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청춘과 엄마의 황혼

나의 청춘과 엄마의 황혼




이번주 토요일 엄마의 생신이다.정확히 말하면 61세 환갑잔치를 연다.내 동생나이가 21살이니 엄마와는 딱 40살 차이가난다.보통 나에게 이렇게들 묻는다.어머니가 55년생이시면 네가 늦둥인가보구나.그럼 대답한다.아니요 늦둥이는아니고 엄마아빠가 늦게 결혼하셨어요.제가 첫째에요.


동생과 엄마 선물에 대해 고민할때쯤 엄마는 동창모임에 동생이 잡지부록으로 받은 목걸이를 빌려차고 나가셨다.그때 우리 둘다 목걸이를 해드리자 생각했던것같다.나는 학교로 올라오느라 동생이 직접 금은방을 돌아다니며 목걸이를 골랐다.기껏해야 우리 둘 다 학생이니까 비싼건 못해드려도 18K정도면 뭐.이런걸 왜 샀냐고 바로 호통부터치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좋다.지금 난 용돈을 조금씩 타서 쓰는 신세라 돈은 동생이 다 냈고 졸업 후 대마도여행 경비를 대주기로했다.


뷔페에서,식구들끼리 모인자리에서 언젠가 엄마에 대한 나의 마음을 시로 낭독하고싶은 꿈이있다.어디가 되었든 많은 사람들이 있는 그 공간에서 엄마를 향한 감사와 존경과 사랑과 동경을 담아 그렇게 노래하고싶다.아마 이번 잔치때는 아닐것같다.작은 편지지에 글을 써서 가방에 넣어놓을지라도 낭독은 못할듯싶다.


아빠가 살아계셨더라면 같이 환갑을 보냈을텐데,아빠가 언제 돌아가셨더라.벌써 8년이 넘었네.정말 나는 그시간동안 너무 외롭고 너무 힘들었다.그때는 네이버블로그를 했었는데 항상 비밀글로 일기를 쓰고는했다.아빠에대한 원망 사랑 그리움 죄책감 아픔 그리움 아픔.블로그를 통으로 날려버려서 그때 글들을 지금 읽을 수 없지만 항상 아빠가 그곳에서 행복하길 바라는 그런내용이었던것같다.백사장에 꽂혀있는 어린나무처럼 나는 허우대만 멀쩡히 나무의 모양만을 흉내낼뿐, 제 기능을 하나도 못하며 자랐다.텅 빈 마음을 끌어안고 지내니 거기엔 슬픔만 내리 가득차더라.그래서 그냥 내 몸의 세포처럼 받아들인지 오래됐다.인간은 적응의동물이라더니 슬픔에 너무 적응해버려서 지금처럼 아무 일도 없는 일상에도 눅눅하게 우울이 깔려있는것같다.습하고 눅눅한 지금의 기후에 맞게 열대지방 나무처럼 변해버렸을지도 모른다.환경에 맞게 자라기 위해 나무도 제 모양을 바꾸며 생존한다.나도 다르지않다고 느낀다.


내가 그렇게 아파하며 멀쩡한것처럼 지낼때 엄마는 어떠했느냐.온 울화를 끌어안고 자식새끼 먹어살린다고 일터로 나갔다.그때는 내가 엄마가 힘든걸 너무 잘 알아서 스스로 입을 꿰어버렸고 그 어떤 고민도 상담도 집에다 털어놓지 않았다.걱정하실까봐.나중엔 그게 나한테 독이되긴했지만.여튼 엄마는 나보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다.엄마와 언성을 높이며 싸울때에 진심으로 무섭다고 느낀적이있었는데 그때도 이때였다.내가 누구와 대화를 하고있는지 전혀 감이안올때.엄마 안에 괴물이 산다고, 너무 무섭다고, 엄마 나 누구랑 말하는거냐고 펑펑 울었었다.그때 내가 화를 내며 버럭버럭 싸우던 상대는 엄마가 아니라 엄마의 울화덩어리였다.이제와 말하지만 그때 엄마는 울화에 조종당하고있었다.


엄마의 황혼도 모두가 진통이었고 나 또한 진통을 앓았다.그리고는 이렇게 나는 청춘의 제대로 된 시작점에 엄마는 황혼의 시작점에 와 있다.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애증 원망 가여움으로 얼룩진 내 아빠의 빈자리가,상실의 아픔이 채워질때까지 그렇게 싸우고 싸웠던 엄마와 내가 우리집이 이제 조금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것같다.금전적으로 나아진 상황은 하나도없지만 그래도 스스로 자랑스럽다.지나놓고나니 진통을 앓을동안 내가 잃었던 사람이 떠오른다.내 스승님과 내 친구.아주 홈런으로 저 멀리 보내버렸다.내 지랄맞은 우울증을 지금은 이해해줄까? 바라지도않는다.나중에 친구에게 청첩장이 오면 가서 밥이나 먹고, 스승님은 찾아뵈려한다.어떤 표정을 지으실까.저녁에 술한잔하면 좋겠는데 나는.


그동안 잃어버린 모든것을 새기며 나의 청춘과 엄마의 황혼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공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