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ㄱ'

나의 'ㄱ'


뜬금없이,그러나 기다렸다는듯이 ㄱ이 말했다.그가 몸에 지닌 염세적인 태도는 이미 그를 휘감고있었다.돌같은 그를 누가 뚫을 수 있을까.나는 그의말에 생각에 빠진척했다.피하고싶었다.그와 대화하는건 피곤한일이었다.


"평범하다는건 지루하고 따분하고 재미없는걸 다 견뎌내야 가능한거잖아.그렇게 사는건 재능이야"


휘적휘적.빨대로 이미 녹은 음료를 저어대고있는 그를 바라보았다.반복적으로 둥글게 원을 그려대고있었다.그의 손짓은 나에게 주문을 거는듯했다.빨려들어라.빨려들어와라.그래 어쩌면 그의 말대로 평범하게 사는것은 쉽지않을일일지도 모른다.비범하다라는 뜻과 많이 다른가.평범하다는 뜻이 순탄하다는 뜻과 같은가.쓸모 없는 고민은 항상 그 때문에 시작된다.이런 고민은 내가 밥을먹을때도 목욕을 할때도 심지어 영화를 볼때도 날 지배한다.그리고 끝내 생각은 내가 어쩌다 그와 깊어졌는지 의문을 가지는것에 다다른다.주문을 거는 그의 손만 빤히 바라보다가, 결국은 피했다.눈치채지 못한것같았다.그는 계속 자신의 신념들을 주절주절 늘어놓기 시작했고 나는 그의 음료너머를 바라보며 한귀로 흘려버렸다.결국 그는 폭발한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진짜 중요한 얘긴데, 진심없는 너랑은 같이 못있겠다"


나는 갑자기 턱뼈를 쳐맞은 기분에 그를 올라다보았다.내가 무슨 잘못을했을까 생각하기도전에 그는 이미 화가나있었다.미안하다고 먼저 말했지만 뭐가 그렇게 성에 차지않는지 씩씩대는 그를 난 어쩔수없었다.그러니까 맞장구라도 쳐줘야했던걸까.그렇게 하기엔 너무, 너무 패배자 같아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그의 말에 동의하는 순간 난 평범을 벗어나는 사람이 되는것같아서.그 혼자만 그러라고 놔두고 싶었다.항상 나서고 떠들고 격양되어있는 그는 매력적인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위험하고 불안하고 현실적이지 못한 사람이었다.그래서 자꾸 주문을 거는 그를 피해버렸고 눈치빠른 그는 금새 알아채고 빈정이 상해버린것이다.나는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사과했다.그러나 동의한다는말은 하지않았다.세번째로 미안하다는 말을 뱉을때 그는 눌러참는듯, 져주는 듯 자리에 앉았다.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항상 이런식이었다.익숙해질만도 하지만 그건 내게 어려웠다.찌푸린 눈썹만 눈에 들어왔다.주위의 사람들이 무슨이야기를 나누는지 이제서야 들리기 시작했다.어느 대학원에 진학했더라 누가 무슨 차를 뽑았더라 다음달엔 외국으로 여행갈예정이다 등등 그들이 내 옆에와서 떠드는듯했다.우리 둘 사이는 조용함으로 채워졌고 다른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변을 뱅뱅 돌았다.오른쪽 귀에서 왼쪽귀로 돌고 도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목소리로 주문을 거는듯했다.빠져들어라.빠져들어라.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내 귓가를 춤을 추었다.


"그만 나가자"


놀란척하지 않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일어났다.원래부터 그랬다.생각을 던지는것도 접게만드는것도 모두 그가 나에게 해주었다.그를 슬쩍 바라보았다.아까처럼 인상을 찌푸리고있진 않았다.원래 그런건가.말이라는건 흩어져서 계속 이어가지 않으면 그냥 공중에 퍼져나가기 마련이다.그는 내가 이어주길 바랬겠지만, 나는 그러고싶지 않았다.그래도 화가 풀린것같아 다행이었다.


따뜻하고 나른한 음악이 공간을 채우던 카페와 달리 거리는 춥고 한산했고 바람소리만 가득했다.서로 말없이 앞뒤로 걷기만했다.그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다시 생각했다.평범하다는게 무슨뜻인지, 그리고 내가 왜 그와 관계를 맺었는지.반갑지만 불편한마음이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그가 한발 한발 내딛을때마다 나의 기쁨과 불안이 교차되어 앞으로 나아갔다.바람만큼이나 차갑고 쓸쓸한 뒷모습을 보며 동질감을 느꼈다.내가 그와 친해진 이유는 사실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평범해서 혹은 평범하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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