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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걸까

억울한걸까


어제 내내 들떠서 혼자 식당에 들어가 밥도먹고 거리도 걸었다.카페를 갈까 하다가 귀찮아서 말았다.집으로 가는 버스를타고 창밖을 바라봤다.비가 그치기 시작한 그 동네는 잔잔한 어둠이 깔려있었다.회색천막이 덮인 하늘은 버스뚜껑을 열어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의사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더불어 오빠가 했던 말도 머릿속을 떠나지않는다.친구가 그래 너 그때 그래보였어.그말도 떠나질 않는다.남들한테 나는 대체 어떻게 보인걸까.내가 실수한걸까.나는 수용받지 못할 사람일까.나는 그런사람일까.억울하지만 해명 할 수 없었다.뭐를 어떻게?구구절절 말하는게 더 비참할뿐이다.


버스기사를 향한 무차별 테러가 많아지면서 기사석엔 보호벽이 생겼다.마치 아크릴판같은 그 벽에 머리를 기대고 여전히 창밖을 바라봤다.차체가 덜컹거렸다.벽은 마냥 투명하지만은 않았던지 창밖의 사물을 거울처럼 비추었다.상념에 젖어있었다.창 밖 왼쪽에서 달려오던차가 갑자기 역주행하는 검은 차와 부딪혔다.부딪힐뻔했다.그저 기사석 보호벽에 반사된 자동차라는것을 금방 알아차렸다.버스와 같은 방향으로 달려나가는 다른 차들도 계속 부딪히고 합쳐졌다.만화경같아.세상이 세상이 아닌것같아.다 일그러져있고 여기는 몇차원일까.다시 멍하니 벽에 머리를 쳐 박고 창밖을 바라보다 또 상념에 젖었다.


억울했다.남들 다 하는거 나도 다 해보고싶었다.원나잇이든 뭐든 어떤 나쁜짓이든 신문헤드라인을 장식할만한 그런일이 아니라면,아니 혹시 그런일이 될지라도 나는 하고싶었다.한 일주일간 그랬다.내 친구도 내 스승님도 오빠도 적어도 나보다 하고싶은거 다 했으면서.눈물이 났다.자제력을 잃지 말라고했다.나는 미치고싶었는데 그러질 못해서 미칠것같았다.원래 일상 일탈2를 쓰려고했다.병원을 갔다와서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두려운 마음이 나를 감싸고 동시에 마음 깊숙한곳에서는 내가 그걸 바라고있을지도 몰라.아예 제대로 미쳐서 그냥 평생 그림만 그리고 살 수 있게 구실을 만들어버릴까.나는 왜 미치면 안되는지 모르겠다.나락으로 떨어질까봐.다시는 구렁텅이에서 벗어나지 못할까봐.남들이 걱정하는건 그런걸까.어쩌면 내가 즐기는거 아닐까.놓기 싫어하는건 내가 아닐까.어제 많이도 울었다.무서웠다.


나는 하얗게 불태우지 못하고 나이들어 죽는게 제일 불행한 인생이라고 생각했었다.평범해지고싶으면서도 평범해지고싶지 않았다.솔직히 이야기하면 이런 고통과 고난들이 내가 앞으로 작품을 하는데 좋은 재료가 될것을 알고있었다.이미 경험해봤다.모멸감과 수치심과 복수심이 뭉치면 에너지로 폭발한다.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그 에너지.미칠 수 있게 누군가 나를 자극적으로 건드려주길 바랐을지도 모르겠다.눈물이 났다.한번만 미치면 될것같은데,그게 잘 안되니까 힘들었던건데 미치지말란다.한번씩 다 미쳐본것같은 사람들이 나한테 그러지 말란다.내가 참고참느라 속이 썩어문드러진걸 알면서도 참으라고 나를 걱정해주니 고맙고 화가났다.


