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 : 왜 살아있을까

#살아있다 : 왜 살아있을까

 #ALIVE, 2020 조일형

 

엄청 오랜만에 영화감상 쓰려니 살짝 떨린다. 얼마 전 보고 온 <#살아있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한다. 앞에 해시태그가 붙는건 나름대로 의미가 크다. 사실 좀비영화를 워낙 좋아하는지라 해외 인디영화까지 싸그리 모아모아 보는 나에게 이 영화가 당연 재밌지 않을거라고 생각은 했다.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올해 본 영화 중 워스트3 안에 꼽는다. 난.

 

생존영화에 오류는 치명적이다

그런데, 살아있다에는 치명적 오류들이 자주 등장한다. 일단 우리가 다른 영화들로 학습해왔던 다른 좀비들과 조금 다르게 설정이 되어있다. 예를 들자면 이 영화속 좀비들은 시각과 후각 청각이 예민하고, 좀비가 되기 전 습관적으로 하던 행동들이 뇌 속에 박혀 그대로 행동한다. 그런데 이런 설정들이 디테일하지 않고 중간 중간 오류를 반복한다. 설정이 설정을 뒤엎고 또 뒤엎는다. 이 영화가 스케치업 한 좀비들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니 집중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주인공 준우가 옆집 열쇠를 가지러 가기 위해 복도로 나가는 시퀀스 또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좀비가 갑자기 왜 잠들어있는가. 심지어 자기가 쳐죽인 시체도 아닌데, 그냥 좀비 무리에 깔려죽은 좀비인가. 난 이때부터 '엉성한데?'라고 느꼈던 것 같다.

또 준우와 유빈이 등산용 로프로 물품을 주고받는 장면도 심각한 설정 오류이다. 둘이 층수가 맞으면 절대로 그대로 물건을 주고 받을 수 없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스피드가 없는데, 중간에 멈추면 멈췄지. 만약 둘이 층수가 다르다고해도 그것도 문제다. 고층에 사는 사람이 물건을 전달 받을 수 없다. 솔직히 좀비영화는 단순 스릴러나 공포물이 아니라 재난이자 생존영화라고 본다. 그럼에도 디테일이 떨어지는 설정이 내내 아쉬웠다. 제작비가 싸서 그냥 찍었나 싶을정도로.

말할 수 있는 오류는 너무 많지만, 엔딩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다. 방향이 안맞는다. 궁지에 몰린 두 주인공들을 그냥 죽이지 않으리란것 쯤은 알고 있었다. 잔인하게 물려죽으면 미드나잇 초청받은 인디영화지. 한국 상업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너무 안일하게 처리하지 않았나 싶을정도로 애매한 타이밍에 애매한 군용헬기가 등장해 그들을 구출해준다. 갑자기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영화든 그냥 바람같이 나타나서 해결해주는 람보같은 인물들이 있으니까. 그럼 아파트 아래를 내려다보는 샷을 넣음 안됐다. 사실, 찍을 수 있는데, 이건 편집의 문제가 크다고 본다. 확인을 안한걸까. 1초전까지 아무것도 없다가 갑자기 아래에서 등장한 헬기를 설명 할 방법이 없다. 포털을 열고 왔다는 설이 제일 설득력있을정도로...차라리 저 멀리 위에서 총질을 해서 좀비를 쏴죽였다면 모르겠다. 헬기가 위로 올라올때까지 귀 밝은 좀비들도 모른척 반응이 없었다는게 너무 짜치지않나...

 

시간 경과에 따른 디테일이 부족하다

일단, 준우 캐릭터는 그냥 요즘 캐릭터 같다. 게임 좋아하고 인터넷방송도 하는 듯한. 만화캐릭터처럼. 그렇다고해서 준우가 한달 이상 집에 갇혀있는데, 머리가 떡지지도 않고 뿌리가 자라지도 않는 인물은 아닐텐데. 준우는 그대로다. 그냥 느껴진다 두두다다 몰아서 존나 찍었겠구나. 디테일의 문제라하면 뭐 유아인 몸값 비싸니 몰아찍느라 그랬다하면 할말은 없는데, 적어도 땟국물 가득한 얼굴이 아니라는게 정말 몰입이 안되더라. 이건 박신혜 경우가 더 심각하다. 너무 멀끔해도 심각할 정도로 멀끔하다. 좀비를 그렇게 때려죽이면서 핏자국 하나 안튀는 그녀의 얼굴은 방수재질이라도 되는건가. 심지어 아파트 한 동을 건너오면서 벌어지는 난투극에도 박신혜는 멀끔하다. 세상에, 보다가 진짜 이정도로 몰입 안되는건 처음이다. 참고로 <워킹데드>같은 드라마에서는 훨씬 몸값 비싼 배우들도 얼굴 머리 기름떡칠을 하며 거지꼴로 나온다. 적어도 한달이면 멀끔할 수 없다. 심지어 유빈은 식물한테 물도 나눠 줄 정도로 사랑이 많은 캐릭터 아닌가. 자기 쓸 물도 모자랐을거면서...빗물로 씻었다 이건가?

