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시리즈] 대한민국 입시미술은 망했다

[망시리즈] 대한민국 입시미술은 망했다

대한민국 입시미술(회화를 포함한 모든 미술,특히 디자인)은 망했다.망해가고있고 앞으로도 망할것이며 망하기 위해 망하는중이니까 망할 수 밖에 없다.내가 10년 가까이 미술하면서 얻은 결론은 그것뿐이다.생각보다 복잡한 트러블로 구조상의 문제가 얽혀있을것같지만 사실 그렇게 복잡하게 망하지 않았다.대한민국 입시디자인은 그리고 디자인업계는 아주 단순하게 걍 망했다.


입시미술학원 강사로 몇년을 일하면서도 가장 큰 죄책감은 바로 아이들의 눈을 멀게만들어야했다는 사실이다.이미 어느정도 미술뽕에 취해 학원을 찾은 아이들이지만 그 아이들을 다시한번 입시뽕에 취하게 만들어야하는데 그 과정도 만만치않을뿐더러 나도 인간인데, 아이들에게 굉장히 미안해지고는 했다.입시미술학원은 무조건 명문대 입학생을 배출해야하기때문에 최대한 성적관리와 미술실기력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는쪽으로 지도를 한다.따라오는 애들은 따라오고 아닌애들은 안 따라온다.기본적으로 손빨이 되는 애들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하면 아이들 사이에 경쟁심이붙는다. 그것을 한번 더 자극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대학 실기대회다.


각 대학 디자인실기대회는 사실 우습게 볼 대회가아니다.전국의 모든 미대입시생들이 참가한다고해도 과언이아니며 본상수상자에 한해 수시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기때문이다.그런 큰 대회에서 본상을 수상하는 친구들을 옆에서 보다보면 본인의 그림에 자괴감을 가지고 슬럼프에 빠지는 애들도 많이 생겨난다.딱 요 시기.이때가 단순 경쟁으로 재미볼 수 있는 시기고 그래서 애들을 학원에 잘 잡아놓을 수 있는 시기이다.혈기왕성한 친구들 가둬다가 경쟁시키면 죽어라고 하기마련이다.당근과 채찍을 적당히 섞어서 단순히 학생의 승부욕을 자극하는것이다.물론 이것도 그리는것에 어느정도 열정이 있어야 가능한일이지만 솔직히 미술학원다니면서 친구랑 비교 안당해본 사람 없을걸.그게 니가 당한 채찍이다.그 후에 칭찬들은게 당근이고.생각해보면 졸라 단순한데 이게 뽕맞는거랑 똑같아.중독되는거야.


그렇게 고1,고2생활을 하다보면 곧 고3 대망의 수험생이된다.죽어라 가둬놓고 패는 형식으로 그림 오질라게 배워서 명문대에 입학해봤자 나중에 잘살고 성공하는사람은 원래 집 잘사는애다.예외야 있겠지만 척박한 이 땅에서 저주받은 예체능하면서 그 공식을 깨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부익부빈익빈을 깨려면 사회가 받쳐주어야하는데 그마저도 안되니 아티스트로 재능을 펼치고싶던 꿈많은 학생들의 9할이 대학생때 나가리된다.대학생때 정신병 안오면 내가 장하다고 칭찬해준다 정말.


뭐 운좋게 대학도 잘갔고 학점도 잘땄고 디자인도 생각보다 적성이 맞아.그럼 이제 취업시장에 나갈때다.그리고 한번 느껴봐야한다.아 디자인 이런 개 미친분야는 연봉도 적고 출퇴근도 엉망이고 모든게 미쳐돌아가는구나.아 이세상은 디자인을 설계하고 구상하는 직업으로 생각하는게 아니라 고객 발 닦이용 수건으로 생각한다는것을 느낄것이다.야근수당 챙겨주는 회사는 너무 훌륭한 회사가 되는거고.정시퇴근 가능한 회사는 노벨평화상을 받아 마땅하지만 물경력이 될 확률 99%이니 조심해야한다.사회에 얼마나 많은 전공이 있고 직업이 있는데 그중에 왜 하필 디자인(미술)을 선택해서 열심히 공부한 노예생활을 하는지 스스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할것이다.