문장이 괜찮으니 나는 괜찮다.자꾸 억울함과 서러움이 복받친다.바로 전 글이 너무 아프게 느껴진다.나 자신에게 배신당한 느낌이지만 마무리는 하려고한다.나는 그 느낌을 잊기가 싫다.잊으면 안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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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탈1

일상 일탈1


졸업상영회 기간동안 재밌는일이 많았다.정말 간만에 폐 속 깊이 겨울공기를 마셨다.제대로 호흡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상영회 전날 친구 한명과 이화여대로 동창 졸업전시회를 보러갔다.서양화전공 전시홀인 3층 계단입구에 걸린 그림을 보자마자 따뜻하다고 느꼈는데 그게 지 그림이란다.원래도 뛰어나게 잘그리는 친구인데 이 정도로 성장했나 싶어서 괜히 내가 벅차올랐다.혼자서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는 그 친구는 낯선사람과의 만남도 낯선풍경속에 들어가 노는것도 잘하는 유쾌한앤데,그림에 그 성정이 잘 드러난것 같았다.기차 좌석에 기저귀만 찬 아이는 빛이 들어오는 창밖을 바라보고있었다.아주 따뜻하고 위로가되는 노곤노곤한 그림.빠르게 달려가는 기차안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친구의 시선은 평화로웠다.제목을 지어주어도 되느냐 물었더니 그러란다.그래서 내 맘대로 제목을 <청춘>이라고 지었다.흘러가는 시간속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아이의 시선이 마치 지난날의 회고록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태국음식점에서 배를 채운 후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그 시간에 동심으로 돌아갔다.두 서양화 전공 사이의 친구사이에 오가는 대화도 재밌었고(내 밑천이 얕아 알아들을 수 있는 주제는 제한적이었지만) 오랜만에 만나 우리 고등학교 시절 얼마나 병신같이 재밌었는지 떠들어댔더니 마냥 행복했다.수업시간에 실기 째고 컵라면먹다 담임선생님께 들킨것,종례시간이 일찍 끝날줄 알고 미리 가글하고있는데 종례가 길어져서 결국 그대로 삼킨것,내가 맨날 너 괴롭혔잖아.우리 맨날 비행기 담요덮고 침흘리고 잤잖아.그것도 교탁바로 앞자리에서.우리끼리 얼마나 엎어져서 웃어댔는지 정수리보고 대화 한 기분이었다.내가 주문한 레몬그라스도 잘 우려내주었다.기분이 둥실둥실 정수리 위를 떠다녔다.모르겠다.복잡하다고 느꼈던 서울사람들도 혼잡한 거리도 너무나 설레고 신이났다.친구한명이 시간이 늦어져 자리를 떴다.전시회장을 오래 비울 수 없었던 친구도 자리를 떴다.나도 다른 친구 자취방으로 떴어야했는데 그러기 싫었다.애들이 잔뜩 흘리고 간 탄맛나는 브라우니 부스러기를 포크로 모아서 한번 떠먹고는 2층으로 자리를 옮겼다.혼자만의 시간이니 라벤더티를 주문했다.


생전 비행기도 타본적없는데 외국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2층은 외국인들이 정말 많았다.사촌오빠가 추천해준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조용히 읽고 있었다.작게 깔리는 잔잔한 카페음악,주변에서 들려오는 아주 조금은 알아들을것같은 영어와 중국어.확실히 뭔가 피어났다.라벤더티는 진하게 우려져 독했지만 모든게 다 좋았다.분위기 좋은 칵테일바 구석에서 혼자 취하는 느낌에 몸이 나른해졌다.아 진짜 피어나는것같아.돈암으로 갈까 생각하던 찰나 전시회손님을 보내고 온 친구가 내 앞 빈의자에 앉았다.두시간만의 재회인데 난 얘가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셋에서 혼자,혼자에서 둘이 된 우리의 대화주제는 개인적이고 가정적인 부분을 넘나들었다.긍정적이고 밝던 그 친구는 자신이 요즘 오춘기 같다며 구구절절 사정을 늘어놓았다.내가 모르는 사이 너는 어떤 그늘을 껴안고 살았을까? 문득 궁금해졌다.인간관계는 언제나 어렵지만 제일 어려운건 역시 가족이려나.몇시간 넘에 대화하는통에 돈암사는 친구와의 약속시간을 많이 넘겼다.결국 그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같은 예고친구라 얘친구가 내친구고 내친구가 얘친구고 쟤친구도 얘친구고 내친구다.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너때문에 광어랑 연어회 사놓고 파스타,스테이크 다 해놨단말이야 시발년아.그리고 너 혼자오지마.같이와.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화나지도 않았으면서 화난척했다.나도 미안하지 않았지만 미안하다고 말했다.우리는 짐을챙겨 카페를 나섰고 친구의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이대 친구가 환장하게 좋아하는 고구마말랭이를 듬뿍안고서.


