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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자소서를 하도 써댔더니

여기저기 자소서를 하도 써댔더니

자소서는 달인이 된 것 같다...실제로 어느정도 지점에 이르게 된 것 같음. 그게 뭐 대기업 입사를 위한 자소서는 아니지만, 대개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이나 영화과 관련 입학 원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농담 아니고 자소서 첨삭 알바라도 해볼까 생각도 잠시 해봤다.

실제로 자소서 써서 내는 지원사업 같은 것도 꽤 붙었고 그걸로 예종도 1차는 통과했고, 대망의 자소서 10장의 KAFA도 1차 통과는 했으니까. 진짜, 내가 써 본 자소서 중에서 KAFA가 제일...제일이었다. 여기는 되도록 한 번에 붙어야 함. 한 번 떨어졌는데, 다음에 또 도전한다? 그러면 자소서 10장을 또 써야함. 이게 신종고문이지 뭐임...게다가 1년사이에 얼마나 눈부신 발전이 있겠냐고. 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 1년 안에 새로운 커리어가 없으면 똑같은 자소서 밖에 안나온다 이거임. 그러니 KAFA 지원하시는 분들은 되도록이면 그 어떤 활동이라도 적극적으로 하시길 바람. 단편영화 제작이든, 현장에서 조연출 하면서 발로 뛰든 그러세요. 그래야 붙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3차가 진짜 관건이라는데, 나는 3차까지 간 적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인신공격이(...) 그리 쩐단다.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압박면접이라는데 그걸 부드럽게 잘 넘어가고 유연하게 잘 대처하는 사람을 좋아하나 보더라고. 이해가 안된다. 뭐,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할 줄 아는 그런 감독을 찾는 건가? 그게 꼭 감독의 미덕인가.

여튼, 나는 예종 시나리오과에 이번에 첫 지원을 했다. 2년전인가, 연출 3년제 지원을 해서 1차는 붙었는데 시험치고 면접에서 떨어졌음. 근데 떨어질 줄 알았던게 내가 문제를 오독했거든. 문제의 주어를 아예 잘못 읽고 풀어 내려갔음. 글 내용과 별개로 이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면접에서도, 학교와서 뭘 제일 하고 싶냐는 질문에 연애 많이 해보고 싶다고 했다. 분위기 끝내주더라. 교수들 다 웃고 터지고. 그 때 알았다. 나 떨어졌구나. 망할놈의 주둥아리. 지금 생각해보면 흑역사인데, 이미 지난 걸 뭐 어쩌라고임.

시나리오 지원자 현황 보니까 작년 보다 너무 많이 늘었던데...신기하다. 연출 원하는 사람들이 시나리오 전공으로 우회 한 건가. 아니면 순수하게 시나리오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건가. 예술사는 영화과 지원자가 천명이 넘어가더라. 우리나라 영화에 미친나라 맞는 거 같음. 5천만명이 사는 이 작은 나라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계층도 전부는 아닐텐데, 매년 천만영화가 나오니까 말이다. 신기한 나라임.

여튼, 시나리오 분량이 너무 짧아서 그게 좀 걱정이긴 하다. 그냥 있는 코미디 대본 조금 수정해서 낼 걸 그랬다. 괜히 오컬트 시나리오 쓴다고 깝쳐서 분량 미달난 채로 보내버린게 맘에 좀 걸린다. 누가봐도 내년에 또 준비하게 생김. 그때까지 나는 또 뭐하나. 보조작가는 이제 하기 싫다. 중요한 경험이긴 했지만, 좋은 경험까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현업 작가님도 보조작가 일은 더 하지 않는게 좋겠다며 추천하지 않더라. 동감함. 아-. 입에 풀칠하기 어렵다 어려워. 어렵네.


시나리오 전공 경쟁률 미쳤습니까 휴먼?

시나리오 전공 경쟁률 미쳤습니까 휴먼?

작년에 비해서 얼마나 더 지원을 한 거야… 제발 저 좀 들어가자고요 제발요…🥹제발…제발 좀요…근데 안될거야 시나리오를 그렇게 급하게 써서 냈는데 될리가…


마감 5분 전에 원수접수 한 내가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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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느라 토하는 줄 알았다 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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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애인에 대한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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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좋아하긴 했는데, 팔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의 능력이 좋기도 했고 배경도 좋았고 가진 것이 많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진창에 처박힌 내 인생을 돈으로 구원해 줄 수 있을 사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집을 친정이라는 이름하에 끌어올려 줄 수 있을 사람. 지독하게 잘했겠지 아마 남편이 되었다면.

