄책감을 거치며 끝내 자신에게 정의내린단어.인간실격.실격이라는 단어는 장례식의 무거운 분위기와 맞먹는다.실격의 반의어는 확실히 합격이다.하지만 인간실격의 반의어가 인간합격일지는 모르겠다.요조는 죄의 반의어를 찾아 고민했듯이 인간과 인간의반의어를 찾아 고민했을것이다.'더 이상 인간이 아닌것'으로 본인을 인간의반의어로 정의내렸을때.그때 요조는 인간에대해 생각하는것을 멈추고 어떤 마침표를 찍었을지도 모른다. 


요조의 인생에서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의 인생에게 신은 전지전능하지 못했다.다만 면접관의 역할은 했을것이다.세상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인간들로부터 점수매겨지고 있었을것이고 합격여부가 판가름났을것이다.그 주제가 인간이었을것이다.요조는 인간실격을 원하지않았다.그저 무저항했을뿐이었다.주변사람이 힘들어하니까 그래서 나도 힘드니까.그만힘들고싶어서 무저항으로 받아들인선택이 인간을 아니게만들었다.사무칠정도로 불쌍한 결말이다.나는 어렴풋이 요조가 이렇게 자기파괴의길로 들어선 이유를 알것같다.주변 환경에 예민했고 여렸고 누구보다 세상을 보는눈이 정확했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외로웠고 사람들과 쉽게 섞이지 못했을것이다.그렇다고 다 자기파괴의 길로 들어서느냐? 그것은 아니다.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여린저항을 했기때문에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한다.그 작은 몸짓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통감해야한다.여기서 저항은 단순히 반대의뜻이 아니라 요조가 요조의 자아로 살 수 있게 노력했다는 뜻이다.그 저항이 자의반 타의반 끝났을때 요조는 무저항은 죄인가요?하고 신에게 묻는다.죄에 대해서 그렇게 고뇌하고 죄의 반의어를 찾으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계속 하나씩 파괴당하고 하나씩 되물어볼 수 밖에 없게 되었다.요조는 이십대 후반에 백발에 가까운 머리색을 얻었다.새하얗게 바란 그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인생의 고단함과 덧없음을 느꼈다.술 한잔이 생각났다.





인간실격 中


모든것은 지나간다는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