그 친구 집에 비싼 와인은 잔뜩있는데 오프너가 말썽이라 결국 싸구려 스파클링 와인을 땄다.엄청난 먹성을 자랑하는 예고친구들,그니까 우리는 그냥 겁나 먹었다.회를 특대로 포장해왔는데 그걸 한시간만에 다 먹어치우고 친구는 냉동고를 열어 스테이크를 해동했다.로즈마리랑 좋은 오일로 진공포장 된 최상급스테이크란다.냉동실에서 나온 그건 마치 열무김치와 같이 썩은 고기비주얼이었지만.전에 일하던 레스토랑에서 셰프와 친해진 친구는 그 셰프가 몰래 뒷구멍으로 빼돌리는 좋은 고기와 식자재들을 많이 얻었다고한다.집안은 쓰레기 난장판인데 냉장고만큼은 호텔 뺨치게 값나가는것들로 가득했다.그게 재밌어서 뜨끈한 바닥에 등을 지지며 킥킥댔다.양송이 브로콜리 어니언찹 겨자씨머스타.환상의 조합으로 스테이크까지 다 먹고나서도 우리(정확히 나)는 배가고파서 파스타를 해먹으려했다.친구한명은 이미 쓰러져 자고 나는 배가고프고.깨어있는 친구한테 컵라면 먹으로 편의점가지않겠냐는 아주 매력적인 제안을했는데 단칼에 거절당했다.결국 귀찮아서 나도엎어져서 뒹굴뒹굴 거리고 있는데 문득 내가 백팩을 PC방에 두고 온 사실이 생각났다.시계를 보니 새벽4시였다.시발.거기에 돈 다 있고 내 속옷도 다 있는데 변태놈들이 가져갔으면 어떡해.잠들려던 친구를 얼른 깨웠다.짜증내는애를 달래고 달래 새벽에 거리를 가로질러 지하철역앞 PC방으로 들어갔다.친구 알바 심부름 하느라 잠깐 같이 들렀다가 내가 옆자리에 백팩을 두고왔어 찡찡.카운터에 물어보니 검은색 가죽 백팩은 분실물 목록에 없단다.가방을 찾아다니면서도 서울 PC방 한번 드럽게 넓네 따위의 생각을 하고있었고,잠이 덜깬 친구가 어디서 찾아왔는지 한손에 백팩을 들고 내 앞에섰다.고마워서 뽀뽀해줄까 싶었는데 욕쳐먹을까봐 말았다.그리고 백팩을 건네받자마자 친구를 따돌리고 나 혼자 집으로 겁나게 뛰어갔다.차가운 바람이 슬리퍼차림의 맨발가락 사이사이를 가르고 들어왔다.웬만한 가게문은 다 닫혔고 거리는 넓은데 사람은 없고 그 뻥뚫린느낌이 얼마나좋은지 1학년 OT때 끝끝내 술로 선배들 다 이기고 호텔복도를 뛰어다니던 뭣도 모르던 그 해방감처럼 끝내줬다.비슷할진 모르겠는데 레이서들이 이런 쾌감에 속력을 내나봐.욕하면서 죽일기세로 쫒아오는 친구를 난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행복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야 문잠겼어.얘가 내려와서 따줘야돼.그래서 또 둘이 킥킥킥.잠든애를 전화해서 깨웠더니 이년저년죽일년 한참 욕을하더니 나는 xx x 남자를 만나고싶다라고 크게 삼창하면 대문을 열어주겠다며 협박했고 나는 신나게 삼창했다.궁시렁대면서 문을 열어준 친구에게 또 사랑한다고 애교피우고 둘이 쏙 들어갔다.신발벗자마자 들어가 바닥에 뒹굴거렸다.아 얘네 집 바닥 진짜뜨겁고 따뜻하고 좋아.아깐 맨발이 시렵고 추웠는데 지금은 불로 지지는것같아.오늘만 같으면 나 평생을 재밌게 살 수 있을것같다.리스테린 한 통 들이마신것처럼 시원하다 못해 얼얼한 즐거움이 식도를 꽉 채웠다.즐겁다.오늘 즐겁다.몇년만에 이 말을 입으로 뱉을 수 있어서 나의 하루를 같이 보내준 세 친구에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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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냐면