여튼 당시 내 나이가 20대 후반이었지만, 그사람은 30대 초-중반이었고 결혼에 대한 전제를 깔고 만나고 있었던 터라 마냥 가벼운 만남은 아니었다. 그 사람은 내가 차에 타기 전, 일명 엉뜨를 해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로이스 초콜릿을 꼭 하나씩 구비해 놓았던 사람이었다. 크리스마스는 그에게 매우 중요한 날이어서, 나는 질 좋은 머플러와 풍성한 꽃다발을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연애하면서 다 받는 그런거라지만 나는 그런 호의와 그런 사랑을 받는다는게 어색하고 벅차서 상당히 실수를 많이 했었다. 가릴 말 조차 잘 구분하지 못했고, 이 감정이 단순 내 기분장애에 의한 흥분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얼마나 교만했는지 알 것 같지 않나. 나는 그랬었다.

내가 팔려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이유는 일단 종교에 있었다. 나는 교회를 포함한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배신감이 엄청 난 사람인데 반해 그 사람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으며, 무려 대형교회의 청년부 회장에 그의 집은 집사, 권사...누나는 교회 회계팀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내가 감당하기 버거운 자리였다. 그 사람의 옆자리에 들어차려면, 내가 가진 배신감 즉 내가 겪은 모든 경험을 내려놓고 굴복해야 했었다. 나는 그런것들을 견딜 수 없었다. 내가 겪어온 신앙이란 가치에 대한 회의감과 배신감이 있는데, 이걸 이 사람을 바라보고 전부 고치고 바꿔서 받아들여야한다니. 나는 그에게 물었다. 미래를 함께 하려면 내가 교회에 꼭 다녀야 하는거냐고. 그는 그렇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그 사람 또한 좀 나이브했던 것 같은게, 그냥 자기가 간절히 기도하고 원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교회로 발걸음 할 사람이면 누군가 기도해주지 않아도 제 발로 가지 않았을까. 나는 나이에 비해 참 순수한 그 눈을 들여다 보며 할 말을 잃었던 순간이 기억난다. 어쩌면, 이 사람은 원하면 다 이루어지는 그런 삶을 산걸까. 어쩌면, 나는 그에게 미약한 질투를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감정에 뿔이 돋고 마음이 울퉁불퉁해지는 것을 느꼈기에. 나는 모진말을 뱉었다. 그리고 새벽까지 이어진 깊은 대화를 뒤로하고 차에 그를 혼자 내버려두고 내려서, 내 갈길을 갔다. 칼바람이 모질었던 날이었고 나는 그 날의 공기의 냄새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다. 그냥 헤어짐을 위한 날씨었다.

나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흉터들이 좋았다. 얼굴 한쪽에 생채기와 약간 파인 상처가 있었는데, 학생 때 크게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 후유증으로 아직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콤플렉스라 생각하는 듯 했지만 나는 달랐다. 그의 상처를 쓰다듬으며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진심이었다. 나는 그의 외형에서 그 흉터가 가장 맘에 들었다.

그럼에도 헤어진 이유는 너무나도 자명했다. 내가 겪은 상처를 외면 할 수 없었다. 내가 느꼈던 아픔을 거짓으로 치부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내 삶에 대한 확신이자 믿음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신앙을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니, 내가 헤어짐을 고하는 것이 맞는 일이었다. 내 일생에 유일하게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내 가족을, 내 가난을 보듬어 줄 수 있을 사람을 그렇게 보냈다. 나는 신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어려운 만남이었다. 내 첫연애를 너무 어려운 사람과 했다. 나는 그저, 데이트 비용으로 투닥거리고 싶었고 연락 빈도로 투덜거리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신념과 신앙을 가지고 몇 십번을 시험당해야했다. 뭐, 그런 말도 있지 않나. 너무 어려운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내가 했던 건 아마 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구원에 대한 일말의 기대. 내가 좋은 값에 팔려가길 원했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천박함. 뭐 그런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나는 많은 것들을 겪었고, 혼란스러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가 불투명했고 살아가는 이유도 몰랐다. 그러니 그것이 구원이든 아니면 장사가 되었든 나는 둘 다 실패 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결혼 했겠지. 40대를 바라보고 있을테니, 그리고 좋은 사람이니 좋은 짝을 만나서 그토록 원하던 신실한 가정을 이뤘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건데, 아마 지금 혼자 있었다면 맥주 한 캔 깠을 것 같네. 진심으로 건네는 진심. 그가 잘 살았으면.



