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누름돌로 마음 누르기

 

뛰쳐나갈 것 같은 마음을 가만히 수면 아래 눌러 놓으려고 요즘 애쓴다. 많이 애쓴다. 예를들어, 내 기분전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보려고 닥터틸즈 자몽솔트를 사서 풀어놓고 좁은 욕조에 반신욕을 수차례 한다던가, 괜히 향이 좋은 바디워시로 온몸을 씻어내린다던가. 내가 좋아하는 시원한 제로콜라를 얼음 가득 부은잔에 채워서 원샷한다던가, 빗소리 ASMR을 듣는다거나, 피아노 음악을 듣는다거나. 최대한 내가 좋아하는 소소한것들과 차분한 것들로 일상을 누르려고 애쓰는중이다. 왜냐면 나 지금 기분 그래프가 위로 많이 올라가 있어서 조심해야하거든.

 

술자리는 줄이고, 지인들과의 대화도 최대한 줄여본다. 커피는 최대한 마시지 않고 심장을 불안하게 뛰게 할 요소는 만들지 않는다. 조증 상태에서는 말실수가 잦아지고 구매욕도 상승한다. 이게 많이 심해지면 예전의 내가 되는거니까. 지금 아슬아슬하게 조증으로 올라와있는 상태로 몇개월이 지났음을 난 느꼈다. 울증인 줄 알았는데 벌려놓은 일들이나, 갑자기 안하던 머리 탈색을 하고 옷을 사고. 그냥 모든게 좀 예민하고 업 되어있다. 차분한 일상. 지금 내겐 너무 필요하다.

 

나는 병원을 상당히 오래 다닌 편이다. 그리고 그간 병원을 다니면서 5알로 시작했던 알약들은 어느새 7-8알로 늘어났고 때에 따라 조정중이다. 상당히 독한약이기 때문에 가끔, 정말 기운이 없을때가 있다. 소변으로 배출이 되면 다행인데 건강검진을 받았을때 신장기능에 이상소견이 보인다는 말때문에 대학병원을 많이 드나들며 검사를했다. 그때도 확실한 병명은 나오지 않았지만 단백뇨가 검출되긴했고, 만성피로에 의해서 그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뭐가 되었든 그랬다. 그 순간에는 병명이 나오지 않는다. 나중에 나에게 어떻게 되돌아 올지 모르겠다. 사실 모든약에는 부작용이 있고, 내가 먹는 강한 약 또한, 임산부 혹은 임신을 준비중인 사람이 먹으면 절대 안되는 그런 약물이다. 그걸 난 몇년간 영양제 처럼 꼬박꼬박 물로 삼켜 넘긴다. 그래야 내일이 살아지는 사람이 되어버렸거든. 영양제라고 생각한다. 살아서 움직일때 조금 덜 아프자고 먹는 영양제 같은거, 나중에 아플일은 나중으로 생각하자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인연을 맺고 가정을 가지더라도, 아이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마음 깊은 구석에선 장기복용중인 약물이 내게 주는 두려움이 있다. 잊혀지지 않는 말.

 

'태도씨가 혹시 임신 준비중이면 꼭 나한테 말해줘야돼요 꼭이요'

 

사람좋은 원장님의 미소에 끄덕거리며 병원을 나올땐 나는 결심한다. 그래 임신이 뭐가 중요해. 애초에 생각도 없었는걸. 그러나 내가 선택하는것과 내 환경에 의해 포기해야하는것들은 그 무게와 아픔이 다르다. 단순이 약이 독해서가 아니라, 임신중일 그 10개월동안 내가 겪을 부작용들은 나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거든. 겨우겨우 그 고생을 하며 찾은 나를 그나마 살게 만들어주는 약을 끊고 다른약을 쓰면서 내가 어떤 부작용을 겪을지 상상 하기도 무서워서 못 그럴것 같거든. 아이를 키우는 일이나 나를 살게하는일, 나는 두가지 일을 다 해내는 것은 내겐 너무 사치라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자고 생각한다. 아빠가 나를 망가지게 했든, 엄마가 그랬든, 아니면 내가 그랬든, 그것도 아니면 내가 너무 믿고 의지하고 무릎꿇고 열심히 기도밖에 하지 았았던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가 그랬든. 나는 망가져있다. 망가진게 사실이고 나는 열심히 복구중이다. 1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서, 매번 매번,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기억하고 기록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 목표로 했던 수업들도 이제 9월안으로 끝날것이고 대학원입시도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찾아오면 금방 지나갈테지. 알고 있다 나도. 그런데 기운이 나질 않고 기분이 나아지질 않는다. 오래동안 물을 담아놓은 항아리에 이끼가 끼고 불순물이 둥둥 뜨면, 걷어내면 그만인데. 나는 그만큼 같이 퍼담겨 나가는 물도 아까워서, 아끼려고. 그냥 조용히 누름돌로 눌러놓는다. 돌이 불순물들을 천천히 누르면서 깊은 곳에 잠길 수 있게. 마음에 할당량이 있어서 퍼담겨 나가면, 실수로라도 흘려버리면 난 그만큼 반경이 좁아든다. 이건 정말로 내 최대치다. 그래서 비루하고 남루한 이 항아리앞을 지키고 서있다. 혹여나 깨질까, 혹여나 쓰러질까. 그냥 그러고 있다. 비가 와서 물이 넘쳐도 안되니 뚜껑을 닫아놓고 찌꺼기가 떠오르면 누름돌로 눌러놓는다. 이게 내 직업이다. 그냥 마음 속 항아리를 관리하는 사람이요. 누가 물어보면 이게 내 직업인 것이다.

 

잘해야지. 알아. 끝내야지. 알아. 넘겨야지. 알아. 마무리 해야지. 알아. 알아. 나도 알아 잘알아. 그래서 일단, 열심히 눌러놓고 있잖아. 터질 것 같은 머리도 마음도 식히고 있잖아. 재촉하지 말자. 시간이 필요해. 나는 내게 시간을 주고싶어. 나는 필요해. 가라앉을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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