왜 쓰냐면


글을 쓸때 마음이 좋아지기 때문이다.다른 이유없다.어지럽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고 차분해진다.처음엔 그림그리는것이 그랬다.뭐,사실 그림이나 글이나 나에겐 같다.


어렸을때는 꼬박꼬박 일기를 썼었다.남들처럼 예쁘게 꾸미고싶은 마음은 없었지만,그래도 성실하게 하루를 마감하며 글을썼다.그리고 자라나며 굳이 글을 쓸 필요성을 느끼지못해 한참동안 쓰지않았다.다시 자판을 두드리게된건 15살 끝자락이였다.인생끝까지 친구겠구나 싶었던 단짝이 학급이 갈라져 점점 멀어지면서 공허함을 느꼈다.나는 확실히 정이 많았다.아니면 질투가 많던가.친구는 새 학급에서 친구여럿을 금방 사귀었고 전보다 더 밝아졌다.나는 외로운 느낌을 받았다.걔네들은 나를 의도적으로 배제한적도 없거니와 그럴마음도 없었지만 그건 내가 혼자 느끼던 외로움이었다.나는 유치하고도 복잡한 이 감정을 정리하기위해 종이 다이어리에 글을 쓰기도했고 종종 네이버블로그에 비밀글로 내 마음을 토로하고는 했었다.


폭발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계기는 아버지의 죽음에 있었다.난 부던히도 노력했었다.학교 끝나고 집에오면 사다놓은 천 피스 퍼즐만 바닥에 늘어놓고 두달내내 맞추기도했었고,죽어라 책만 사다놓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읽기도했으며 하루종일 라디오만 들으며 그림을 끄적거렸다.남들 눈에 그런 내모습은 제자리를 금방찾는,아직은 상처회복이 빠른 어린아이 정도였었나보다.그리고 나는 아프기 시작했다.살이 쭉 빠지더니 임파선염에 걸려버렸다.설상가상 근육통의 문제인줄로만 알고 찾은 통증클리닉에서 장침을 잘못맞은 바람에 목이 아예 안돌아가는 지경에 이르렀다.이비인후과에서 스트레스와 면역력저하가 원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처방을 받았다.그 후 구슬처럼 엮여있던 목에 멍울들이 사라졌다.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다.1년에 한번씩 연례행사처럼 나는 꼭 임파선염을 앓는다.고열에 끓고 온몸이 무기력해지고 목을 만지면 커다란 멍울들이 몇덩어리 잡힌다.그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또 왔구나.


상처회복이 빠른 어린아이는 책을 날을 세워가며 읽었다.어머니는 혼냈다.내 면역력의 이유는 나의 생활습관에 있다고.그러면 아이는 생각했다.내 생활습관에 이유는 아버지의 죽음에 있다고.난 불안했다.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날마다 그랬다.그일은 나에게 상흔처럼 남아 쉽게 아물어지지 않았다.나는 괜찮은척했을뿐이다.주변사람들만 몰랐을뿐이다.