얘기 나온김에, 이 영화에서 박신혜 연기 정말 심각하다. 디렉팅 잘못인지 박신혜의 고집인지 나는 알길이 없지만. 솔직히 유아인도 특유의 본인의  쪼 때문에 중간중간 몰입이 깨지는 순간이 있었지만 맹세코, 박신혜만큼 집중력을 흐리게 만들진 않았다. 정말 배우에게 악감정은 없지만, 톤에 대한 연구를 정말 정말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극이 후반부를 넘어가면서 <엑시트> 의주 캐릭터를 모방한건가 싶을정도로 비슷한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이건 뭐 대본이랑 디렉팅 문제겠지. 박신혜 배우한테 어울리는 영화도 아니었고, 어울리게 연기 하지도 않았다.

 

죽고 싶지 않으면 SNS를 해야한다는 무서운 교훈

아니,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뭐야? 라고 물으면 감독은 얘기해 줄 수 있을까.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미약하게나마 복선을 이웃간의 단절, 도심 속 사람들이 얼마나 외톨이로 살아가는지 등등 거시적 관점에서 무언가를 비판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구나. 느끼긴 했는데 (솔직히 이마저도 진부했지만) 그런게 싹 사라지고 어이없는 헬기씬을 넘어 등장한것은 그냥 아파트마다 떠 있는 SNS계정 사진들. 뭐 어쩌란 말인가. 살아있다고 외쳤기 때문에 살아있다. 이런 말인가? 나는 이 영화가 어려워서 이해 할 수 없는 것 같다. 또 위화감이 안 들 수 없는게, 준우 부모님은 추측상 아주 잔인하게 좀비들에게 물려 죽었다. 구출 되고 친구들에게 연락오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행복하게 웃으며 끝나면 끝인가. 주인공의 감정이 너무 단조롭다. 그래서 더욱 두 주인공이 겪은 일련의 사건들이 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부모님도 인스타그램을 했다면 죽지 않았을텐데. 노인들도 인스타그램 할 줄 알았으면 안 죽었을텐데. 기술이 만든 이 무서운 세대단절이란....

 

좀비에겐 과제가 있다

사실 살아있다에게도 어려운 도전이었을거라고 본다. 국내에서 <부산행>이 크게 흥행한것도 한 몫 했지만,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드는 생각은 '좀비도 이제 낡았구나' 라는 생각이었다. 지금까지는 꽤 신선한 축에 속했는데, 이젠 늑대인간 만큼이나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 좀비를 새롭게 연출하는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월드워Z>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좀비를 새롭게 고안해냈다고 느낀다. 살아있다는 그런 관점이 부족했던 것 같다. 아마 복도식 아파트의 폐쇄성과 좀비가 붙으면 재밌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방식으로 영화가 구현되지 않았나 싶다. 아, 정말 진부했다. 솔직히 이건 내가 좀비물을 좋아해서 더 그런걸 수 있다. 중간에 등장한 남자 또한 너무너무 진부해서 할 말이 없었다. 원래 자기 가족 좀비된 걸 못 받아들이고 그 남자처럼 데리고 다니는 인물들이 더러 있다. 근데 그걸 살아있다 속 주인공들이 갑자기 마주칠 필요는 없잖아? 이 난리 속 한 남자의 비극을 짧게나마 조명하고 싶었던걸까. 그럼 앞에 준우와 유빈의 러브스토리 아닌 러브스토리같은 지루한 씬들이나 좀 쳐내지. 이건 균형의 실패다. 어쨌든 좀비는 이제 낡아가고 있다. 때문에 단순히 세련된 연출이나, 독특한 장소만으로 해결하지 못할 것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산행>도 영화가 뛰어나서 흥행한건 아니잖아? 아직도 이거 마지막 장면이 짜쳐서 어이없는데. 여튼, 성공적인 국내 좀비 영화가 나오려면 많은 연구가 있어야겠다는 사실. 그리고 그게 꼭 헐리우드식 답습이 아니어도 되겠다는 생각이다. <킹덤>은 그런 면에서 잘 하고 있다. 내 취향이 아닐뿐.

 

그리고 드론이랑 등산용장비 나오면 이제 엑시트밖에 생각이 안 날듯 하다. 궁금한건데 21세기형 힙한 영화라고 꼭 드론이 등장 할 필요는 없는데. 드론 좀 잃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