그래도 산업,시각디자인이면 그나마 낫다.전공자들이 워낙많고 쏟아지고 싼 값에 인력을 해치우려는 씹양아치같은 회사들이 넘쳐나지만.그래도 낫다.뭐 보다 낫냐고? 영상,패션 전공에 비해서 백배 낫다는 뜻이다.패션디자인이 그렇게 하고싶어 죽겠다는 애들보면 마음 한켠이 아리다.절대 걔네들을 받아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구조라는것도 없어.아무리 요즘 다 4년제 나온다지만 전국에 패션디자인과가 몇개나 된다고.그 고급인력들을 갖다가 월 80만원 주면서 개처럼 굴리는 회사가 널렸다.내가 범죄만 아니라면 불 수십번은 대신 질러주고 나왔다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책상앞에서 재료비 쏟아부으며 고사리같은 손으로 그림그려대고있을 내 수많은 제자들,얘들아.속지마 업계가 미쳐서 너네 못 받아줘.그중에 금팔찌 낀 내 제자야.너는 집이 잘 사니까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열심히하는 흙수저가 열심히 안하는 금수저네 집 화장실 타일디자인해주고 남는 방 세들어 살 수도 있어.농담같지만 현실이다.왜냐고? 대한민국 디자인업계는 미쳤고 망했고 제정신이 아니니까.이럴수록 입시학원의 사탕발림이 정말 역겹게 느껴질수밖에 없었다.진짜? 명문대 나오면 살길 생겨? 나는 아니던데?


학원도 물론 생계고 먹고 살야아 하는 일이니까 그렇다고 치자.그래도 애들 꿈팔아먹는 장사라는건 마음속에 좀 담아두고 살아야하는거 아닌가? 애들이 헷갈려한다니까.회화학원도 디자인한다는애들 설득하고 상담해서 지 학원에 남아있게만들고,디자인학원도 다른거 한다는애 상담잡고 사탕발림하고 겁주고.염병 시바 나 진짜 이짓 하기 싫었어.전공 돌릴애야 알아서 돌리지.근데 맨날 희생양은 어른말 잘듣고 잘믿고 착한애들.걔네만 다 피해자들이야.하여간 원장들만 제일 배부르게 살아요


디자인 전공해서 지금 존나잘먹고 잘사는 애가 내 주위에 한명있다 한명.근데 걔는 원래 잘먹고 잘살고 집도 서울로 이사가서 월세걱정 없는 애였고.비교군이 아예 다르지? 거기다 대기업 들어갔다.그만하면 사정이 나은거지.근데 그게 쉽냐고 시바.대기업 안들어갔어도 사람답게 살만큼은 벌고 쉬고 성취감도 있고 그래야하는거 아니냐? 당연 아니지.그게 미술이야.없어 그런거.


하여간 나는 입시미술학원 수명 10년본다.10년안에 다 망해.망한대도 폭삭 망하지는 못하겠지.그림그리고 싶은애들은 어디에도 많으니까.그런애들 데려다가 꿈팔아먹으며 대학으로 넘겨버리는 학원들도 어영부영 살기야 살겠지.그래도 나는 10년 본다고.더 처참해.고급인력 다 놀고쳐먹고 앉아있는 이 실정에 지금 애들이 홍대나온다고 뭘 그렇게 인생에 꽃이펴.그것도 그 전공이 맞아야말이지.종이에 기초디자인으로 입시하는거랑 컴퓨터로 디자인 모델링 작업하는게 얼마나 다르게.그 머리가 그 머리 같지만 흥미차이가 얼마나 나게.겪어봐야알지.


불쌍하지만 열심히사는 내 제자들이나 돈 잘벌어먹고 살 수 있게 앞길 닦아놓으실 위대하신 누군가를 찾습니다.일단 난 아니야.난 내 입에 풀칠하기도 바빠.여튼 망했다고.




'Essay > Bullshi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ㄴ'  (0) 2018.04.18
나의 'ㄱ'  (0) 2018.04.17
누가 나를 안아줬으면  (0) 2018.03.13
부드러운 물음  (0) 2017.09.06
무대 뒤 무대  (0) 2017.05.10