언젠가 그날의 종이 다이어리를 펴봤었다.정확히 말하면 발인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와 책상앞에 앉은 16살의 그날의 일기였다.빽빽히도 써댔던 바로 전 종잇장과 비교되게도 단 세글자만 적혀있었다.힘들다.


시간이 많이 흘러 근 10년의 세월이 되었다.나는16살 그때와 같을까.나는 지금도 같을까.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아버지도 하늘에서 네가 잘되길 바랄거야.이제 천천히 잊어보도록해봐.진심어린 걱정에 고마웠다.그러나 나는 사람을 못잊는것이 아니었다.항상 무언가 결핍되어있는 어린 영혼을 가진 아버지에 대한 상처는 많이 가셨지만,내가 장례식 때 머리에 하얀리본핀을 꽂고 내내 하던생각은 따로있었다.아버지가 나를 떠나갔다는것이 아닌 세상이 나를버렸다는 생각이었다.아버지가 더 망가지지 않도록 우리 식구들이 더 깨지지않도록 나는 엄마 아빠 동생의 연결고리가 되도록 노력했다.상상할 수 없을정도로 넓은 이해심으로 아버지의 모든것을 이해했고 어머니의 모든것을 이해했으며 동생이 가진 아빠에대한 미움도 바로잡았다.내가 가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마침내,꿈만같게도 우리집은 그제야 평범해졌다.남들 벌어먹고 사는것보다 훨씬 부족했지만 부부는 싸우지않았다.네명이 한상에서 밥을 먹었다.아빠 다녀오세요 라는 말을 셋이 현관앞에서 하게되었다.드디어 평범해졌다.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한참동안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해가 저물때까지 울던 내가 아무렇지 않게 집에 들어설 수 있게끔 그렇게 평범해졌다.그리고 한달도 되지않아 아빠는 쓰러졌고 이틀도 되지않아 돌아가셨다.우리는 아빠가 남겨놓은 돈이없어 상속포기를 했고 빚도 청산했다.그리고 수급자가 되었다.그리고 엄마는 더 아프기 시작했고 나도 더 아프기 시작했다.세상에 대한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내 죄가 뭐길래 이런 벌을받을까.나는 정말 누구보다 노력했는데.


가슴앓이가 심해지며 다이어리를 미친듯이 썼다.하루에 세장,네장이 넘어가도록 썼다.그게 욕이든 푸념이든 그냥 썼다.그리고 누군가 내 일기를 훔쳐볼것같은 두려움에 일기를 잘 열리지않는 서랍 깊숙히 처박아두었다.네이버 블로그를 다시 개설했다.비밀글로 일기를 썼다.게시판이름이 아직도 기억난다<나의 사랑, 나의 영혼>.오직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만 썼었다.잘지내냐는 편지,그때 왜 그렇게 우리 가족을 힘들게 했냐는 원망.모두 거기에 적었었고,포스팅이 400개가 넘었다.그리고 블로그를 완전히 폭파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나름의 역사이다.네이버 블로그를 폭파하고 한참 뒤 티스토리 블로그를 개설했다.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쓴다.다른 이유 없다.계속 상처를 드러내고 쓰고 읽고 반복하려고한다.앞으로 내가 좋아질 구실 무언가라도 있으면 노력하려 한다.남들 도움도 뻔뻔하게 받고싶다.괜찮을지도 모른다.그동안 내 마음은 너무 외로웠으니 다시 나아질때까지만,딱 그만큼의 도움받을 자격이 어쩌면 나에게 있을지도 모른다.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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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요즘 일기4

그냥 요즘 일기4



1. 결국엔, 언젠간다녀야 할 곳이었지만 결국엔 다니고있다.현대인들에게 감기처럼 흔한 증상이 되었다지만 그래도 마음이 좀 그렇다.내가 말했다.모두 근심과 고민과 마음에 멍울을 지고 사는 줄 알았어요.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하지만 모두가 심한우울증은 아니에요.


