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사람으로 태어나 가끔 천국을 믿어야만 할 때가 있다. 먼저 간 사람을 추억할 때, 그 사람이 잘 지낼것이라 생각해야 내 마음이 편할 때. 내 손목에는 십자가 모양의 타투가 새겨져 있지만, 먼저 말을 거는 사람에게 꼭 이야기해준다. 십자가가 아니라 그냥 가로줄과 세로줄일 뿐 그 어떤 의미도 없다고.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 진짜일까? 진짜 가로세로일 뿐 이야?

 

아빠의 아빠도 천국에, 아빠의 엄마도 천국에 있겠지. 난 아빠가 아빠의 엄마 아빠와 만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가슴을 이렇게 짓뭉개놓은 사람이지만 용서하는 마음으로 백번천번을 생각해서 아빠가 부모님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릴때 못받은 사랑도 듬뿍 받고 어른이 되고 부드럽게 불릴 일 없던 이름도 불려가며 다시 새롭게 사랑받고 살면 좋겠다. 현생에서 술로 다스릴 수 밖에 없었던 못난 자괴감도 엄마아빠 밑에서 사랑으로 어루만져졌으면 한다. 제발 넘치게 사랑받았으면 한다.

 

나는 아파트 주변에 몸을 못가눌 정도로 술에 취해 쓰러져있던 아빠가 너무 싫었지만,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빠가 너무 싫었지만 그 밑바닥에 어떤 감정이 깔려있는지 알고있었기에 마냥 미워하기보단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애를 정말 많이 썼다. 사실 노력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부분도 많았다. 이를테면 그걸 유전적 사고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비듬이 하얗게 내려앉은 아빠의 점퍼를 보며, 바둑게임에 열중해 욕설을 내뱉으며 담배를 피던 아빠를 봐도 나는 마음이 아팠다. 내가 어릴때 추억하던 아빠가 아니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 앞에 항상 밥상을 따로 차려 주었다. 아빠가 게임에 몰입해서 밥을 거르는게 아니라 가족에게 낯이 없어 본인도 상에 함께 앉지 못하는것을 알았기에 나는 그렇게했다. 어떻게든 아빠와 우리 가족을 다시 연결하고자하는 마음이 강했다.

 

예수가 못박혀 죽은날인지, 다시 부활한 날인지도 모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빠는 커다란 나무를 트럭으로 싣고 와 천장에 닿게끔 집안 바닥에 박아두고는 했다. 어린 나와 동생은 약상자에 들어있는 솜뭉치를 떼다 붙이며 열심히 트리를 꾸몄다. 우리 아빠는 그런사람이었다. 화이트데이가 다가오면 큰 종량제 봉투에 온갖 사탕들을 쓸어담아 사오는 사람이었다. 이유가 생기면 어떻게든 선물을 만들어 주었다. 내 젓가락이 길어서 사용하기 불편하면,  집에 있는 연장으로 내 손길이에 맞게 젓가락을 잘라서 사포로 직접 갈아주었다. 나는 하나밖에 없는, 나만있는 젓가락으로 밥그릇을 비워댔다. 그 당시 동네에 아무도 가지고 있지않던 킥보드나 인라인스케이트를 깜짝선물로 주고, 가족끼리 시원한 바다를 보며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게 주말을 빼놓는 아빠였다. 그랬었다.

 

교복을 입은 내게 담배 심부름을 당연하게 시키고, 핸드폰이 전원이 켜지지 않는다고 대리점에 가서 미친듯이 욕을 내뱉는 사람도 아빠였다. 그것도 아빠였다. 좋아하는만큼 내가 감당해야 할 아빠의 모습, 어른의 모습, 보호자의 모습이었다. 추억은 미화된다고 하니까 어릴때 추억이 더 미화된것도 많겠지만 확실히 아빠는 많이 망가졌었다. 한참을 허우적 거리더니, 그렇게 우리 가족을 가슴아프게 만들더니, 내가 집에 들어가기 싫어 놀이터에서 혼자 펑펑 울게 만들더니 조금씩 일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일을 했고 돈을 벌었고 술을 줄였다. 컴퓨터게임 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간혹 아빠가 담배를 피며 온라인 바둑을 두던 그 모습이 한여름에 낮꿈을 꾼것처럼 희미하게 떠오른다. 넓지만 낡은 베란다, 커다랗게 들어오는 햇볕, 그 쯤 어딘가에 낡은 등받이 의자. 그리고 커다란 스피커소리로 딱 -. 딱 -. 바둑을 두던 아빠. 새벽까지 이어지던 그 소리는 어쩔땐, 아니 꽤 자주 스트레스였다. 바로 옆방에서 뒤척거리며 잠들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다. 지독히도 헤드셋을 쓸 줄 몰랐다. 답답한 중년의 고집이거나 가족에 대한 배려심이 없거나, 반항이었을것이다. 그랬던 아빠는 갑자기 쓰러졌고, 돌아가셨다.

 

생각해보면 아빠의 유년기,청년기 모두 아빠 입에서 직접 들은 적이 없다. 아빠는 지독하게도 본인의 아빠이야기를 꺼리던 사람이었다. 나는 친할머니나 엄마를 통해서 대충 할아버지가 어떤사람인지 유추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빠보다 더 한 사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빠가 그렇게 불안정한 사람으로 자란것도 나는 할아버지가 8할 정도 책임이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단 한번도 아빠입에서 '아빠'소리가 나온적이 없는것만 봐도 그랬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돌아가신 할아버지. 아빠는 확실히 많은 상처를 받고 자랐을 것 같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할아버지를 용서 할 수 없었을까. 한번 그런말을 한적이 있다. 끈끈한 외가식구들이 부럽다고. 아빠는, 어린애로 돌아가 다시 성장해야됐을 '애' 였다.

 

나는 그래서 친할아버지에게도 기회를 주고싶다. 당신이 망쳐놓은 것들이 한둘이 아니니 사랑으로 고쳐달라고. 이제 할머니도 하늘로 가셨으니 모두 모였으니 이제 세가족 잘 살아보시라고. 본적도없는 예수에게 무릎꿇고 비는 어느 멍청한 사람들처럼 매달려 빌고싶은 심정이다. 할아버지님, 부디 우리 아빠 행복하게 다시 키워주세요.

 

 

 

덧붙여 아빠가 천국에 갈까, 지옥에 갈까 그런생각도 많이했는데 이제 상관없어진 것 같다. 내가 다 용서했으니까 아빠는 천국에 있을것이다. 종교 뭐 이런거랑 다 상관없이, 내가 손목에 새긴 십자가 혹은 가로세로와 상관없이 아빠는 천국에 가 있을 것이다. 내가 그리로 올려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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