이방인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방인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촌오빠네 놀러갔다가 얻은 이센스 이방인 앨범. 나는 에넥도트 밖에 없었는데 마침 오빠가 이 앨범을 선물로 줬다. 이사가게 되면 벽걸이형 플레이어 사서 주구장창 틀어놓아야지. 덤으로 모자랑 옷, 사고 싶었던 마크제이콥스 레인 향수까지 얻어왔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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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래 살더라

다들 그래 살더라

알고지낸지 15년이 넘은 단짝 한명은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의 결혼이 가시화 되고 있고, 또 다른 한놈은 만나던 남자와 이별한 후 나름대로 마음 고생을 하면서 지냈나보다. 31살,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 나는 아직 이룬 것이 없는 무일푼 상태. 누구의 아빠는 제네시스를 탄대. 누구네 엄마는 벤츠를 타고. 누구네 부모님은 서울 한복판에 잘 살라며 아파트를 얻어주기도 해. 나는 반지하 방에 가만히 앉아서 타자를 두드리다가 공평함이란 무엇일지 수 없이 생각하다 결국, 포기한다. 답이 안나오는 문제에 매달리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했기 때문이다.

 

여기엔 온 몸을 뜨뜻한 물에 푹 담글 수 있는 욕조도 없어서 그냥 샤워기로 물을 틀어놓고 줄줄줄, 물 줄기를 맞으며 상념을 한다. 너무 힘들어서 이젠 기억도 희미한 내 과거들, 앞으로 어떻게 걸어나가야 할지 모르는 내 미래. 내 미래. 물이 떨어지는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털어서 방에 들어와 화장대 앞에 앉아서 대충 로션같은 걸 찍어바른다. 시발 관리하라고들 하는데 귀찮아 죽겠다. 다들 어쩜 그렇게 바쁘게들 살아가는지. 운동하고 밥차려먹고 일하고 집와서 넷플릭스보고 요가하고 유투브 찾아보다가 잠드는 그런 갓생같은 거 나는 못살겠고.

 

요즘 좀 어른인 척 하다가 또 다쳤다. 아직 마음이 자라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없이 질량이 가벼운 심장을 부여잡고 저 밑바닥까지 꾹꾹 눌러가며 사는게 잘하는 짓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찾아온 너무 좋은 기회들. 이거 다 날릴 뻔 했다. 아니, 날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정신력에 한계가 찾아오고 체력도 바닥다니 몇주간 침대에 누워 잠만 자며 시간을 보냈다. 그토록 원했는데, 원하던 일이었는데 왜 이렇게 힘든거지? 

 

그리고 친구들을 둘러보다. 6개월 공부하고 임용 붙은 학교선생님 친구, 열심히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공예하는 친구, 옷 장사하는 친구, 애 키우는 친구, 타투하는 친구, 영상그래픽 공부하는 친구. 다들 밥벌이 하느라 바쁘고 정신이 없더라. 그냥 다 그래 살더라. '그래도 너는 하고 싶은 거 하잖아'. 말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아직 계약이 된 건 아니지만, 여튼 돈 받으면서 뭔가를 하고 있기는 하지.  어쩌면 나는 복받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제 어린시절을 점철했던 불운과 불행같은 건,  나와 상관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끊어내야지 뭐. 끈적하게 달라붙어있는 그놈의 불운. 샤워로 씻어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력으로 씻어내릴 수 있는걸까?

 

동생은 취직을 했다. 공무원시험에서 3번 낙방하고 취업을 준비했는데 생각보다 좋은회사로 바로 들어갔다. 원하는 직무로. 이제 우리집에서 말썽쟁이는 나 하나뿐이다. 어쩌겠는가. 곧 죽어도 맨땅에 헤딩하는 성격은 고칠 수 없는걸. 다들 그냥 그래 살더라. 그러니까 나도 그냥 그래 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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