2. 졸업작품은 기술적인 아쉬움은 있지만 독창성이 있다고 판단받은 모양이다.교수님들이 좋아하시는걸 보니 헛된시간은 아니었나보다.사실 내가 한것은 거의없다.친구가 큰 틀을 마련했고 난 디테일한 부분부분만 제작했을뿐이다.그래서 완전히 뿌듯하지 못한 내 자신이 조금 불쌍했다.창작활동을 하면서 뼈아픈 고통의시간을 지나 환희를 맛보던게 대체 언제적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벅차오르는 감동을 억누르며 온전히 기뻐하던 친구옆에서 나는 뭔가 기가 죽어있었다.


3. 엄마와 동생 이모 친척오빠 친구들이 나를 많이 신경쓰고있다.특히 엄마가 죄책감을 많이 느끼는것같아 마음이 좋지 못하다.엄마는 그저 자신이 버티면서 살기만하면 될줄알았다며 나의 어렸던날들에 사과했다.그럴 필요는 없었다.가해자없는 피해자도 있는법이다.


4. 새벽까지 쉽게 잠을 잘 수 없어서 펴 든 책이<피에타>였다.가연출판에서 김기덕감독의 <피에타>를 각색한 소설책인데 영화만큼 볼만했다.그래도 따지자면 김기덕감독만이 연출할 수 있는 압도적인 미장센을 문체가 담아내지 못하는점이 아쉬웠다.막상 책을 다 읽고나니 다시 피에타가 보고싶다.다시 영화관에서.다시 그 뒷줄에 앉아서.영화가 잘되길 바라는마음과는 모순되지만 텅빈 좌석이 고맙게도 나는 피에타와 긴밀히 대화했다고 생각했다.아주 개인적이고 깊은 대화를 나눈느낌에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도 한참을 앉아있었다.한 구간 떨어져앉아있던 중년의 남성분도 오래 앉아있었다.


5. 팟캐스트 벙커1 강의를 다시 듣고있는중이다.흥미가 생길만한 카테고리만 골라듣는중인데 지금은 은유작가의 글쓰기특강을 듣고있다.유려하지 않은 말솜씨에 약간의 의심을 했지만 강의내용은 매우좋게 느껴진다.자본주의사회에서는 의미있는시간과 의미없는시간이 나뉘어지지만,글을 쓸 때만큼은 절대 헛되게보낸 시간이란없다는 말을한다.백수면 백수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속에서는 그 시간도 특별한것이라.


6. 스승님께 전화를 드렸다.졸업 후,내 학점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어려움도 그렇지만 지금 나는 부딪혀가며 도전 할 여유가없다.자리가 있나 알아보고 연락을 주신다고 하셨다.병원으로 가는길에 통화를 끝내고 발걸음이 조금 무거워졌다.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봤다.눈물이 날것같은 마음을 모른척했다.


7. 병원에 들렀을때 점심시간과 맞닿아 1층카페에서 몇십분 시간을 때웠다.인상좋은 중년의 여성분이 주인이었다.커피는 마시지 않기때문에 차종류로 메뉴를 고르고있는데 주인분께서 인자하게 웃으며 좋은향기가 난다고 말씀해주셨다.멋쩍어하자 좋은 꽃향기라며 또 웃어주셨다.녹차라떼가 달게 느껴졌다.향수를 바꾼지 오래되었는데 향이 좋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은터였다.


8. 생일선물로 전자책리더기를 선물받았다.아직 내 손에는 없지만 내가 갖고싶은걸 알고 엄마가 생일선물로 퉁치자며 주문해주셨다.몇주 후 받아볼 수 있을듯하다.별거없다.지금의 내가 바랄 수 있는 현실적인 행복은 미술학원을 지하철이나 버스로 출퇴근하며 책이나읽고 가끔 산책할때 음악을 들으며 감상에 젖는것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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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항

난항


생각보다 작품이 삐걱대면서 난항을 겪는중.작업방식을 바꿔보기로 했는데 이게 잘 될지 모르겠다.목표는 잘만드는것보다 완성하는것에 있으니 최대한 그쪽으로 노력해야겠다.더불어 누군가와 커뮤니케이션하는것이 역시 쉽지않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닫는 중.이 작업에서 내가 배워갈점은 그래도 많이 있다.시행착오도 겪어보아야 다음엔 쉬운길로 갈테니 다 좋게 생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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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전트 : 얼리전트로 가기 위한 통행료

인서전트 : 얼리전트로 가기 위한 통행료

 


Insurgent, 2015

 


먼저 다이버전트 이야기를 하고 인서전트로 넘어가려 한다.일단 다이버전트 시리즈는 굉장히 많이 공을 들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속편이 나오는 영화의 첫편이 대부분 그러하듯 다이버전트 또한 배경과 인물에 설명에 충실한편이다.물론 그 구조와 스토리가 평면적이고 자주 학습된 내용이지만 CG작업과 OST가 영화의 개성을 드러내며 질을 높여주었다.앞서 나온 헝거게임,이퀼리브리엄과 비슷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낯설지 않은 영화이며,뒤 이어 개봉한 메이즈러너와도 비슷한 맥락이다.약간의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가미된 SF영화가 이토록 많이 존재한다.그 사이에서 다이버전트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인서전트가 이 순조로운 출발에 제동을 걸어버렸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서전트는 다이버전트의 속편으로 존재하기엔 너무 나약하다.그 부록이라면 모를까.이미 세계관은 다이버전트에서 설명이 되었고 인물들의 행동에는 동기가 존재했다.그런데 인서전트는 이를 부실하게 반복한다.새로운것은 단 하나.트리스의 성장을 위한 촉진제 '비밀의상자'가 등장한다는것이다.


너무 포괄적으로 그려진 이 상자때문에 영화 감상이 더뎌진다.인서전트에 따른 이 상자의 정의 첫번째,부모님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던 물건이다.두번째,도시의 창조자들의 메시지가 들어있다.가장 큰 문제는 다이버전트에서 이에 대한 정보나 복선이 많이 부족했다는점이다.애러다이트의 수장 제닌에 의해 갑자기 나타난 이 물건을 어떻게 아무런 의문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심지어 영화의 모든 핵심을 쥐고있는 이 상자를. 


그러다보니 우스운 꼴이 연출된다.관객들은 이 상자를 끝까지 지켜야 할 목적도 근거도 공감하지 못한 채 주인공무리의 사투를 보게 되는것이다.인물의 행동에는 동기가 탄탄해야한다.그렇지 않으면 개그꽁트와 다를 바 없다.이런 점을 너무 간과하지 않았나 싶다.


트리스를 성장시키는 상자의 역할도 창조자의 메시지도 급작스럽지만 조연들의 위치 또한 난감하다.특히 포는 캐릭터를 상실했다고 볼 수 있을정도로 매력이 보이지 않는다.다이버전트의 공을 세운 캐릭터 1순위가 포일텐데 이정도로 그림자에 가려질 줄 몰랐다.트리스와 깊은 애정을 보이는 씬도 부족하고 무분파 엄마와 만나게되며 겪는 포의 복잡한 심리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이버전트의 포와 인서전트의 포는 다른인물이다.특히 트리스의 친오빠인 케일럽의 존재가 가장 어정쩡하다.방해요소도 도움을 주는 요소도 아닌 이 존재를 어찌해야할까.인서전트가 개봉하기 전 <안녕헤이즐>,<위플래쉬>로 몇몇 배우들이 활약을 했고 이는 인서전트의 흥행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유리한 말을 가지고도 체스를 못두는 모양새가 안타까웠다.


다이버전트와 인서전트의 감독이 바뀌면서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으리라 짐작한다.이를 작업하는 중간에 발견하지 못했다면 암담하다.다시 말하지만 인서전트는 다이버전트의 부록,혹은 마블의 영화처럼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후 쿠키영상 정도로 생각된다.앞으로가 중요하다.관객들은 후속편인 얼리전트로 가기 위한 의미없는 통행료를 지불했다.톨게이트를 빠져나왔을 때 지금과 다른 광경을 그려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